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받을 의사가 없어지고 있다
애 받을 의사가 없어지고 있다
  • 유재명 기자
  • 승인 2013.01.28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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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과 경영난으로 비인기과로 전락
[이슈메이커=유재명 기자]

[Society Focus Ⅱ] 산부인과 위기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작년 8월에 있었던 2012년 산부인과 전공의 후기 모집 결과 총 66명 모집 정원 중 단 2명이 지원해, 후기 전공의 확보율이 3%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기피현상은 수년 전부터 이어져오며 산모와 태아, 여성 건강을 책임진 산부인과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산부인과에 아기 울음소리 대신 의사들의 한숨 소리만 들리고 있어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산부인과의 자화상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환희로 가득찰 것 같은 산부인과. 2012년 초 의사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사건은 뜻밖의 모습으로 산부인과를 바라보게 했다. 바로 연달아 터진 산부인과 의사 자살사건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이모(여·48)씨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홀로 10여년 산부인과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작년 분만 과정에서 산모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나오던 아이도 산소가 부족해 사망했다. 고위험 산모도 아니었던 탓에 예상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 의사의 과실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원인으로 밝혀졌다. 개원 이래 10여 년 동안 단 한 번의 의료 사고도 없었기에 이 씨는 당황했다.
하지만 환자의 가족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고 협박 전화와 욕설을 퍼부었다. 수억 원대의 보상금을 주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러다 연달아 또 한 건의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도 무과실 처분이 났지만 환자들의 가족은 계획적인 협박 공세를 폈다. 사망한 산모의 동생이 병원에 살다시피 하며 의사와 간호사를 협박했고 수십억 원대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몇 년 사이 크게 줄어든 분만 건수로 경영난을 겪었던 이 씨는 의료사고까지 겹치자 극한 선택으로 2012년 3월, 자신의 병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현재 산부인과의 현실은 A씨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30대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산부인과 출신이지만 현재 피부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간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산부인과의 미래는 창창해 보였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까지 꼬박 14년이 걸렸다. 한 번도 뒤처지지 않았다. 실패도 없었다. 의대 6년, 인턴 1년, 공중보건의 3년, 수련병원에서 다시 4년. 하루건너 당직을 서는 ‘퐁당퐁당’도 참았다. 수술도구를 순서대로 정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 전공의에게 맞을 때도 인상을 구기지 않았다. 밤을 새우며 교수들이 시키는 해외논문 번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환자를 잘 보는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기에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 막상 병원에 오니 배운 내용을 거의 써먹지 못했다. 환자는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는 대부분 큰 병원으로 옮겼다. 분만을 하지 않으니 임신부를 볼 기회가 줄었다. 그 대신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산부인과 질환과 무관한 레이저 피부 치료뿐이었다. 결국 A씨는 산부인과 전문의를 그만두고 인기 많은 피부과를 선택하게 됐다.

 

업무 과중으로 분만 거부까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에도 국내 산부인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부인과는 우선 개원 시부터 돈이 많이 든다. 대한분만병원협회 이동욱 총무이사는 "산부인과 개원을 하려면 평균 10억은 있어야 한다"라며 "다른 과에서는 없어도 될 분만실, 분만대, 신생아실, 산모입원실, 식당 등이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하고 산모입원실마다 샤워실도 갖춰야 한다. 보통 다른 의원 개원 비용의 평균 20~30%는 더 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유지비는 더 많이 든다. 보통 의원급 병원은 3교대 의사가 없어도 되고 낮에만 상주하는 의사 한 명만 있어도 병원이 돌아간다. 하지만 산부인과는 언제나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새벽 2~3시에 아이를 받으러 병원에 나오는 것은 기본이다. 의사만 나온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 신생아간호사, 관리인 등도 밤에 근무해야하는 현실이다. 어려운 근무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는 대우가 부족해 많은 산부인과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총무이사는 "병원 경영 유지비가 가장 높은 과 중 하나가 산부인과인데 산과 수가(분만 시 병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는 돈)는 턱 없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만 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제출한 ‘2011년 의원유형 수가 조정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시간은 보통 3~6시간이 걸리는데 비해 산모 한 명에 50여만 원을 받는다. 실제 같은 분만의료행위를 했을 때 미국은 661만원, 프랑스는 307만원, 영국은 225만원으로 OECD 회원국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2012년 12월 지방의 C대학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2년차와 3년차가 사표를 내고 출근을 거부했다. 이들은 업무 과중 개선을 요구하며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산부인과전문의의 4분의 1은 분만을 아예 하지 않고 있으며, 연령층이 낮을수록 분만을 하지 않는 비율도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2012년 6월 1일부터 8월15일까지 산부인과전문의 559명(남자 331명·여자 228명)을 대상으로 '분만관련 근무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40대 연령층에서는 전문의자격 취득 후 아예 분만을 하지 않았던 경우가 1.6%인 반면 30대에서는 10.2%로 나타났다. 대체적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야간당직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노동의 부담 때문에 분만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으나, 최근 연령층이 낮은 30~40대에서부터 분만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자 전문의 경우 처음부터 아예 분만을 하지 않은 경우 7.9%로 남자(2.7%)의 약 3배에 달했고 분만을 하다가 그만 둔 경우도 여자(26.3%)가 남자(20.5%) 보다 높았다. 분만을 하지 않는 원인에 대해 여자 산부인과전문의의 60%는 강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꼽았고, 이밖에도 병원운영 적자 등 경제적 문제(13%), 의료사고에 따른 난동이나 폭력적 진료방해(3%), 의료소송 발생(2%) 등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 전공의 4년차 김 씨는 “분만 자체가 갖는 불가항력적인 상황 발생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다”라며 “분만관련 의료분쟁이 너무 잦은 것도 문제다”라고 얘기했다.

 

산부인과 총체적 위기
'전공의 연차가 올라갈 때마다 격려 차원에서 500만원을 지급합니다' 2013년도 전공의 모집에 한 수련병원에서 내건 모집 공고가 눈길을 끌었다. 내용만 보면 전공의 구인난에 허덕이는 지방 대학병원의 그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공고는 ‘빅5병원’ 중 한 곳인 서울성모병원이 속한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것이다.
  산부인과 위기의 조짐은 전공의, 전문의, 개원의를 가리지 않고 총제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2011년 처음 두 자리 수로 내려간 배출 전문의 숫자는 2012년 사상 최저인 90명을 기록했다. 전공의가 4년 간 수련한 후 전문의 시험을 보는 구조를 고려하면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는 않아 보인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산부인과 교수 A씨는 전공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통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가 미리 찾아와 눈도장을 찍는 등 인사를 했지만 최근 들어 찾아오는 지원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비슷한 처지이다. 뽑아둔 전공의가 그만두고 나간 탓에 1년차 전공의가 한명도 없는 것이다. 신정호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산부인과 전공의, 전문의 숫자 감소는 양적 변화 뿐 아니라 여성의학 발전 저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심각하다"라며 "산부인과의 위기는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사 수가 줄었다고 개원 의사들의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2011년 기준 동네의원의 개·폐업 현황을 보면 개업한 산부인과는 52곳, 폐업한 산부인과는 102곳으로 산부인과 50개가 줄었다. 전체과 중 가장 많이 줄어든 수치다. 대표적 비인기과인 외과조차 12곳이 준 것과 비교할 때 심각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을 다루는 고결한 직업이라는 사명감만으로 그들의 희생을 바라기에는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부족해 보인다.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 올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산부인과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기대해 본다.
                                                                                                                           취재/유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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