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듣게 되는 ‘추천곡’의 진실
나도 모르게 듣게 되는 ‘추천곡’의 진실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3.02.23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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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의 저평가, 국민의 인식부재가 초래한 불편한 추천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Music Focus] 디지털음원 추천제

 

 

스마트 기기들의 대중화로 인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든 실시간 음원순위를 검색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해졌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A양도 예외는 아니다.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실시간으로 음악을 감상하고 다운을 받으면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었다. 어떤 노래는 친구들도 많이 좋아하고 TV에서도 방송되는데 음원순위는 ‘항상 마지막 가까이에 있거나 종종 순위에 보이지 않을까’란 의문이었다. 이러한 의문의 배경에는 음원 유통시스템의 추천제도가 있다. 현재의 디지털 음원 추천시스템은 순위의 공정성을 흐리며 자사 특정 곡의 홍보수단으로 몰락하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음원가격 상승, 추천제도는 그대로

새해를 맞아 새로운 핸드폰을 구입한 한중기(29·남)씨는 최신가요를 다운받기 위해 자신이 평소 이용하던 음원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곡을 다운받으려던 찰나 결제 가격을 보니 불과 지난주에 다운받았던 가격과 달리 2배 가까이 올라있었다. 한 씨는 “음원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너무 오른 게 아닌가”라며 이어 “계속 가격은 오르는데 정작 서비스는 나아진 것이 없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2013년 들어 음원 가격이 대폭 인상됐지만 음원소비자를 위한 배려는 부족하다. 더불어 각 음원사 마다 자사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 ‘추천’제도를 통해 음원 판매량을 늘이는 등 편법이 줄어들지 않으면서 소비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판매자만 배를 불리는 음원차트가 아닌가라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음원 사이트들은 가격은 오른 반면 기존의 ‘추천’제도 등은 크게 변화가 없었으며 추천의 상위랭크에 있던 음반들도 음원유통사의 모회사에서 흔히 말하는 ‘밀어주기’식 추천제도로 변질되어 있다.

지난 1월 27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 음원차트 공정성에 관한 공청회’에서 경희대학교 경영대 김민용 교수팀은 ‘온라인 디지털 음원 유통시스템에 있어 추천시스템의 구조분석과 파급효과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 김 교수가 국내 주요 5대 음원사이트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음악사이트들이 추천제도를 자사 곡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그 추천 선정 기준은 마치 ‘블랙박스’ 같아서 알 수 없으나 일종의 ‘낙하산’ 음원 아니냐”고 비판했다.

경희대학교의 김민용 교수는 “디지털 음원의 인기도는 오로지 소비자의 의도적인 행위에 의해서만 결정돼야 한다. 랭킹차트에 대한 어떠한 인위적인 조작이 없어야 하며 랭킹 표시 이외에 인간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심벌의 표시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추천곡’이 1위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순위별 노래가 나열된 화면에서 ‘전체 재생’을 누르면 1위곡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추천 곡부터 재생되는 게 현실이다. 김 교수 연구팀이 국내 5대 주요 음원사이트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000원 이상 구매한 소비층의 87.9%가 이러한 형태로 추천곡을 접했다.

일례로 추천되기 전 51위이었던 노래가 당일 28위로 진했고 추천 반나절 만에 13위로 껑충뛰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음원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별 의식 없이 '전체 재생'을 선택한다. 그럴 때마다 추천 곡들이 가장 먼저 흘러나온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단체들은 각 음악 사이트가 음원 차트 맨 위에 추천란을 배치하면서 자사의 음원을 홍보하거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더불어 ‘추천’에 들어가기 위해 로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추천 코너에 대한 비판은 음원 판매량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이 없다 하더라도 추천 등을 통해 음원 판매량을 늘려주기 위한 지원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각 음악사이트 측은 추천에 대해 “로비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라며 추천에 올릴 곡은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해 결정된다고 반박한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이상한 음원차트

