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기업형노점, 열 자영업자 안부럽다.
잘 키운 기업형노점, 열 자영업자 안부럽다.
  • 김용호 기자
  • 승인 2013.02.23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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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고용은 예삿일, 외제차를 몰고 골프 치러가는 노점상
[이슈메이커=김용호 기자]

[Social Issue] 기업형노점

 

오늘날 노점은 더 이상 서민을 위한 삶의 보루가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함은 물론 ‘기업형노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일정한 규제를 두어 노점을 허용·제재하고는 있지만 노점을 짓는 실질적 약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점에서도 문제점이 제기된다. 또한 세금을 내고 당당히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기본적으로 점포임대료와 부수적비용이 나가는 자영업자들은 가격경쟁력이라는 면에서도 노점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울상이다.


 


노점계의 거대공룡 ‘기업형노점’


늦은 밤 동네 어귀 노점에서 파는 어묵, 붕어빵, 떡볶이는 별미 중 별미다. 이들 노점상들은 대게 가게를 임대할만한 돈이 없어 생계 최후의 수단으로 노점을 선택한다. 대게의 노점이라 하면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생계형수단의 장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노점의 이점 아닌 이점을 이용한 기업형노점이 생기면서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노점 일부가 불법이익 추구 대상으로 악용되고 있다. 기업형노점은 심지어 부동산처럼 거래되기도 한다. 서울노량진에서 노점을 운영 중인 김 모(48)씨는 “매물이 나오긴 해도 잘 아는 사람들끼리만 거래한다”고 말했다. 권리금은 위치에 따라 5,000만 원에서 최대 1억 5,000만 원에 이른다. 300만~500만 원의 월세를 주고 임대를 주거나 아예 월 매출의 40% 정도를 임대수익으로 가져가기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노점을 거래할 때 노점상들 사이에서는 ‘깔세’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보증금 없이 선불로 들어가는 부동산의 월세 형태를 말하며, 이를 통해 기업형노점 중심으로 불법으로 거래, 임대 되고 있다.

  전국에서 노점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져있는 곳은 서울 명동이다. 명동은 노점 리어카의 줄이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부터 신한은행 명동지점·명동극장까지 이어져있다. 이곳은 명동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금싸라기 땅. 신기한 점은 이곳 노점상의 경우 주로 20살에서 30살 초반까지 다양한데, 알고 보면 이들은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다. 노점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월급은 150만~2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최 모(31)씨는 “영업이 막바지에 다다르는 저녁 11시쯤 노점 주인들이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서 판매대금을 수금한다”며 “노점 주인 중에는 외제차를 몰고 스크린골프나 당구를 치며 낮 시간을 보내는 이도 많다”고 언급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들은 불법 노점상을 9,000~1만 2,000여개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점상의 인적사항과 종업원 고용여부, 복수노점 소유 여부 등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태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노점 실태조사를 시도했지만 신분 노출시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과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노련) 등 노점단체의 반발에 밀려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실효적인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노점 영업권에 권리금이 붙는 등 ‘사유재산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협회까지 만드는 조직적 움직임


최근 노점은 더 이상 생계를 잇기 위해 거리로 나온 빈곤층이 아닌, 세금을 피하려는 부유한 탈세 상인으로 변질 됐다. 노점 창업을 컨설팅 한다는 광고가 생활정보지에 실리고 노점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했는가 하면, 노점매매 브로커까지 활개치고 있을 만큼 ‘길거리 협동조합’은 이제는 하나의 풍경이 됐다. 노점을 운영하는 박 모(45)씨는 “노점상 조합은 칼만 안 들었지 깡패”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 지역의 노점상은 폭력배가 ‘관리’하고 있다.

  노점조직은 일사불란하고 폐쇄적이다. 20년 넘게 독자적으로 상권을 관리해온 노하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노점조직은 먹을거리,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의 노점 수를 알맞게 배합해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막고 있으며, 노점 매매 또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권리금을 받고 노점을 넘겼다가 노점조직에게 적발되면 노점에 대한 영업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주변상권에 대한 영업방해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2012년 10월 16일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16일 노점상을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고 알몸으로 식당 영업을 방해한 A씨(55)에 대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례가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대로변 노점상 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마찰도 적지 않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점상 업주들이 격렬 시위를 벌이다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빈번하다. 2012년 7월 18일 충남 천안시에서는 전국노점상총연합회 주도로 노점 강제 철거에 반발하며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먹거리골목 철탑공원과 시청 앞 도로에서 1,050명이 분산 시위를 벌였다.

  기업형노점에 대한 시민들의 시민 또한 차갑다. 경기 고양시가 2007년 시민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2.2%가 역세권 기업형노점을 단속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과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노련) 등 노점 단체들은 기업형 노점은 극히 일부라고 주장한다. 자체적인 규약으로 매매와 임대, 복수 노점 운영, 아르바이트생 고용, 자릿세가 금지돼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노점에는 빈곤 구제라는 순기능이 있는 만큼 영업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노련 관계자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빈곤층이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순기능을 무시해선 안된다”면서 “세금을 안내는 것은 맞지만 크게 볼 때 그만큼 벌금과 과태료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선 감독기관인 구청 등은 실효성 있는 단속이 어려운 이유로 인력 부족과 노점 단체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을 꼽는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단속을 하기는 하지만 2,000여개에 달하는 관내 노점상을 직원 4명으로 어떻게 관리하겠나”고 한탄하며 “단속하려면 용역을 동원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다. 단속을 한다고 해도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시 들어온다. 그때뿐이다.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도시생태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대화를 통한 자체정비가 유일한 해법인데 노점단체 등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당한 세금내고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은 바보인가요?”


