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의 개인정보 VS 산 자의 추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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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명 기자
  • 승인 2013.02.23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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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디지털 유산의 딜레마
[이슈메이커=유재명 기자]

[Social Focus]  디지털 유산

 

디지털 시대로 돌입하며 자신의 일상과 관심사들을 온라인 공간에 올리고 관리하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관리하던 본인이 숨지게 될 경우,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유족이 관리하고 싶어 하지만 디지털 유산에 대한 명확한 법률이 없어 유가족들의 아픔이 가중 되고 있다.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디지털 유산

지난 2008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 고(故) 최진실 씨의 미니홈피에는 여전히 고인이 설정한 배경음악인 가수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가 흘러나온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팬들은 아직까지 미니홈피를 방문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며 고인을 그리워하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와 달리 사람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포털, SNS, 블로그, 카페, 웹페이지 등에 자신의 생각·사진·글 등을 올리거나 저장하는 문화가 정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포털 등에 생각 등을 올리거나 저장한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가족들이 포털 등에 대해 사망한 사람이 관리했던 내용들에 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인터넷 공간에 고인이 남긴 모든 흔적을 ‘디지털 유산’이라고 부른다. 이 디지털 유산은 ‘사망한 사용자가 인터넷 공간에 남긴 시각과 청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로 정의된다. 일반적인 유산은 민법의 ‘상속’편에서 유족의 권리와 의무 등에 대해 법적으로 상세히 규정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유산의 처리는 법적 근거가 없어 상황에 따라 달리 관리되고 있거나 아예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유산의 문제는 미국의 이라크 참전 해병인 저스틴 마크 엘스워스 병장의 사망과 관련해 2004년 11월경 그의 부모가 이메일 계정 접근을 거절한 야후(yahoo)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미국 판례 추세와는 달리 이 소송에서 유족이 승소했고, 이에 따라 야후측은 유족에게 이메일 내용을 CD와 프린트물로 전달했다.

 

소유권에 대한 이중적 반응

일상생활 속에서 인터넷과 디지털 콘텐츠의 비중이 커지면서 미니홈피나 블로그 같은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 현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니홈피 숫자는 3천만 개가 넘는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5천만 명이라고 한다면 절반이 넘는 국민이 미니홈피를 갖고 있는 셈이다. 최근 스마트폰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디지털 유산의 범위도 확대될 전망이지만 미니홈피나 블로그 같은 인터넷 디지털 정보 처리는 현재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현재 국내 유력한 법률적 견해는 ‘디지털 정보 자체는 유체물(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유형적 존재를 가지는 물건)이 아니고 배타적 지배 가능성도 없으므로 소유의 객체인 물건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 그 자체는 유체물이라고 볼 수도 없고 물질성을 가진 동력도 아니므로 재물이 될 수 없다고 정의했다. 법제에 대한 입법평가 연구를 진행한 가천대학교 법학과 최경진 교수는 “무엇보다 사용자 차원의 공론화가 중요하다”면서 “공론화가 이뤄진 뒤에는 서비스에 가입할 때 상속 여부 등을 미리 확인하는 등 서비스 제공자의 자율규제 속에서 정부가 법적인 효과를 일정부분 지원해주는 체계가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관련법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논의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유산에 사망자 자신이나 제3자의 비밀 등 고인이 공개하기를 바라지 않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지만 유족들은 모든 흔적을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사용자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응답자 가운데 41.9%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디지털 유산을 유족에게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가족이 사망할 경우에는 디지털 유산 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66.7%가 받고 싶다고 답했다. 대구에 사는 류모씨(28세)는 “디지털 유산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라며 “고인의 추억을 기리면서도 고인이 잊혀 질 수 있도록 1년 정도의 기간을 정해 관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의견을 밝혔다.

 

포털사이트, 디지털 유산 접근 ‘불가’

국내 포털 3사는 ‘디지털 유산은 죽은 자의 것’이라는 입장이다. 가장 많은 개인의 디지털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SK커뮤니케이션즈 고객센터에는 연간 620건의 디지털 유산관련 요청이 들어온다. 전체 요청 중 240여건은 회원 탈퇴를 요청한다. SK컴즈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계정을 유족에게 상속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니홈피는 고인이 최종 설정해 놓은 상태로 유지되며 비공개 콘텐츠의 경우 유족이 요청하더라도 공개로 전환하거나 열람할 수 없다. 유가족이 미니홈피의 정지나 해지를 요청할 경우, 업체는 이를 해지해준다. SK컴즈 측은 “사망한 회원의 미니홈피가 제3자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 명백히 아이디나 패스워드의 도용이기 때문에 사업자가 이를 인지했을 때 미니홈피를 폐쇄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지만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사실상 폐쇄하기 어려워 남겨두기도 한다”고 밝혔다.

