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머릿속 ‘상상’, ‘현실’이 되다
작가의 머릿속 ‘상상’, ‘현실’이 되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3.01.28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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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라”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Imagination Ⅰ] 인문학적 상상력

 

그르누이는 1738년 한여름 파리의 음습하고 악취 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사생아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지만, 그의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로부터 그르누이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다. 기이하게도 그르누이는 아무런 냄새가 없으면서도 이 세상 온갖 냄새에 비상한 반응을 보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미세한 향기에 이끌려 그 황홀한 향기의 진원인 한 처녀를 찾아내어 그녀를 목 졸라 죽이고는 그 향기를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 이후 그는 파리의 향수 제조자인 발디니의 도제로 들어가 매혹적인 향수를 끊임없이 개발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비정상적으로 향기에 집착하던 그르누이는 지상 최고의 향수, 즉 사람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향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향수’라는 이색적인 소재에서 이끌어낸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위트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어 새로운 세상과 어디에서도 맡지 못한 향기를 느끼게 한다. 바로 ‘소설적 상상력’의 매력이다.

 

 

다른 세상을 표현하는 소설적 상상력

‘상상력’은 마음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영상을 만들거나 경험을 초월한 세계를 만드는 정신적 능력을 의미한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상상력의 특징이기에 다른 장르보다 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상상력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일반인들은 자기가 직접 ‘그 무엇’과 만나는 것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그 무엇’과 만나는 걸로 마무리하지 않기 때문. 작가들은 활자를 통해 ‘만난 것’을 토대로 또 다른 만남, 즉 상상력을 동원해 다른 세상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소설적 상상력’이다.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재촉하는 토끼가 앞을 지나가고, 담배 피우는 애벌레가 지나간다. 가발 쓴 두꺼비가 보이고, 트럼프 나라에서 여왕과 크로크 경기를 펼치기도 한다. 하루를 심심하게 보내던 앨리스는 이 황당한 일을 갑자기 겪게 된다. 양 손에 든 버섯을 번갈아가며 베어 물면서 몸의 크기를 조절해 갑자기 몸이 집을 부숴버릴 만큼 커지기도 하고 늘 손으로 쓰다듬고 예뻐하던 강아지가 갑자기 망아지처럼 커져버린다.

18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표된 환상문학의 효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소설의 내용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자신이 머물던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장의 딸에게 영감을 얻어 작품을 완성한다. 어린이를 어른에게 부속된 존재로 여기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아이들을 독립된 존재로 인정했던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어린이의 내면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글로 표현하게 된다. 더불어 어린이들이 자신이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또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했다.

당시 그의 작품을 두고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레통은 “어린이들의 신비한 왕국으로 어른들을 다시 한 번 초대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앙드레 브레통의 말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들의 언어와 표현을 함께 공감하면서 어른들을 초대하는 작품이다.

최근 책장 속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꺼내봤다는 김주현(31·여) 씨는 “책의 상상력은 삶을 참 다채롭게 만들어준다”며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보면 무거운 현실의 압박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상상력이 가득한 소설을 좋아한다고 밝힌 아이디 @wests**** 트위터리안도 “책 속의 상상을 머릿속에 그리는 작업이 좋다. 이 순간만이라도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자 처음 경험한 인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통용되는 ‘롤리타 콤플렉스’, ‘베르테르 효과’

상상력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실재물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가까이 끌어당기는 능력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상상력이 가득한 소설에서는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가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으나, 다음해 판매금지가 되어 1958년 미국에서 발간, 베스트셀러가 된 러시아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롤리타,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 헌버트는 열두 살 소녀 롤리타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엄마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다음 롤리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엄마를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이후 롤리타와 사랑의 도피를 하지만 롤리타는 도중에서 달아나고, 헌버트는 롤리타를 가로채간 남자를 찾아서 사살하고 투옥된다.

「롤리타」는 위에서 설명했듯 성적도착증(性的倒錯症)을 다룬 소설로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후 롤리타 콤플렉스는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고 이를 즐기는 것, 혹은 소아에 대한 이상 성욕을 가지는 것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 롤리타 콤플렉스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전남 나주 성폭행사건의 범인 고종석이다. 그는 “아동포르노물을 자주 봤다. 어린이와의 성행위를 꿈꿨다”고 진술해 경찰은 고종석을 전형적인 롤리타 콤플렉스를 보이는 인물이라고 칭했다.

현재까지 소설에서 탄생된 효과로는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델로 증후군 「오델로」, 파랑새 증후군 「파랑새」, 신데렐라 콤플렉스 「신데렐라」, 뮌하우젠 증후군 「뮌 하우젠 남작의 모험」 등이 있다.

‘베르테르 효과’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최근 자살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 효과는 독일의 시인 괴퇴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탄생됐다. 작품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 벨헬름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이 소설에서는 온통 한 여자이야기 뿐이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바로 로테. 하지만 이미 약혼자가 잇는 로테이기에 베르테르는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베르테르는 이 슬픔을 함을 수 없자 로테를 찾아가기를 반복, 하지만 로테가 결국 약혼자를 선택하자 베르테르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어내면서 특히 슬픔에 빠진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을 선택하는 기이한 현상을 낳았다. 소설적 상상력이 현실이 된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가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베르테르 효과’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소설을 통해 이상향을 바라다 ‘유토피아’, ‘도원경’

 

▲토마스 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서양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동양에서는 도연명이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원경’이 있다.

 

한편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인 토마스 모어의 정치적 공상소설 「유토피아(Utopia)」에 묘사된 이상향이다. Utopia는 그리스말의 Outopos에서 유래한다. Ou는 not, topos는 Place이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바로 not Place(어디에도 없는 곳), 다시 말하면 이상의 나라인 셈이다. 토마스 모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영국의 정치경제의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데 있었다. 토마스 모어는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부터 많은 철학자가 지적했듯 상상력은 인간의 근원적인 능력의 하나다. 상상에 의해 우리는 현실의 여러 질곡을 떠나 의식 세계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물 위로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데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는데, 양쪽으로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다. 수백 보에 걸치는 거리를 복숭아꽃이 춤추며 나는 가운데 자세히 보니 계곡 밑으로 작은 동굴이 뚫려 있었다. 그 동굴은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더니, 별안간 확 트인 밝은 세상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끝없이 너른 땅과 기름진 논밭, 풍요로운 마을과 뽕나무, 대나무밭 등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어부에게 그곳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과 얼마간을 지낸 뒤 어부가 그곳을 떠나려 할 때 그들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어부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길목마다 표시를 하고 돌아와서는 즉시 고을 태수에게 사실을 고했고, 태수는 사람을 시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표시해 놓은 것이 없어져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유자기라는 고사(高士)가 이 말을 듣고 그곳을 찾으려 갖은 애를 썼으나 찾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후로 사람들은 이곳을 찾으려 하지 않고, 도원경은 이야기로만 전해졌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 낳은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것으로 ‘도원경’은 이 세상에는 없는 이상향인 신선경의 한 장소를 뜻한다. 토마스 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서양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동양에서는 도연명이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원경’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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