2012년 기준 노점상 등 사업자 등록조차 하지 못한 생계형 영세 자영업자 숫자가 229만 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자영업자 559만 명 중 40% 수준이다. 창업자금 5,000만원 미만 자영업자는 444만 명으로 전체의 80%에 육박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2년 7월 29일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바탕으로 이 같은 추계치를 발표했다. ‘자영업은 자영업과 경쟁한다’라는 보고서를 통해서다. 2013년에는 우리나라 자영업 종사자가 약 600만 명에 달할 것 이라는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는 제조업체의 고용인원(약 400만)보다 훨씬 많다. 이들이 쓰러지면 나라가 쓰러진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지금 폭발 일보 직전이다. 현실에서는 동종업계 종사자와의 경쟁구도가 아닌 노점과의 경쟁구도가 형성됐으니 말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분노의 외침에 더 이상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노량진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양 모(42)씨는 최근 더욱 큰 걱정에 빠졌다. 분식집을 닫아야할지 유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바로 최근에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노량진 ‘컵밥’ 때문이다. 점포 보증금, 권리금 임대료는 물론 부가세에 종합소득세까지 꼬박꼬박내며 장사를 하고 있는 양씨의 경우 메뉴의 단가를 내리려 노력해도 세금을 내지 않는 노점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노점하는 사람들은 생계형이라고들 많이 말씀하시는데, 저같이 상가 임대받아 세금내고 장사하는 상인들의 생존권은 누가 보장하나요?” 양씨는 이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이전에 이들 지역의 상권보호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 동작구청의 경우 사전에 전노련과 함께 절충안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주변 식당과 중복되는 메뉴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다. 하지만 이는 노점들에 의해 무산됐고, 구청 측은 노점들에 자진 철거를 요구했지만 노점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이번에 강제 집행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음날 노점은 보란 듯이 다시 영업을 시작한다.

  다음 아고라 토론 게시판에서도 찬성과 반대 의견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ID ‘호계동’은 “노점상은 서민, 영세업자 탈을 쓴 사람들이다. 노점상 주인들 중에 자신들이 번 수익을 제대로 신고해서 납세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인정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법 집행을 함으로써 다른 정직한 상인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단속해야 한다”며 컵밥 노점 철거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ID ‘동네남자’는 “컵밥집이나 포장마차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하나의 문화인데, 그 점을 살려서 노점에 일정 세금을 매겨서 합법적으로 인정해주고 그러한 노점들을 하나의 식문화로써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정답은 없겠지만 강제 철거와 같은 폭력은 이러한 문제의 해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며 반대의견을 내놔 인터넷 상에서도 의견이 팽배하게 맞서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노점과의 상생통한 발전방안 모색


서울 노원구는 2013년 2월부터 기업형노점은 강력히 철거하고 생계형노점은 인정하는 ‘노점관리 운영규정’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2월부터 운영이 인정되는 노점상은 재산규모가 2인 가구 기준 2억 원 이하(신규 신청자는 1억 2,000만 원 이하)로 노원구 거주 1년 이상 노점상을 선별해 1년 단위로 최장 5년까지 허가해 주기로 했다. 노점 규모는 2.0m×1.5m로, 노점폭을 제외한 보도폭이 2.5m이상의 도로에 허용 한다는 기준을 두고 ▲버스정류장 양끝 3m이내 지점 ▲지하철 출구로부터 5m이내 지점 ▲횡단보도로부터 3m이내 지점 ▲지하도 ▲ 육교입구로부터 3m이내 지점을 제한구역으로 지정했다. 아울러 ‘노점의 생존권’과 ‘주민의 보행권’이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2월말까지 지역내 모든 노점 544개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관리기준의 제한규정을 적용해 합리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도 성남시 또한 고양·부천·광명 등 경기도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노점상 허가제 도입했다. 분당구 서현역 로데오거리 노점상에 대해 단순하고 강제적인 단속만으로 정비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해 노점허가제를 시범 시행할 방침이다. 노점허가제는 도로법에서 위임한 조례의 도로점용허가 규정을 근거해 지방자치단체가 제시한 조건을 갖춘 일정한 수의 노점에 한해 도로점용을 내주는 형태로 영업을 허용하는 개념이다. 앞서 점포 상인들로 구성된 서현역 상점가상인회는 노점상을 ‘이슬상인’으로 고쳐 부르며, 노점 운영시간과 판매대 제한, 노점 수 감축 등 상생에 합의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노원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중 노점상이 4번째로 많으며, 구청 접수 민원 중 10%가 노점상에 관한 것으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구는 주민의 보행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안에서 노점의 생존권을 인정하면서 단속행정이 아닌 합리적인 노점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금과 비싼 월세에 허덕이는 영세상인들 눈에 싼 가격을 무기로 손님을 빼앗아가는 노점상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렇다고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 길거리에서 좌판을 펼쳐놓은 노점상들의 생계 터전을 철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생계의 목적이 아닌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형노점은 분명 사라져야 할 존재다. 자영업자와 노점. 생계에 허덕이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이들 간의 갈등이 경기 침체가 빚어낸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인 것 같아 왠지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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