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자극 하는 추억 한 조각
감성을 자극 하는 추억 한 조각
  • 유재명 기자
  • 승인 2013.01.28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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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을 공유했던 아날로그
[이슈메이커=유재명 기자]

[Memory Focus] 추억속으로
                                     감성을 자극 하는 추억 한 조각
                                    따뜻한 마음을 공유했던 아날로그

예전 상상속의 모습들이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실화되며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 속에 물들어가고 만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도 많이 있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는 “세상이 편리해진 것이지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지금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단지 잊혀져가기에는 소중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을 배려하는 정(情)
우리나라를 표현할 때 2차 대전 이후 독립국 중에서 가장 빨리, 가장 훌륭하게 나라를 재건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 서구 문명 150년 동안 이룩한 선진산업을 단 40년 만에 이룩한 나라 등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기도 하며 외신에서도 놀라워하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늘어나고 기술의 발전으로 편리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 한 구석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인사도 없이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현대인들에게서 ‘이웃사촌’이란 말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의 친밀감으로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의 따뜻한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언제나 열려있는 문을 통해 서로 왕래하며 맛있는 음식을 했으니 먹어보라고 전해주기도 하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상부상조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던 이웃사촌의 모습이 단지 ‘이웃사람’으로 돼버렸다.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걱정하며 작은 소음에도 항의와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등 작은 이해심마저 사라진 모습이다. 이기심을 내려놓고 먼저 이웃에게 따뜻한 인사로 어색함을 지우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사촌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지금처럼 휴대폰과 이메일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인들의 사랑을 키워가는데 편지는 큰 역할을 했었다. 예쁜 편지지와 각양각색의 필기구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정성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며 밤새 고치면서 여러 장 버려진 뒤에야 완성 됐던 편지.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곱게 접어 담벼락에 기대어 상대방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쭈뼛쭈뼛. 쑥스러움에 던지듯 전해주고 도망치던 기억. 답장이 가져다주는 얼마간의 공백의 시간동안 차분히 상대방을 떠올리면서 기다리는 일. 이렇듯 편지에는 애틋함이 담겨있다. 시간이 흐른 뒤 꺼내어 봐도 그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게 하는 편지는 지금의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와는 확연히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펜을 잡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편지를 써본지 언제인가.

 

 

 

잠깐의 여유로 느끼는 행복
‘100원의 행복’,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바삐 움직였던 기억’, ‘쌓여 있는 동전 탑’. 몇 개의 힌트로도 알 수 있는 추억이 있다. 작은 매장 안 몇 대의 기계에는 언제나 학생들로 붐벼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음으로 가득했던 곳, 바로 오락실의 풍경이다. 돈이 다 떨어져도 집에 가지 않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아이들은 부모에게 혼이 나면서도 어김없이 다음날이면 오락실에 얼굴을 내밀었다. ‘스트리트파이터’, ‘테트리스’, ‘1945 스트라이커’, ‘보글보글’ 등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은 실내 놀이문화가 적었던 아이들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했었다. 새로운 게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흥겨운 댄스음악에 맞춰 화면을 보며 춤을 출 수 있었던 DDR게임기의 등장으로 오락실은 한층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중, 후반 PC방의 등장으로 오락실은 점점 동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단돈 200원으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었던 커피자판기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일상을 영위하는데 현대인의 생필품처럼 돼버린 커피문화를 대중적으로 보급하는데 큰 기여를 했던 커피자판기. 바쁜 일상의 쉼표로서 추운 겨울 잠깐의 따뜻함을 얻을 수 있고, 주머니 사정이 얇은 대학생들에게 쉬는 시간 적은 비용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했던 커피자판기는 커피전문점과 편의점이 빠르게 늘어나 도심 어디에서나 고급 커피를 손쉽게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청주대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이 씨는 “5~6년 전에는 자판기 커피를 자주 뽑아 먹었지만 요즘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먹다 보니 자판기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3~4분의 짧은 티타임으로도 수많은 화제들로 얘기꽃을 피울 수 있고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했던 커피자판기가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10여 대의 자판기를 운영하는 A씨는 “사업을 시작한 2005년만 해도 자판기 한 대당 매일 수십 잔씩을 팔았지만 요즘은 하루 10잔 팔기도 힘들다”라며 “업종을 쉽게 접을 수도 없어 고민이다”라고 털어놨다.

