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3.01.28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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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한파에 얼어가는 정(情), 움츠린 관심을 회복해야 할 때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가족 Ⅱ] 戀情

 

 

멀리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듯이 한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이다. 볼 수 없기에 그리워하고 가슴아파하며 소식을 기다리면서 밤을 세워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기억이다. 명절을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의 부모님, 아이들의 귀국을 기다리는 기러기 가족, 혼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에게 정(情)의 의미는 남다를 터, 2013년 새해를 맞아 함께 있는 그리움을 혼자서 달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연정(戀情)의 모습을 찾아봤다.

 

둥지를 지키는 외로운 기러기 가정

S그룹의 임원인 김 모 씨는 오늘도 자신의 지갑 속에 있는 부인과 아이사진을 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기도한다. 후배사원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선물을 고르는 것을 보며 옆에서 함께 고민하고 선물을 골랐지만 가슴 한켠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집에 들어서자 그를 반겨주는 것은 어두운 방과 적막함뿐이다. 그는 아이와 부인을 캐나다로 유학을 보낸 3년차 기러기 아빠다. 부인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오늘도 컴퓨터를 켜고 아이들에게서 온 메일을 확인한다. 새로운 메일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컴퓨터를 끄고 냉장고에 있던 인스턴트식품을 데워서 먹는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오늘은 더 밥이 목에 메인다. 자신의 생일에 혼자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있는 현실에 한숨을 내쉬며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다시 한 번 쳐다본다.

통계청이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씨와 같은 기러기 가족은 7가구 중 1가구 꼴로 전체 가구의 14%에 육박한다. 이들 가구 중 최종학력이 대학교인 가구는 절반에 가까운 42%를 차지한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학력 가구일수록 교육열이 높아지다 보니 자녀를 해외에 유학 보내는 경우가 많다”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녀와 배우자를 외국에 보냈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배우자들의 현실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이화여대 간호학과 차은정 씨는 박사학위 논문 ‘기러기 아빠의 건강관련 삶의 질 예측모형 구축’에서 기러기 아빠인 기혼남성 15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조사 대상의 76%가 영양불량 상태로 나타났다. 차 씨는 “기러기 아빠들이 속한 중년기 남성을 대상으로 이들이 건강과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하려면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심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경우도 있다. 특히 연말연시는 기러기 가족들이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시기다. 배우자와 아들을 외국에 보낸 뒤 홀로 살던 40대 기러기 아빠가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되는 일이 뉴스매체에 보도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러기 아빠들의 고독감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은 홀로 밥상을 마주했을 때다. 또 외로움에 애꿎은 술만 많이 마시게 된다. 가족과 떨어졌다는 외로움, 시간을 보내기에 허전함 등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알콜전문 진병원 양재진 원장은 “가족과 심리적인 연결이 가장 중요한 만큼 가족과 통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거나 하는 일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라며 “다만 우울증이 한번 생기면 계속 심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초기 우울증세가 오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고독은 병으로, 끝내 떨어지는 꽃잎으로

나이를 불문하고 타인을 그리워하는 감정에는 정도가 없다. 경북 의성에 거주하는 박추자 할머니는 올해 86세로 3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을 도시로 보낸 뒤 혼자서 살고 있다. 박 씨는 “설 명절에도 자식들 부담될까봐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라며 “그냥 손주들 사진보면서 달래는 거지...”라고 눈물을 훔쳤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전체 노인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0년 174만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독거노인 지원 체계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5월 ‘독거노인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소득 및 일상생활 지원 강화, 자살, 치매 및 만성질환 관리 강화 등의 방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독거노인의 96.7%가 주 1회 이상 자녀와 접촉하는 비율은 34.9%에 머물고 있다. 독거노인 중 대다수가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으며 10명중 6명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거노인에 비해 자살률이 3배 이상이며 미국, 일본 등에 비해 6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목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권중돈 교수는 “독거노인 중 자살 위험 군에 있는 비율만 산출해도 15.8%에 달한다”라고 우려했다.

