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물- 성종사 원광식 대표범종
한국의 인물- 성종사 원광식 대표범종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3.01.28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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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남윤실 기자]

 

장인부문

 

세계는 좁아지고 가까워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전통을 보존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걸까? 몇 해 전 미국 시카코 대학이 세계 34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애국심과 자긍심을 조사한 결과, 미국이 1위였고 우리나라는 31위였다고 한다. 우리 헌법 9조에도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자’라는 중요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지금의 세대들은 삶의 질에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이란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있는 나라들이며 전통문화의 바탕 위에 외래문화를 수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 평생을 바쳐 종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피 땀 흘려 노력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주철장을 보면서 전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면 어떨까?

 

종소리는 곧 진리의 원음인 것을
“이 사람아! 혼을 담아야 천년의 소리가 나오는 거지. 잔재주를 부리면 끝이야! 끝!”
2007년 모 기업의 광고 모델로 등장해 한국의 명장으로 소개된 바 있는 주철장 원광식 씨의 칼칼하고 고집스러운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전통은 그렇게 잔재주로 성취되는 껍데기가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 심겨져야 하는 알맹이라는 그의 말처럼 원광식 씨가 만든 범종 하나 하나에는 영혼이 심어져 있다.최근 제작한 대만 불광산사 범종만 봐도 5,200여 자의 <금강경>이 새겨져 있는데 이만한 공을 들이며 쏟은 열정은 지금까지 수 천 구의 종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높이 4.32m, 직경 2.55m, 무게만도 25.5톤에 달하는 대만 최대의 범종은 원 대표만의 특허공법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범종 제작공법인 밀랍주조공법으로 제작이 되었다는 점이다. 밀랍주조공법이란 본래 천년 전 신라인들이 범종을 제작하는데 사용했던 전통주조방법을 말하는데 원 대표가 사용하는 밀랍주조공법은 전통주조공법에 현대 기술을 접목시켜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독창적인 주조방법으로 세계에서 성종사만이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2000년 대한민국 명장,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2005년 신지식인(대통령 표창)에 선정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종장인 원광식 대표는 국내 최대 범종인 세계 평화의 종을 비롯해 총 7,000여 구에 달하는 범종을 제작,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 일본, 싱가포르, 홍콩, 태국, 베트남, 미국 등 외국에서도 그가 제작한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있지만 아직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범종의 진리를 알리고 싶어 한다. 그는 “더 많은 전 세계인들에게 고루 퍼져 지옥의 중생들까지 제도하고 나아가 인간들의 번뇌를 씻어 줄 때까지 큰 은덕을 베푸는 것이 제가 종을 만드는 목적입니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원 대표에게 이러한 사명감을 갖게 했을까?

 

숙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종장 원광식 대표가 범종 제작에 몰두한 세월은 자그마치 52년간이다. 세월로만 봐도 진정한 장인 중의 장인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들었던 할아버지 원덕중 옹이 만든 종소리에 빠져 다른 일에는 통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17살부터 종 만들기를 배워 장인의 길에 들어섰다. 8촌 형이 운영하던 <성종사>에서 혹독하게 일을 배워 젊음을 불태우다 쇳물이 폭발해 한 쪽 시력을 잃어 잠시 농사를 지으며 시련을 극복한 1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종 만드는 작업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원광식 대표. 여생을 바치리라 결심한 것은 1970년 28세가 되었을 때였다.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광복 후 국내 최대 규모의 범종을 제작한다는 소식에 원 대표는 머리를 깎고 수덕사 대웅전 앞에 작업장을 만들어 꼬박 3년 간 불심으로 범종 만들기에 매진, ‘종소리가 삼십 리 간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으며 제작의뢰가 줄을 이어 현재 국내 사찰에 있는 대부분의 범종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다. 가슴 한 구석에는 늘 천 년 전 신라 장인들의 모습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사찰 방문 때였다. 일제가 빼앗아 간 신라 종을 보물처럼 받들며 그 소리에 감탄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자 자신이 초라해졌다. 외형을 만드는 데는 이미 달인이 된 그였지만 그 원음의 소리는 아직까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후반, 전설로만 전해지던 신라인들의 ‘밀랍주조 기법’ 연구에 매달렸다. 이미 맥이 끊겨 국내 어떤 문헌과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던 기술이었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모든 사찰을 뒤져봤지만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밀랍주조라는 단어 하나에 매달려 밀랍과 기름을 배합해 만든 초로 모형과 문형을 제작하면서 수백 번 만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일부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장중하고 맑은 소리 뿐만 아니라 긴 여운을 갖는 종의 소리를 위해 1,200도의 쇳물을 끓임과 동시에 거푸집에 넣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쇳물의 온도를 견디면서 내부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숨을 쉬는 흙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한 박물관에서 우연히 동경(銅鏡)으로 만든 흙 틀을 보다 아차 싶었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 일대를 샅샅이 뒤져 당시의 흙 재질인 활석과 이암(泥岩)을 찾아내면서 10년 매달린 연구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일제에 빼앗긴 신라 종을 복원하기로 결심한 원 대표는 늘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던 신라인들을 꺼내 범종 제작에 나섰고 막주물 기법보다 2배 이상의 시간과 정성이 드는 밀랍주조 기법으로 그 신비한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혼이 살아 숨수는 종 제작위해 혼신
6천여 평의 부지 위에 50톤이 넘는 종을 제작할 수 있는 최신 용해설비와 주조시설을 갖춘 성종사. 그리고 2005년 충북도와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건립한 종박물관. 이 두 곳만 둘러봐도 그간 원 대표가 흘렸을 땀의 양을 추정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전시된 종과 제작 중인 종들이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 대표가 만든 종에는 특정한 형식이 없다. 그리고 어떤 종도 100% 만족하는 종이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종이 놓일 위치와 환경에 따라 곡선과 장식, 부처님의 진리가 다르고 만족하는 순간,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의 손에 주름처럼 아직도 식지 않은 종 제작에 대한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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