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끝없이 변혁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자신을 끝없이 변혁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 유재명 기자
  • 승인 2013.04.09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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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작가, 문학에 대한 끝없는 순정
[이슈메이커=유재명 기자]

[Cover Story] 작가 박범신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박범신. 작가 인생 마흔 해를 보내며 50여 편의 작품을 낼 만큼 성실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보내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고 여전히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린다. 올해 6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는 아직까지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그만큼 진지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문학, 목 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

 

요즘 근황이 어떠신가요?

“2년 전 논산에 내려왔어요. 논산에 오면서 ‘소금’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가출하는 장년의 아버지 얘기지요. 50~70대 아버지들이 어떻게 야수적으로 일해서 이 나라의 발전을 만들어왔는가 되돌아보는 얘기인데, 특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서 쓴 것입니다. 아버지 세대들이 과오도 많고 사회의 그늘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의 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젊은이들이 한번 봐야 되지 않겠냐하는 마음입니다. 4월초 출시 예정이고, 일주일에 한 번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강의 나가고 있습니다.”

 

작가로 데뷔한지 어느덧 마흔 해가 넘으셨는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연애 한 번 한 것처럼 흘러간 것 같아요. 작가는 항상 사회 명령에 소속되지 않으려고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라는 경쟁구조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그런 것들에 저항하거나 맞서려고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세계 보편적 가치, 보편적 명령, 보편적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맞서려고 하는 존재이기에 내부에서 늘 긴장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권태를 느낄 겨를이 없어요. 연애하는 것처럼 살았다는 것도 그런 의미로 볼 수 있죠. 지금까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갖고 떠나고 떠나는 인생이었습니다. 구르는 돌과 같이 이끼가 끼지 않고 저의 정신이 정체되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기에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1973년도 당선되시면서 수상 소감으로 문학, 목 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직도 그 마음 변치 않으셨나요?

“그때 소감이 과장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문학순정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문학을 제일의 가치로 두려고 하는 것이죠. 저 정도 나이가 되면 보통 내공도 쌓여서 안 그런데요. 아직도 저는 고등학교 순진한 문예반처럼 문학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 첫 번째 가치로 두고 사는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 보면 문학은 목 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이며 데뷔 때 제가 한 말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2010년 출간 이후 영화화돼 134만 명의 관객몰이를 하며 2012년 한 해 스크린을 뜨겁게 달궜던 ‘은교’는 70대 노인 이적요와 17세 소녀 은교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불멸의 가치에 대한 욕망이라는 메시지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을 독자에게 전해주며 욕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에 은교 속 한 구절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는 독자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은교’,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50, 60대 되면서 늙어가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슬픔과 반항심 등 매우 복잡한 자의식이 생겨났어요. 늙어가는 슬픔과 번뇌에 대해 쓰고 싶어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영화 때문에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어린 처녀와 노인네의 스캔들 있는 러브 스토리 쯤으로 오해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단순히 그런 러브스토리가 아니고 제일 큰 주제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존재론적 문제들을 어떻게 부딪치고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말하고 있는 존재론적 소설입니다. 다만 젊은 처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늙어가는 슬픔을 말하기 위해서 젊음에 대한 갈망으로 젊은 세대가 나와야하는 것이었죠. 여기서 은교는 단지 젊은 처녀가 아니라 주인공 이적요 머릿속에 어떤 영원한 불멸의 가치를 표상하는 것입니다. 꼭 여자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나이도 상관없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지고지순한 가치, 영원한 처녀성 그런 것들 표상하는 거라 할 수 있어요. 소설로서 서른 살, 쉰 살 여자로 설정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일부러 나이차를 많이 벌려놓은 거죠(웃음). 하지만 은교가 상징하는 것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 가치에 대한 욕망이고 이를 노인의 마음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에 밀려나갈 때 마음속에 누구나 영원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지 않겠어요. 그런 욕망을 그린 것입니다.”

 

영화 덕에 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셨는데요.

“좋으면서도 싫었어요. 한국의 독자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은교는 깊은 주제 의식과 서사의 힘이 있는 좋은 소설입니다. 2010년에 이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을 고치거나 바꾼 것이 없고 표지나 텍스트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영화화가 안됐을 때는 독자들이 안 찾고 영화화 되어서 찾는다는 것이 씁쓸했습니다. 저는 문학의 힘이 셌던 시대를 살았거든요. 작가가 독자를 영화관으로 데려가던 시절이 있었지요. 원작 소설이 어떻게 영화화됐는지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 갔었습니다. ‘내 생애에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

 

말씀해주셨듯이 최근 문학 보다 영상이 우선시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영상문화와 최근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로 대표되는 구술문화가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게 하고 있어요. 생각을 깊이 안하게 되죠. 문학 속 문장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작가의 생각이 표현되지만 독자의 머릿속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제 3문장이 탄생되죠. 같은 문장이라도 독자의 경험이 투영되며 자기도 모르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문장은 독자로 인해 완성되며 자기 자신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문학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자문화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고 생각을 깊이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문학 속 문자와 문장들을 사람들이 많이 읽어야 우리사회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해요.”

