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마(魔)블링’ 유혹에 빠진 대한민국
‘소고기 마(魔)블링’ 유혹에 빠진 대한민국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3.02.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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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 바로잡기 위해 올바른 소고기 등급 기준 도입 시급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Food Focus

 

‘소고기 마블링(Marbling)’ 논란

 

 

1920년대 농업 침체기에 미국 중서부와 동부의 목축업자들은 옥수수를 사료로 먹여 지방이 많은 자신들의 육우 품종 소고기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싶어했다. 그들은 ‘목축인 가제트’ 편집장이었던 앨빈 H. 샌더스를 앞장 세워 “동물의 근조직은 지방이 많아야 연하고 풍부한 맛을 낸다”고 정부 설득에 나섰다. 결국 미 농무부는 “눈에 보이는 지방 마블링의 양을 토대로 자유로운 품질 평가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몇 년 후 정부에서 비용을 댄 연구들에 의해 마블링이 결코 소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마블링이 풍부한 소고기의 지위는 지금껏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지방 밀도를 고기 품질의 주된 기준으로 삼는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되었고, 다른 두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 ‘요리의 과학자’로 불리는 미국의 화학자 해롤드 맥기(Harild Mcgee)의 ‘음식과 요리(On Food And Cooking)’ 中

 

잘못된 소고기 등급제, ‘마블링’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부산 최고의 한우 전문점 ‘급행장’의 손재권 대표는 “1등급이 나쁜 고기는 아니지만 좋은 고기라는 인식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2등급 고기를 쓰는 집에서는 등급에 관해 소비자에게 잘 안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소비자는 그저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좋은 고기인줄 알고 먹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손재권 대표의 말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고기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소고기의 육질등급은 투플러스(1++), 원플러스(1+) ,1,2,3등급 등, 총 5등급으로 나눠진다. 근육 내 지방도와 고기 색깔, 고기의 성숙도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지방이 살 속에 퍼져있는 고기가 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지근억 교수 “어떤 짐승이든 등심의 원래 형질에는 지방이 없다. 등심에 박힌 지방, 이건 사람이 맛있게 먹기 위해 일부러 소에게 질병을 만든 것이다. 방목해서 키우던 소도 출하 몇 개월을 앞두고는 가둬서 못 움직이게 하고 사료를 먹인다”고 전했다. 지 교수는 그래야 마블링이 좋아지고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며 입에 곡물을 억지로 밀어 넣어 푸아그라를 얻는 거위나, 못 움직이게 가둬서 옥수수를 먹인 소나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너무 마블링이 좋은 소는 느끼해서 꼭 버터 먹는 것처럼 맛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대다수가 ‘소고기 마블링’이라면 최고급 음식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1970년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의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1.2kg에 불과했지만 2010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이 처음으로 10kg을 넘어섰다. 지난 2012년에는 10.7kg을 기록했다. 소 사육두수는 올해 9월 말 현재 356만 마리까지 늘어났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소고기에, 그것도 몸에 좋지 않다는 마블링에 열광하는 것일까?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오랜 세월과 역사를 거쳐 소고기는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했을 때, 좋은 일이 있을 때 먹는 가장 특별한 음식’이라는 상징으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빈부격차가 커지고 1970, 80년대 서울 강남 일대에 소위 ‘가든’이라 불리는 소갈비 집이 생겨나면서 소고기는 부자가 되거나 성공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부의 상징이란 인식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며 서민들은 ‘영양 보충을 위한 최상의 음식’이라 여겼던 소고기에 늘 목말라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잘못된 소고기 등급제를 정부가 손쉽게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소고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옥수수 사료만 먹여 키운 소, 단백질의 탈을 쓴 지방 덩어리

소고기 마블링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외로 간단하다. 소의 주식인 풀 대신 옥수수를 주 먹이로 하면 소고기의 화학적 구성이 바뀌는데 여기서 마블링을 머금은 소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의학영양학과 박유경 교수는 “요즘 우리가 먹는 소고기는 초원의 다양한 풀에서 얻어진 다양한 성분이 아닌 옥수수 하나로 만들어진 고기이다. 한정된 종류의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제한적인 성분의 고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지방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옥수수를 먹인 소는 풀만 먹은 소에 비해 포화지방이 10배 이상 더 많다며 과거의 소고기는 단백질 음식이었지만 요즘 소고기는 지방 음식이라고 전했다. 옥수수 사료로 인해 소고기는 단백질의 탈을 쓴 지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방이 든 음식은 피하면서 마블링이 든 소고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아이러니한 태도는 옥수수를 먹였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인 마블링을 잘못된 소고기 등급을 제정한 정부와 고급육의 특징으로 광고한 업계의 마케팅 결과이다. 서울대학교는 농업생명과학대학 박은우 교수는 “옥수수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다. 속도는 이득을 남긴다. 전에는 소들은 보통 4~5년이 되어야 도축되었다. 지금 소들은 16개월에서 20개월이면 도축된다. 태어날 때 대략 36㎏인 송아지를 1년 남짓한 기간에 544㎏로 만들려면 풀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옥수수와 옥수수의 오메가6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옥수수의 단점은 단백질이 많지 않다는 점인데 이 문제는 콩깻묵을 같이 주는 것으로 해결하면 되었다. 단백질 보충제와 성장 호르몬을 이용하면 더 빨라진다. 야기되는 부작용은 항생제 같은 약품으로 해결한다고 덧붙였다.

