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스펙이란 짐을 진 50대, 다시 쓰는 이력서
취업과 스펙이란 짐을 진 50대, 다시 쓰는 이력서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3.01.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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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20대와 경쟁, 50대 남성보다 여성취업이 더 활발해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Social Issue

 

50대 스펙 쌓기 전쟁

 

 

“삼성에서 18년 일했다는 얘기로 다 통할 줄 알았다. 이력서만 내면 면접 일정이 잡힐 줄 알았다. 하지만 10곳에 이력서를 내면 9곳에서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나머지 한 곳도 면접장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채용하기 힘들다는 설명만 듣고 나와야 했다” 지난해 12월 1일자로 삼성생명에서 명예퇴직한 장정욱(44)씨가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라는 제목으로 쓴 수기의 일부분이다. 그는 ‘새로 도전하려는 회사 업무와 관련된 경력도, 자격증도 없이 삼성 근무경력만 믿고 덤볐구나’ 하는 쓰린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했다. 50대의 재취업은 경력만 가지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제는 그들도 20대와 같이 그들이 내새울 ‘스펙’이 있어야 한다.

 

수강생 절반이 50대 자격증 강좌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는 50대 이상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창업·재취업을 준비하면서 관련 자격증을 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2012년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자 63만4061명 중 50대 이상은 2만9413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했다. 2007년 1.6%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50대 이상 자격취득자 중 50대는 2만6310명으로 2007년 1만5246명보다 73% 증가했다. 60세 이상 취득자도 3103명으로 2007년(1369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20대 청년층 자격취득자는 지난해 21만8424명으로 2007년(35만5857명)보다 39% 감소했다. 30대 취득자도 10만4275명으로 2007년의 14만2285명보다 27% 줄었다.

산업인력공단 이명재 자격관리팀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 후 창업이나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자격증 취득 열기가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의 자격증 취득이 준 것에 대해서는 “공무원 취업 시 자격증에 대한 가산점이 낮아지고 실제 20~30대 인구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 자격증이기 때문에 ‘생계형 자격증’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불황이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직전이었던 2007년 중년층이 선호하는 상위 10대 자격증의 절반은 컴퓨터 관련이었다. 워드프로세서 1∼3급과 컴퓨터활용능력시험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직장에서 승진에 가산점을 주거나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아 사무직으로 이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경기능사, 피부미용사, 전기기능사 등 자격증 취득과 함께 바로 창업이나 취업을 할 수 있는 ‘생계형 자격증’이 선호도 상위에 올라 있다.

매년 중장년층 자격증 선호도 1, 2위를 차지하는 한식조리기능사와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 취득 인원은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2007년 취득 인원이 각각 2498명, 1234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4821명, 2829명으로 급증했다. 한식조리기능사는 식당을 창업하거나 기업과 학교의 구내식당에 취업할 수 있다. 건설경기에 영향을 받는 굴착기와 달리 산업현장 어디서나 활용되는 지게차기능사자격증도 취득 인원이 크게 늘었다. 이진희 산업인력공단 자격관리팀 과장은 “불황이 심화되면서 컴퓨터 관련 자격증은 점차 줄고 바로 취득할 수 있는 생계형 자격증 취득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볼보건설기계 교육센터 이재실 원장은 “자격증이 항상 취업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굴착기나 지게차, 조경기능사 등 베이비붐 세대가 선호하는 자격증의 경우 건설·제조업 경기 위축으로 전반적으로 일감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자격증을 가진 청년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 원장은 중장년층 자격증 소지자들이 책임감 있게 일해 선호하는 기업도 많다며 취업이 어렵거나 이직 초반에 소득이 적다고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0대女 10명 중 6명은 ‘취업전선’

김문정(54)씨는 청주시 흥덕구 한 대형마트의 캐셔다. 직업군인이었던 남편이 제대하면서 수입이 절반가량 줄어들자 이곳에 취업했다. 한 달에 버는 돈은 100만원 남짓하고 퇴근할 때는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힘들지만 아들의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다. 이명숙(53)씨는 2011년 5월부터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조기퇴직하면서 전업주부였던 이씨가 가사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이씨는 아들이 아직 직장을 못 구한 상태인 데다 노후를 위해 저축해 둔 돈도 없어 가장 역할을 자처했다며 힘들 때도 많지만 내 힘으로 가족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산다고 말했다.