 

 

주요 일간지에 연달아 연재하며 그는 1980년대 가장 뜨거운 작가가 됐다. 대중작가로서 그의 유명세는 문단 지식인들에게는 불편함이었다. 고통과 번민에 빠진 그는 1993년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히말라야를 선택해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을 등정했고, 경기 용인 외딴집에서 은둔 생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나를 영원히 늙지 않게 하고, 평생을 꿈꾸게 하는 나만의 은교를 가져라’

 

대중작가로서 성공하던 시절 돌연 절필하셨는데요. 이 시기가 작가님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강력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저도 절필 전에는 이 땅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명령대로 산 것 같아요. 그때 우리들은 어떤 명령이냐면 개발주의 명령을 받고 있었지요. 소설 쓰면서 유명해지고 싶었고 자본주의 개발시대의 세계가 주입해주는 명령에 저도 부흥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득권을 향해서 달려가는 인생이 아니었을까. 그것들이 작가로서의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베스트셀러, 대중들의 우상, 경제적 풍요. 어찌 보면 성공이지만 그것들이 참된 의미에서 저를 위로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절필한 것은 문학적으로 보면 문학으로 얻은 베스트셀러 작가 기득권을 스스로 반납하거나 제 결단을 통해서 하루아침에 내다 버린 것이죠. 한 번도 후회한적 없어요. 매우 좋은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결단이 없었다면 개발의 시대가 주웠던 이데올로기 명령을 어쩌면 지금도 따라가고 있는 작가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럼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행복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절필로 현실적인 기득권은 잃었어도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충만해졌습니다.”

 

고향인 논산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저는 저의 감수성은 예민하다고 보고 여전히 불온한 지점, 위험한 지점에 살고 싶어요. 저의 권위에 안주하거나 나태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예민한 감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하려고 논산에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이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부르고 있지요. 막상 고향 와보니 우리 고장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됐죠. 2년 동안 고향의 가치를 새삼 공부하고 깨닫는 과정이었어요. 우리가 현대인의 비극은 고향이라는 것을 잊고 고향을 마음속에서 지우면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고향을 마음속에 되찾기만 하면 삶이 충만해지고 훨씬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라는 직업이 그것을 할 수 있고 ‘소금’도 이곳 논산, 탑정호가 배경입니다.”

 

저서와 강연을 통해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계시고, 특히 꿈과 목표에 대해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자본주의 구조 속에 사회시스템과 교육이 아이들에게 꿈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통령, 판사, 검사, 의사 등이 되는 것이 꿈일 수 없다는 생각이죠. ‘의사가 된다면 의사는 목표일뿐이고 의사가 돼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던 그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더는 없게 하겠다’ 이것이 꿈이 돼야 하는 것이죠. 부모나 학교가 기득권이 함유된 목표가 꿈이라고 주입하고 있어요. 꿈은 목표의 너머에 있습니다.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통해서 더 많은 것들 이루려고 하는 꿈,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세계를 진보하게 하죠. 평소 젊은이들에게 출세하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꿈꾸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많이 배워서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더러운 꿈이라 생각합니다. 배운 만큼 사회적 기여를 하는 꿈을 꾸는 것이 바람직하죠.”

 

요즘 젊은 세대가 꿈과 현실속에서 많은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자본주의의 경쟁을 따를 수만도, 이상을 따라서 살 수도 없는 것이 오늘날의 청춘이라고 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있지요. 물론 청춘이 힘들고 어렵지만 위로받고 있을 겨를은 없습니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은 청춘은 없습니다. 아픔을 이겨내니까 청춘이고 아픔과 정면으로 맞대결해서 자기 비전과 꿈을 가지고 이겨내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자신의 변혁을 꿈꾼다면 영원히 청년이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안정을 추구하면 스무 살이어도 노인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작가 박범신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평생 작가로 살았고 앞으로도 제 꿈은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사는 것입니다. 완성형 작가라고 한 번도 생각 해 본적 없는 현재진행형 작가입니다.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이 저를 부르고 있어요. 저는 졸병 같은 자세로 밑바닥 헤매고 무엇이든지 제가 반응하는 데로 예민하게 열심히 쓰는 현역작가로 늙어 죽는 것이 꿈입니다. 목 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고 하는 그 순정 훼손하지 않도록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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