하지만 추천제도의 부정적인 시각에는 이유가 있다. 특정 음원이 순위차트의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음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슬롯효과가 발생한다. 아무리 판단력이 뛰어난 소비자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슬롯효과와 함께 마치 해당 음원의 인기도가 높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판단오류 위치편의효과를 유도하는 복합작용으로 인해 차트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차트왜곡의 원인은 정액제와 무제한 스트리밍 등 현행의 디지털 음원 소비 성향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음원 소비자들은 디지털 음원을 저가의 제품으로 인식하게 되어, 음악의 고유한 특성보다는 그와 무관한 정보들로부터 음악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성향은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정보로 인하여 그 선택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밴드웨곤 효과(Bandwagon Effect)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에 멜론 측 관계자는 추천곡은 “가수의 인지도, 앞선 음원의 판매량, 사이트 이용자들의 최근 음원 구매 트렌드 등이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인지도가 높은 가수는 신곡에 대한 구매자들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앞선 음원의 판매량은 가수의 인지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평가된다. 음원 구매 트렌드에는 구매 패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계절적, 사회적 요소가 담긴다. 벅스 측은 “인지도가 낮은 신인 가수도 음악성과 성장 가능성 등을 자체적으로 심사해 추천에 올리기도 한다”며 “추천이 사이트의 매출과 직결되는 부분이 있는 데다 이용자들도 각 사이트를 비교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음원을 올릴 수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음악시장이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재편된 뒤 사실상 음원 차트가 대중음악의 인기 척도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음원 차트가 해외 팝이나 인디 음악의 인기와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부분의 음원 차트들은 다운로드와 온라인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음원의 인기 순위를 매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음원의 순위를 올리기 위해 팬덤 차원에서 단체로 스트리밍에 접속하는 이른바 팬들에 의한 순위조작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소비자들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듣기보단 인기 차트 상위권 음원들만 찾아 듣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공정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가공인 음악 차트인 가온차트는 소비자의 선호도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운로드에 가중치를 높게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온라인에 집중된 차트의 특성상 오프라인 음반 구매 선호도가 높은 해외 팝과 인디 음악의 인기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가 있다. 해외 음반을 국내에 유통 중인 유니버설뮤직코리아의 이인섭 이사는 “해외 음반의 경우 음원보다 오프라인으로 소비되는 비중이 높은데, 아무리 아이돌 그룹과 온라인 시장이 대세라지만 이러한 차트만으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보를 위해 편법까지 동원, 순위에 목숨 거는 제작사

음악 제작업체는 차트 순위에 목숨을 건다.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 소비자들이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화상품 제작사는 일정한 팬을 확보한 스타를 기용한다. 인기 만화, 소설 등을 영상화하는 것처럼 다른 시장에서 성공한 문화상품을 재가공한다. 또한 비평가나 대중문화 담당기자의 평가를 활성화하거나 네티즌, 관객들의 입소문을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기획사들은 시상식 수상을 마케팅 기제로 이용하는 등 수요안정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문화상품의 소비량을 서열화 시킨 차트 순위는 여타 어떤 광고형식보다 홍보효과가 있어 보다 많은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 대중은 매일 매스미디어에 의해 보도되는 영화흥행 순위, 시청률, 음원 다운로드수 등 차트 순위에 관심이 높아 홍보효과가 높은 것이다. 여기에 차트 순위는 문화소외감을 유발시켜 문화상품 소비를 촉진시키는 기능도 한다. 빌보드차트 2위에 올라선 싸이의 ‘강남 스타일’과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 ‘광해’, 30%대 시청률을 기록한 ‘해를 품은 달’같은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상품을 소비하지 않을 때 커뮤니티 구성원들과의 대화가 되지 않는 등 문화적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람들은 차트 순위 상위에 포진된 문화상품을 어쩔 수 없이 소비하게 된다.

문화상품 제작자들이 결사적으로 차트순위 상위에 포진하기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나 음악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전략도 구사한다. 일부 제작사는 자신이 만든 문화상품 사재기에 나서 차트 순위에 인위적으로 포진시키는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보다 많은 소비와 경제가치 창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차트 순위는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 쏠림현상을 가속화해 문화의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역기능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영화·드라마·음악의 경제적 이윤 창출에 무게가 실리면서 차트 순위 상위를 점령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현실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트가 되야

음원순위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순위를 정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차트인 아이튠스는 국내 음원사이트처럼 추천곡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차트 순위가 나오는 화면에서는 노출을 하지 않는다. 회사의 이름을 걸고 인기곡 순위를 가려내는 일에 왜곡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조치다. 이와 관련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유성우 팀장은 “추천곡 제도가 차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점을 잘 안다. 앞으로 부작용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현행 차트의 문제점에 뜻을 같이하고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대중가요에 있어 추천제도는 신인가수에 있어 기회의 창출과 널리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추천제도의 관행으로 인해 오히려 대형 기획사의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한 추천제도는 2013년 관계부처의 부단한 노력과 국민들의 인식변화의 기회를 바라보고 있다. 이에 최근 열린 가온차트 어워드가 눈에 띄는 이유다. 가온차트는 국내 음악산업 발전을 위해 공인된 대중음악 차트가 필요하다는 가요계와 음반업계 등의 의견에 따라 2010년 2월 출범했다. ‘가온’이란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한국의 대표 음악차트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운영·관리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에 따른 지출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없어져 정당한 평가를 이뤄낼 수 있도록 국민과 기업의 관심이 필요할 때다.

취재/류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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