기업의 세금도피처, 탈세와의 전쟁
기업의 세금도피처, 탈세와의 전쟁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3.07.26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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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위법의 정규 과정인가?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Tax Haven Ⅰ] 조세피난처





조세피난처(Tax Haven)와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가공의 회사)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기업 오너 일가는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의 장남, 대학총장, 북한 관련 유령회사에 이어 예금보험공사와 산하기관인 정리금융공사까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이 드러났다. 명단에 오른 그룹이나 인물들은 사연이 밝혀지기도 전에 부도덕의 대명사로 찍히고 있다. 그 진실은 무엇일까.


절세를 위한 피난 아닌 피난

기업들은 해외 기업과의 합작 사업이나 기업 인수합병 등을 하면서 절차가 간편한 조세피난처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조세피난처에 계좌를 보유하거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그 자체만으론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비자금 조성이나 불법 증여, 해외 재산 도피 등 검은 거래와 관련된 탈세로 무조건 몰아가면서 ‘마녀사냥’식으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소득세나 법인세를 물리지 않거나 낮은 세율로 과세하는 지역을 일컫는 조세피난처는 기본적으로 절세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세피난처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바하마·버뮤다·케이맨 제도같이 소득세를 물리지 않으며 조세조약을 맺고 있지 않은 곳(Tax Paradise), 홍콩·라이베리아·파나마 등 외국에서 들여온 소득에 비과세하거나 저율과세하는 곳(Tax Shelter), 룩셈부르크·스위스 등 특정 기업이나 사업에 세제상 특전을 인정하는 곳(Tax Resort) 등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글로벌 다국적기업은 세금 회피를 위해 조세피난처를 애용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득을 올리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비용과 이익이 어느 나라에서 발생하는지 계산하는 일이 쉽지 않다. 다국적기업들은 회계 장부상의 이익은 세율이 낮은 국가로, 비용은 세율이 높은 곳으로 돌려 세금을 빼돌릴 수 있다. 이때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차려 불법적으로 세금을 피하면 역외탈세(Offshore Tax Evasion)가 된다.

애플은 법인세율이 2%에 불과한 아일랜드의 자회사에 수입을 이전하는 수법으로 지난해 무려 90억달러(약 10조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미국 법인세율 35%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나이키 등 미국 주요 기업들도 역외탈세 의혹을 받고 있다.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 규모는 8조~21조달러에 달하고, 세계 GDP의 30%가 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조세피난처는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 태평양 등 50~60곳에 달한다. 200여만개의 페이퍼컴퍼니와 재산 은닉을 도와주고 수수료를 챙긴 역외 서비스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카리브해의 관광 명소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인구 3만명의 작은 섬이지만 페이퍼컴퍼니가 최소 12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G8(주요 8개국) 등 전 세계가 글로벌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국제공조를 한창 논의하고 있다.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 전통의 조세피난처로 지목되는 국가들은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에 비밀계좌의 봉인을 풀고 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먼 제도, 버뮤다, 지브롤터 등 세계적인 조세피난처로 꼽히는 영국령 국가들이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세금정보 상호교류 협약을 맺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영국령 국가들이 조세 투명성 강화에 동의한 이유는 조세피난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다.

각국이 역외탈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기가 됐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각종 파생상품이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설계·유통된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이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각국의 법인세·소비세 등 세수가 크게 줄고, 공적자금 투입으로 재정건전성이 나빠지면서 조세회피 지역을 통한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돈은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 옮겨가며 과세당국과의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한편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운영 중인 페이퍼컴퍼니의 상당수는 해운과 관련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해운사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는 것은 해운업 특성 때문이다. 해운사는 배를 건조하거나 용선할 때 자금을 단독으로 대지 않고 금융사(대주사)의 투자를 받아 운용하는데 이때 투자한 해외 대주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진행한다. 탈세 목적일 것이라는 외부 추정과는 달리 투자나 자원개발 목적으로 정상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악용되는 조세피난처, 국내도 피할 수 없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영리 독립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지난 6월초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1차 취재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한 인터넷 언론이 조세피난처에 비밀계좌를 개설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해 나라가 들썩거리게 했다. 영국 가디언지도 1년 전인 지난해 7월21일 조세피난처에 글로벌기업들이 부자들의 돈을 감춰주고 세금을 피해왔다고 폭로하는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영리 독립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지난 6월초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1차 취재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245명의 명단을 6차에 걸쳐 발표했다.