옥수수를 먹여 약 15개월 만에 속성으로 키운 소의 고기는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보다 포화지방이 더 많고 오메가-3 지방산이 더 적다. 칼로리가 높은 옥수수로 기른 소고기의 근육에는 지방이 대리석 무늬처럼 박힌 ‘마블링’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미국 농무부가 고안한 소고기 등급체계는 바로 옥수수를 먹인 소에 대한 보상체계이기도 하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마블링’ 중심의 소고기 등급 기준, 바꿀 수는 없나

지난해 8월 18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마블링이 좋다는 것은 지방이 많다는 의미로 국민건강에 좋지 않은 만큼 소고기 등급 기준에서 마블링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소고기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부 실무자들은 난데없는 고민에 빠졌다. 실무진이 곤혹스러워진 까닭은 장관의 발언이 국민 정서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 실무자는 “소고기 등급 기준을 바꾸기 위해서는 축산법 시행규칙이나 축산물 등급판정 세부기준 등을 변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구용역 진행과 여론수렴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마블링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 정서상 쉽게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축산과학원에 따르면 한우가 높은 등급의 마블링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풀 사료와 함께 곡물 사료를 섭취해야 한다. 문제는 당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곡물가격지수가 전달보다 17% 폭등하는 등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어 고스란히 국내 사료업계나 농가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 장관이 마블링을 소고기 등급기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였다.

당시 소고기 관련 단체들은 서규용 장관의 방안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이미 마블링 기준에 맞춰져 있는 상태에서 마블링이 없는 한우를 고급육으로 구분하면 기준 자체가 외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최근 한우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마블링이 높은 등급의 한우 가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축산 농가들이 수익을 내는 상황”이라면서 농식품부가 등록 기준을 바꾼다면 높은 등급을 낸 농가들마저 폐업하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서규용 장관은 사료·제분 공장을 찾아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곡물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김한호 교수는 “연간 곡물 수입량의 절반 이상이 사료에 쓰이니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우려를 염두에 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서 장관의 고민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소고기 등급 기준을 바꾸기 위한 방책 중 하나이다”라고 귀뜸했다.

하지만 곡물사료 대체 방안도 뚜렷하게 잡힌 것은 아직도 없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사료를 적게 먹이는 기법을 연구할 수도 있고 곡물을 적게 먹이도록 어린 소를 출하할 수도 있다. 또한 풀 사료나 섬유질 가공사료(TMR)를 먹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곡물 값이 하락해도 다른 사료의 가격 경쟁력이 높은지, 맛이 떨어지거나 안전성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역시 이제부터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검토’를 시작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축산물등급판정소 이재용 소장은 “소고기 등급제 하나 고치는 게 대수이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작업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연구용역 뒤 축산법 시행규칙이나 축산물 등급판정 기준을 손보는 건 어렵지 않다고 해도 마블링 좋은 고급육을 생산하며 버텨온 축산농가와 부드럽고 고소한 소고기를 즐기는 일반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혀가 기억하는 입맛을 바꿔야 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 것이라며 소고기 마블링으로 인한 등급 기준을 바꾸는 건 장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굳어진 여러 관행과 습관을 뜯어 고치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소고기 등급 기준 수정, 국민과 소의 건강 지켜

2012년 11월 경기도에서 때 아닌 한우 등급기준 논란이 일어났다. 한우 등급기준이 마치 품질기준인양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 학교 급식에서도 지방이 많고 비싸기만 한 1등급 한우를 고집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당시 행정자치위원회 안승남(민주통합당)의원은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마블링, 즉 지방이 많은 한우 1등급은 지방이 적은 3등급 보다 성인병과 비만 유발의 원인이 되는데도 보조금까지 지원하면서 급식하느라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이 같은 현상은 1등급 한우가 2,3등급 보다 낫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며 경기도가 매년 60억~70억원의 보조금을 주고도 1인당 연 1kg도 안 되는 1등급 한우를 급식하기 보다는 3등급 한우를 사용하고 고기 양도 늘리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한켠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일어 소고기 등급 기준 수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소고기 등급 기준을 조정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마블링을 얻기 위해 옥수수를 이용하다 보니, 당연한 관계에 있던 소와 풀은 강제로 떼어졌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이우신 교수는 농작물과 가축을 함께 기르면, 작물 부산물로 가축을 먹이고 가축 부산물을 작물 비료로 쓰는 간단하고 우아한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고리를 끊으면서 환경오염과 소, 땅, 인간의 건강이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산업적 음식사슬은 화석연료에 의존한다며 소 한 마리가 하루 12㎏의 옥수수를 먹고 600㎏까지 자라는 데 석유 132ℓ가 든다고 전했다. 소고기는 결국 태양이 아니라 석유에 기반을 둔 식품이란 얘기다. 이 교수는 “그냥 방목해서 풀 뜯어먹고 자란 소고기를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데 곡식을 먹여 키운 소들은 마블링은 곱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인간이 섭취하고 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엄청나게 높아진다. 채식과 동물 보호를 떠나서라도 자연의 이치 그대로 두는 것이 개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좋다고 본다”고 전했다.

마블링 중심의 육류 소비 선호 풍토는 자연 파괴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식량위기에까지 영향을 주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올바른 소고기 등급제 기준 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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