  구멍가게 아들이 부럽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마음에 ‘우리도 가게하면 안돼?’하고 엄마에게 떼를 쓰기도 했다. 동전 몇 개를 모아 친구들과 구멍가게에 우루루 몰려가 불량식품을 사 먹기도 하며, 구멍가게 아들의 책가방을 들어다주고 사탕 하나라도 주면 마냥 기쁘기만 한 순수했던 시절.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구멍가게를 자주 애용한다는 김순자(여, 57)씨는 “우리들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조그만 구멍가게가 하나씩은 꼭 있었어요. 친구들 손을 잡고 호기롭게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 ‘사탕주세요’라고 외치면 가게 아주머니가 항상 몇 개씩 덤을 얹어줬지요. 오래전 얘기지만 그때는 그런 낭만이 있었는데”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대부분의 구멍가게는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 셈이다.

 

 

‘11원이요, 23원이요, 38원이요, 빼기 27원이면?’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학생들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주판알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1970년 대 말에서 80년대 초,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노란 학원가방을 들고 주산학원으로 향했다. 수학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학부모들은 주산학원을 선호했지만 개구쟁이들은 신발 밑에 주판을 달고 스케이트를 탔고 선생님한테 걸려 주판으로 머리를 얻어맞곤 했다. 7~80년대 우리나라 주산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세계학생주산선수권 대회에서 매번 상위권을 휩쓸었고, 서울여상의 이춘덕씨는 주산 10단으로 82년 국제계산기능올림픽에서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암산부문 세계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80년대 후반 전자계산기가 보급되면서 주산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003년 펴낸 ‘한국직업사’에서 주산학원 강사는 ‘사라져가는 직업’으로 분류되기도 하며 점차 주변에서 없어졌지만 집중력과 암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지며 주산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빵집에서 우유를 마시며 미팅을 했던 그 시절. 지금처럼 영화를 즐겨봤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3D, 4D 영화도 즐길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영화관 벽면에 유화로 그려진 영화 간판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된 간판 속 영화인생들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시대의 변화를 알렸다.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상황에 영화 간판은 영화의 내용과 메시지까지 모두 함축하고 관객들이 올 수 있게 하는 고리의 역할을 했었다. 간판에 그려진 영화 속의 한 장면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명화였고,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끄는 마법의 손짓이었다. 1960년대부터 단성사, 대한극장, 서울극장에서 활동하며 수천 개가 넘는 작품을 그려낸 영화간판계의 산 증인이자 역사인 백춘태씨는 “영화가 끝나면 간판 위에 흰칠을 하고 다시 그립니다. 작품이 사라져버리지요”라며 “그것처럼 이제 없어진 장르가 되었지만 기획전이라도 자주 열려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는 것을 아쉬워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그림간판을 내걸고 있는 예술전용극장인 광주극장은 2012년 4월 시민들과 함께 손간판을 직접 그려보는 자리를 만들며 사라져가는 영화 간판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김종원 상임고문은 “영화 간판은 그 시대의 사회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당대의 대중들의 취향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전 모습들이 순리대로 없어지고 있지만 편리하고 화려함 속에 진정한 행복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느림’과 ‘여유’의 미학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우며 또한 인심마저 사라져 버릴까 걱정된다. 잊고 살아가기에는 모두에게 소중했던 추억들이며 마음 따뜻했던 우리들 모습.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모습들이 그리워진다.
                                                                                                                          취재/유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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