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날] Woman Leadership
근대 초기 스페인의 이사벨1세, 영국 엘리자베스 1세부터 현대의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여성 지도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굳은 의지로 자신의 신념을 정치에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여성들의 능력 및 사회적 위상이 높아져가며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는 타자 지향적인 여성 리더십이 민주적인 관계 패러다임에 요구되는 리더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여성 특유의 포용력과 섬세함으로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우먼파워’를 이뤄내고 있는 주역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목받는 여성 리더십
21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들이 주목을 받는 시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표적 여성 리더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함으로써 여성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 리더들의 부상은 사회·경제적 시대 흐름과 무관치 않다. 사회적으론 소통이 화두가 되면서 감성이 풍부한 여성 리더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서도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전통산업에선 통제·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요구됐지만 창의적이고 협업을 중시하는 정보기술(IT)시대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소통 능력이 큰 장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미래 산업구조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대방 마음을 읽는 능력, 사회정의에 대한 순수성이 상대적으로 장점인 여성이 수평적 네크워크가 특징인 21세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많은 사람들은 미래가 현재보다 나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가 확장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이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리더는 세상을 보는 눈뿐 아니라 어떻게 미래를 이끌어갈 것인지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여성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수용적이고 양육적이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리더십은 어쩌면 여성리더십이라기보다 리더가 갖춰야 할 공통의 덕목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정춘숙 대표는 “여성리더십은 생물학적인 여성을 말하지 않는다. 남성중에도 생물학적 여성보다 훨씬 여성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여성적 리더십은 성별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교육과 훈련, 다양한 직·간접 경험과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배우고 키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은 남성과 달리 덮어놓고 위에서 밑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계급의식이 적어 강한 사람에게 덜 위협을 받으며 순수성과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여성 리더십에 관한 ‘통합의 거미줄’ 이론에 따르면 여성은 사람들을 거미줄처럼 통합해내는 관계 기술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마음가짐을 보고 상대의 경계성을 풀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한다. 또 청렴성과 도덕성을 갖고 있으며 공공성도 배려함과 동시에 원칙과 소신으로 행동한다. 이것이 여성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통합의 거미줄을 짜는 건축가’인 리더의 수단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인 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통합의 거미줄은 중심이 너무 강하면 주변이 허약해지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덜 위계적이고 더 관계 지향적이어서 오늘날의 정보화 시대에 더 효과적인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전 이화여대 이배영 총장은 “여성의 능력이 분출되는 이 시대에 여성의 상생과 화합, 평화, 그리고 생명의 길을 닦고 구국의 혼을 살린 여성리더십이 요즘에 더욱 절실히 필요해 지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리더들
대한민국에서 1948년 국회의원 간접선거로 선출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64년 만에 처음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국가 경제를 살리고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세계 여성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관심이 쏠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많은 지도자가 입에 오르내렸다. 그 중 유럽의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2012년 한해 동분서주했던 유럽의 여성 지도자로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재가 있다. 독일 사상 첫 여성 총리, 첫 동독 출신 총리, 첫 과학자 출신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년 간 취약한 통일 독일의 경제를 살려 2009년 재임에 성공했고 최근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이하 기민당) 대표 경선에서 대표에 연임돼 이번 3월 총선까지 기민당이 집권당 자리를 지키면 3선 총리도 될 가능성도 있다. 내유외강(內柔外剛)형 지도자로 이성적 사고가 강점인 그는 복지비 지출 축소와 노동 개혁 추진 등 복지공화국 독일을 수술하고 통일 독일 이후의 동서 화합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8월 세계 유력 경제 전문지 포브스도 이를 이유로 그를 2011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1위로 선정했다.