다음이나 네이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사망자의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제공할 수 없으며 네이버 아이디는 양도나 상속이 불가능한 일신전속적인 이용권한”이라고 밝히고 있다. 단, 사망자가 블로그 등 계정 서비스의 게시물 내려받기를 요청한 경우 기본적으로는 제공이 불가능하지만 공개 서비스인 경우에는 편의를 위해 백업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는 사망자의 가족이 요청한 경우에만 적용되며 사망 사실과 가족관계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가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다음은 실명계정을 전제로 사망 사실과 가족관계를 확인한 후 계정 삭제만 가능하다. 망자의 사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계정삭제 신청서와 함께 확인해야 한다. 유가족에게 상속은 물론 자료 열람도 허용하지 않는다. 블로그와 메일의 경우 계정삭제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되지만 계정삭제 이후에는 콘텐츠의 열람이나 백업이 불가능하다. 다만 다음의 별도의 블로그 서비스인 티스토리에서는 신원 확인이 가능한 경우에 한해 공개 게시물과 비공개 게시물의 백업을 제공하며 로그인 권한도 부여한다. 유가족이 요청할 경우 폐쇄할 수 있으며 명예훼손이 우려되는 글이 게시될 경우 블라인드로 처리한다. 민후 법률사무소 김경환 변호사는 “이러한 포털 등의 관행은 사망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거나 사망자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라며 “이용자들의 상식이나 법 감정에 반할 수 있으며, 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처리방식과는 달리 국내 대표 포털인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KTH 등으로 구성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2011년 12월에 펴낸 연구보고서에서 “민법적 해석론으로는 디지털 유산도 상속의 대상인 ‘재산’으로 보는 데에 큰 무리는 없으며, 디지털 유산을 상속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정보통신망법상 비밀보호규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개인정보보호 의무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라며 “입법이 있기 이전이라도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어 사회적인 공감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디지털유산을 관리하는 대행업체가 설립되면서 신규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해외는 신규 비즈니스로 대행업체까지

이처럼 국내 업체들은 디지털 유산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유는 디지털 유산을 유족에게 넘겨야 할 법적 근거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법을 위반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생전에 고인이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비공개로 개인의 신변에 관련한 내용이 담겨져 있거나 제3자의 사생활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을 경우 사업자가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위험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법제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만 디지털 유산과 관련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이 세 차례나 발의됐다. 2010년 각각 박대해, 유기준, 김금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입법 취지는 포털사이트 등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면책 근거라는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유산을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현행 법률에서 부담할 수 있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법안 상정 이후 유족에게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의 범위와 그 권한 등에 대해 활발히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론은 법안 폐기였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입법 과정이 상당히 진행됐으며 회기가 끝나 자동폐기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라며 “상속에서 시작했지만 논의가 진행되다 보니 관련법 체계를 다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유산을 관리하는 대행업체가 설립되며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국내에는 아직 없지만 미국 등에는 디지털유산 관리 대행사가 존재한다. 레거시 로커(Legacy Locker)가 대표적이다. 94세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남긴 방대한 규모의 이메일과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손자 제레미 토반이 설립한 디지털 정보관리 서비스업체가 레거시 로커다. 이곳에서는 망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며 남긴 이메일 계정과 블로그, 사진, 동영상 등을 대신 관리한다. 이후 유사한 업체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는데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데이터 인헤리트(Data Inherit), 스웨덴에 본사를 둔 마이웹윌(mywebwikk)이 대표적이다. 이런 업체들은 가족이나 지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경우, 그를 기리고 그가 남긴 디지털 기록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포털 업체의 보수적 입장에 디지털 유산을 처리해주는 민간 기업이 생겨나며 신규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잊혀 질 권리를 가진 고인과 추억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디지털 유산의 개념을 정의하고, 민법·저작권법 등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취재/유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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