재벌총수와 그 가족, 중견기업 대표, 종금사 전 대표, 대학총장 등의 명단도 공개했다. 전 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낸 이수영 OCI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장, 조정군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과 장남 조현강,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 조민호 전 SK케미칼 부회장 부부,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그의 부인인 연극배우 윤석화씨, 전성용 경동대 총장, 이수형 삼성전자 준법경영실 전무, 조원표 앤비아이제트 대표이사 등이다. 특히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들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의혹들이 속속 보도됐다. 뉴스타파는 “명단 중에 전두환 대통령의 아들 이름인 전재국으로 등록된 고객이 버진 아일랜드(BVI)에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밝히고 “이 고객이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 볼 때 전 전 대통령의 아들 전씨가 맞다”고 주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도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바하마제도에 ‘에버그린 세틀먼트’라는 이름으로 신탁계좌를 2004년에 개설했고, 이 계좌를 통해 ‘롱아일랜드 코퍼레이션’이라는 투자지주회사를 설립해 자금을 관리했다고 일부 언론이 지난 6월21일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 계좌는 “재헌씨의 전 부인인 신명수 동방그룹 회장의 딸인 정화(48)씨와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핵심이 되는 재산이며, 재헌씨의 자금 운용규모는 처음 100억원대에서 출발해 지금은 수백억원대의 자금이 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자금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91%를 납부했으나, 나머지 231억원의 미납추징금을 놓고 동생과 사돈이었던 신명수 전 동방그룹 회장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북한 사람의 것으로 의심되는 페이퍼컴퍼니도 발견됐다. 뉴스타파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페이퍼 컴퍼니 3곳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문광남(Mun Kwang Nam) 명의로 페이퍼 컴퍼니 ‘래리바더솔루션즈’가 북한 군부의 무기 밀수출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받는 페이퍼 컴퍼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내용은 개인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비밀계좌를 개설해 이익을 빼돌렸다는 것이고, 가디언의 보도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자금을 세탁했다는 것이지만, 개인이건 기업이건 조세회피, 탈세를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다를 것은 없다.


커져가는 조세피난처,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줄일 수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한국인의 해외도피재산 규모를 87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인이 조세피난처로 옮긴 도피 자산 규모가 7780억 달러, 한화 870조원이다. 정부부채(470조원)의 2배 가까이 되는 규모다. 국가 순위를 보면 중국은 1조 1,890억 달러로 1위, 러시아가 7,980억 달러로 2위, 한국이 3위이다. 이어 브라질이 5,520억 달러, 쿠웨이트가 4,960억 달러로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관세청 분석에 의하면 2010년 한 해에만 우리나라와 조세피난처와의 외환거래가 2552억 달러였고, 무역거래 규모는 1382억 달러였다. 차액 1170억 달러, 한화 약 129조원이 조세피난처에 떨어뜨린 혐의를 받는 돈이다.

▲조세피난처 발표로부터 시작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 찾기는 국민의 관심이 이어져 비자금 회수를 위한 검찰 수사로 발전하며 전 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의 재산까지 파헤치며 국내외 은닉 재산을 찾고 있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추산한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역외탈세 자금의 합계는 21조 달러에서 32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돈으로 무려 약 2경 3,100조원, 5경 3,500조원이나 된다. 상상이 안 되는 금액이다. 조세피난처는 세금이 면제되거나 매우 낮은 지역, 또는 국가를 말한다. 자원이 없는 나라, 또는 지자체들은 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을 일정기간 면제하고 부지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조세피난처는 세제상의 우대와 함께 외환관리법, 회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으며,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곳이다. 따라서 부자들이 탈세와 돈세탁을 위한 자금거래 경유지로 즐겨 이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개인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계좌를 설치하는 주목적은 ‘가치이전’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이 이윤과 소득이 발생하면 법인세와 소득세를 내야 한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이윤이 조세피난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작함으로써 세금을 포탈한다는 것이다. 자금세탁도 중요한 목적의 하나다. 정치권력자의 뇌물과 횡령 자금, 기업인의 비자금, 개인의 외화반출을 위해 조세회피지역 페이퍼컴퍼니와 계좌들이 이용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2000년에 조세피난처 판정기준을 내놓은 바 있다. 1. 세금이 없거나 명목적인 세금만을 유지, 2. 효과적인 정보교환의 결여, 3. 제도투명성 결여, 4. 실질적 사업수행조건 결여 중에서 1에 해당되면서 2~4 중 하나를 만족시키면 조세피난처로 분류된다. G20 국가들도 지난 2009년 4월에 열린 런던 회의에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세금기준’에 따라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를 정의하기로 하고 그 기준을 잠재적으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나라, 기준을 충족한 조세피난처, 기준을 충족하는 금융중심지,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나라 등으로 규정했다.

역외조세 도피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추적과 함께 시민사회의 노력도 요구된다. 조세정의 활동가들은 “영국에서는 시민사회단체가 다국적 기업들의 납세 실적을 제대로 알아내고 이에 따른 윤리적 소비와 투자를 하자는 운동도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재무제표 상에 표시된 실적이 아니라 실제로 자국에 기여하고 있는 납세 규모가 얼마인가를 파악해서 소비와 연계시키자는 것인데 시민단체가 적극적인 대응 덕분에 대표적인 역외 탈절세 모델을 보여 왔던 다국적 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CEO가 “더 이상 공격적 역외 플래닝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국가와 시민사회에 마땅한 역할을 제대로 한 납세를 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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