현지 언론들뿐 아니라 세계 언론들도 유력한 차기 미국 대선 후보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여성 지도자가 있다. 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집권 1기에 성공적으로 국무장관직을 수행한 힐러리 클린턴(65)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으로 2016년 미국의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이자 미국 첫 여성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클린턴 장관은 2009년부터 4년 간 약 161만㎞를 비행하며 112개국을 누벼 역대 미 국무장관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사임을 앞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휴전 중재를 8일 만에 성사시켜 국무장관으로서 대미를 장식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선 차기 대선 후보로 힐러리를 지지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57%에 달하고 힐러리 장관은 자신도 작년 12월 방송된 ABC뉴스의 ‘바바라 윌터스 쇼’에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해 대선 출마를 시사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힐러리 장관처럼 왕성한 외교 활동을 벌인 여성 지도자는 미얀마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68) 여사다. 떼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함께 2012년 미얀마의 정치 개혁과 경제 개방 정책 추진을 도운 그는 지난달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사상가(Thinkers)’에 1위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언니의 독설'로 유명한 스타 강사 김미경 씨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강연을 진행했던 그는 최근 '김미경 쇼'라는 케이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며 화려한 입담도 보여준다. 그는 자기계발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험담을 통해 정곡을 찌르는 직설화법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그의 열정을 담은 힐링 강연은 명쾌하고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주며 많은 젊은이들과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의 멘토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여성 리더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
우리나라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여성리더의 사회활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견고한 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조직 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관행과 남성중심의 네트워킹, 기회와 권한의 부족 등으로 성공에 있어 어려움을 겪어 왔다. 또한 사회가 바라보는 관점이 여성 본인에 국한되지 않고 그녀를 지원해 줄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결혼을 했는지, 했다면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어떤가, 경제적 능력은 있는가 등으로 평가를 했기에 성공이외에도 행복한 가정이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고위직 여성비율이 아시아에서 ‘꼴찌’인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멕킨지 분석 자료에 따르면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유럽 17%, 미국 15%, 중국이 8%인 반면 우리나라는 1%에 불과하다. 최고경영진 내 여성 비율도 우리나라는 2%에 그쳐 유럽(10%), 미국(14%)에 크게 뒤졌다.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킨 나라치고는 기업 내 고위직 여성의 위상은 너무 초라한 셈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잠재력이 큰 여성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기업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시대가 바뀌면서 남성보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여성 국가지도자나 기업경영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성 리더십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감성 리더십을 통해 여성이 경제·산업계에서 강력한 파워를 갖는 이른바 ‘위미노믹스’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좀 멀어보인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 인력이 비교적 차별이 적다고 알려진 공기업 및 국가공무원 채용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인력 정책 연구실장은 “채용 단계에서는 남녀차별 문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경력을 쌓고 승진을 하는 단계에서 겪는 차별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대한민국의 변화 주도하는 첫 여성 대통령
국민대통합을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 하나같이 사실관계에 입각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방향까지 제시하는 모습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수위원들도 당할 재간이 없다는 평가이다. 박 대통령의 한 측근은 “정책에 대한 높은 이해도에 여성적인 섬세함이 더해져 정책을 보다 세심하게 챙기는 것 같다”라며 “이 때문에 새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평가했다. 그런 반면, 박 당선인이 인수위와 공직 인선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소통보다는 불통의 이미지가 강해 그가 단행한 인사를 두고 밀봉인사니 비밀주의라는 식의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나 대통령선거 당시 보여준 인선 방식도 그렇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원회와 총리후보자 인선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인사의 제1원칙은 '보안'이다. 그것도 철통같은 보안이다. 어떤 인사든 인사와 관련된 내용이 하나 새어 나오는 법이 없을 정도다. 정해진 틀은 없지만 흔히 알려진 여성 리더십의 통상적인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사회는 첫 여성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월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 관련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날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첫 여성대통령’은 ‘빈곤의 여성화’를 양산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 특히 노동과 복지 영역에서의 차별적 구조를 해소하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평등한 복지 시스템 구축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지 않는 성평등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곳곳에서 남성 못지않게 여성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시대에서 위풍당당해 보이는 여성들의 일과 일상속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존재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고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취재/유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