일자리 시장에 뛰어드는 5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청년실업이 고착화되면서 남편과 자녀를 대신해 부업전선에 뛰어든 여성이 증가한 결과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해 50대 여성 취업자수는 215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10만5300명, 5% 늘어난 규모다. 전체 여성 일자리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50대 여성이 여성 고용시장을 주도한 모습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는 50대 여성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늘고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지지부진한 양상이었지만 2003년부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2년 121만명이었던 50대 여성 취업자 수는 2005년 140만명, 2006년 151만명, 2007년 161만명으로 해마다 10만명씩 늘었다. 2011년에는 200만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50대 여성 취업자가 늘어난 데는 베이비붐세대 남성들의 퇴직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전체인구의 14%에 달하는 베이비붐세대 가운데 주요 근로층이었던 남성들의 퇴직이 시작되면서 남편의 은퇴에 대비하기 위해 취업을 택하는 아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청년실업난으로 20대 자녀들의 취업까지 여의치 않게 되자 고용시장에 유입된 주부들이 늘었다. 50대 여성 취업자수는 지난 2011년 이후 20대 여성 취업자수를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20대 여성 취업자수는 189만명으로 '엄마 세대' 보다 26만명 가량 적었다. 2011년에는 13만명가량 적어 해마다 격차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50대 여성 일자리가 가계의 주수입원을 대신하기엔 부족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의 질도 그다지 높지 않아 대다수가 식당아줌마, 보험설계사 등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여 있다. 지난해 상용직에 취업한 50대 여성은 53만명인 반면 임시직인 여성은 64만명에 달했다. 20대 여성의 상용직과 임시직 수가 각각 115만명, 54만명인 것과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 임금도 낮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기혼여성의 시간제근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평균임금의 2/3 이하를 받는 '저임금' 기혼여성의 비중은 지난해 3월 기준 58%에 달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성재민 전문위원은 "50대 퇴직인구가 많기 때문에 소득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먹고사는데 당장 무리가 간다"며 "이 때문에 주부들까지 나서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의 일자리는 대부분 안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악순환을 막기 위해 육아도우미, 간병사 등 돌봄노동영역에 대한 근로여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카드모집이나 보험설계사 같은 저임금 특수근로자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관악고용센터의 한 취업 알선 담당자는 인터뷰를 통해 “50대 이상 여성들은 자격증을 따도 식당조리사가 되거나 미용실에 취업하는 정도이며 모아놓은 돈이 없어 창업을 하려는 여성은 극소수”라고 말했다. 김복순 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저성장에도 예상 밖의 고용 호조가 나타나고 있지만 50세 이상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며 여성 고용시장의 핵심 연령층인 30, 40대는 오히려 정체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20대 아르바이트, 이제는 50대와 경쟁

이렇듯 50대의 취업이 활발해 지면서 아르바이트 시장마저도 50대의 생계수단으로 등장하며 20대와 50대가 취업전선에서 경쟁하는 구도가 생겨났다. 50대 초중반에 직장에서 은퇴한 아버지와 대학을 졸업한 20대 아들·딸이 함께 구직 대열에 나서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에는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세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이 최근 3년간 아르바이트 구직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20대들이 선호하는 인기 업종에 중장년층이 크게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0대의 커피전문점,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지원이 3년 전에 비해 각각 11배씩 늘었고 베이커리 12배, 독서실·고시원은 16배나 증가했다. 반대로 중장년층 일자리에 20대가 몰리면서 청소·미화 11배, 가사·육아도우미 12배, 찜질방·사우나 15배씩 늘었다.

노후 준비가 안 된 베이비붐 세대 중장년층이 직장에서 밀려나면서 취직을 못한 아들·딸들의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빼앗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20대 취업자는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50대와 60대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 분석을 보면 카드사태나 금융위기 등 거시충격을 제하면 성장률 1% 포인트 당 민간 취업자가 8만9000명 늘어난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성장률을 높이는 게 정답인데 글로벌 경기침체로 쉽지 않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2.8%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일자리 고통이 더 심각해질 것을 예고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질을 올린다)’ 공약을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금반큼 고용창출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금융·관광·의료 등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릴 여지는 남아 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의 이행으로 비정상적으로 흘러가는 50대 스펙 쌓기 전쟁을 바로잡고 일자리 창출이 세대 간 대통합의 시발점이자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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