독거노인을 위해 기초지자체와 주민자치센터에서 수일에 한 번씩 체크를 하고 있다지만 정작 이들이 행정직원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관계당국의 관리 허술함을 증명하듯 매년 투신해 자살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자식이 있어 그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탓이다. 매달 생활비와 의료비 명목으로 받았던 60여만 원의 지원금이 그들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돈이 없어지면 생명줄이 끓기는 셈이다. 이들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마치 자신이 짐이 되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고는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그들은 근대화를 이룬 우리 사회의 주인공들이다. 전국 최고 부촌으로 꼽히던 성남 분당신도시에 위치한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만 생기는 일도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인구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의 문제가 떠오르자 독거노인의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 홈케어’사업이 성장하고 있다. 이에 중앙대 강병오 겸임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고령화와 핵가족화 속도가 빨라 정부가 독거노인 복지문제에 대처하는 데 미흡한 부분이 많다. 노인복지를 위한 사업이 민간부문에서 활성화된다면 정부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범죄 양산하는 고립된 관계

경기불황은 젊은이들에게도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다가왔다. 실제 고시촌 등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 가운데는 외로운 죽음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2년째 취업준비 중이라는 방 모 씨(26/남)는 독서실 총무에게 건네는 인사가 하루 중 유일한 대화다. 방 씨는 자취방과 독서실만 왔다 갔다 한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하고 홀로 남았다. 방 씨는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면 난방이 잘 들어오지 않아 싸늘한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곤 한다”라며 “여기서 혼자 죽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끔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전했다.

더욱 큰 문제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2012년 8월 서울 여의도와 경기도 의정부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은 사회적 관계망에서 단절된 절망형 은둔자가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의도 사건의 피의자 김 씨는 지난 4월 실직 뒤, 고시원에 혼자 틀어박혀 지냈다. 가족과도 사실상 아무 교류가 없었다. 의정부 사건의 피의자 유 씨는 10년 넘게 공사판을 돌아다녔다. 그는 경찰에서 “친구가 없다”고 진술하며 대인관계에 있어 문제가 있음을 토로했다. 경기도 연천의 고향집도 2~3년에 한 번씩 찾았을 뿐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탄탄한 인간관계가 있으면 좌절이나 실패가 주는 충격이 완화되지만, 혼자 삭일 수밖에 없는 은둔자들의 스트레스는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노성훈 교수는 “여의도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가 칼을 여러 자루 사 모아 숫돌에 갈았던 것은 분노를 해소하는 나름의 행위인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어딘가 마음 둘 곳이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분노를 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타인과의 교류가 없는 절망형 은둔자들은 자신에게 누적된 불만을 공개된 장소에서 표출한다. 본래 자신을 부당하게 대한 사람을 피해자로 삼는다. 그러나 공격과정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에게 충동적으로 공격을 가하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범행 자체를 즐기는 연쇄살인, 원한을 갚으려는 보복살인 등과도 다르다.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등장한 지금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다. 정부는 2012년 10월 관계장관회의에서 우범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출소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의정부와 여의도 사건의 피의자들은 초범자였다. 경찰이 관리하는 우범자나 출소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절망범죄가 기존 범죄와 다르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소외가구, 가족의 해체는 사회의 문제

키에르 케고르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했다. 외로움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위협적인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2012년 4월 미국에서 발표됐다. 미국 시카고 대학 사회심리학과의 존 카치오포 교수가 발표한 자료는 외로움이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동맥경화, 신체의 염증과 관련이 있으며 심지어는 학습 및 기억력에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이오포 교수에 따르면 외로운 사람은 면역 체계가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발표했다. 즉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망이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날파리를 관찰해 본 결과를 보더라도 홀로 떨어진 날파리는 건강이 좋지 않고 수명도 짧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스티브 콜 교수는 “외로운 사람은 바깥세상을 적대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킨다”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가 좋은 사람들에 비해 암 발병률, 전염병 감염률, 심장질환 위험 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로움은 가장 큰 적이다. 이는 곧 저 출산 및 고령화와 이혼 등에 의한 가족해체로 인해 혼자 사는 노인 가구, 한 부모 가구, 조손(祖孫) 가구, 소년·소녀가장 가구 등 소외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따라서 노인문제, 아동문제, 가족문제, 교육문제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예견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1인가구가 늘어난 면이 없지 않지만, 실직·빈곤을 거듭하다 가족이 해체되어 혼자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1인가구는 지역사회에서조차 관계망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이길 수없는 외로움을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삶이 각박해지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정책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한국은 정이 많은 나라라고 흔히들 말한다. 외국에 보여주는 흔한 형식의 말이 아닌 진정 주위 이웃에게 관심과 안녕을 물어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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