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Report] 이중수사의 속내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과 유진그룹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지난 11월 13일 서울 서부지검으로 출두했다. 범죄자가 검찰로 출두하는 것이 이토록 주목을 받은 것은 이미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검찰이 특임검사를 지명하며 전적으로 자신들이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중수사의 논란에도 불구 양자 모두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 잡는 검찰, 검찰 잡는 경찰
2012년 8월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과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직 서울고등법원 김광준 부장검사가 경찰의 용의선상에 떠올랐다. 이어 그의 자금거래 내역과 차명계좌를 확인하고 그의 혐의를 확정하고 수사에 착수 했다. 하지만 돌연 지난 11월 9일 검찰은 김 검사의 사건에 대해 자신들이 특임검사팀을 꾸려 직접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속전속결로 김수창 법우연수원 교수를 특임검사로 임명한 후 그를 주축으로 20명의 특임검사팀이 꾸려졌다. 특임검사를 임명한지 하루 만에 특임검사팀의 구성이 꾸려지고 수사가 진행된 것은 지난 벤츠여검사 사건이나 그랜저 검사의 경우에 비춰볼 때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다. 이미 수개월을 김 검사의 혐의를 쫒고 있던 경찰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고, 수사방해라고 반발하며 독자적으로 수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뜻을 확고히 했다. 동일한 사건을 가지고 검찰과 경찰이 서로 수사를 하겠다는 초유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에 김기용 경찰청장은 “경찰이 이미 수사를 진행하는 사건인 만큼 독자적으로 수사를 강행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이어 “두 수사기관의 중복수사로 인한 인권침해의 측면에서도 올바르지 않다”라며 이중수사의 상황을 만든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김 특임검사는 “경찰은 서울중앙지검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면된다. 내가 수사해서 경찰이 더 이상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끼어들기 수사의 상황을 전해들은 어떤 변호사는 “검찰이 스스로 내사를 하던 경찰이 수사를 하던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것에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있는데 ‘끼어들기 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나?’란 생각이 든다”라며 검찰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선 경찰들은 검찰의 수사사건 가로채기를 비판하는 UCC를 인터넷에 업로드하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 제작한 경기지방경찰청 소속의 정승혁 순경은 “특임검사 역시 검사동일체 원칙하에 움직이는 또 하나의 검사이기 때문에 검사가 동료 검사의 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며 “검찰이 당당하다면 경찰의 수사를 받아야한다”고 전했다.
검찰의 자정능력이 상실됨에 따라 검찰에 대한 비판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11월 19일 한상대 검찰총장은 김광준 검사의 뇌물수수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수습하기에 나섰다. 국민들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현직 부장검사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경찰과 검찰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매 정부마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수사권갈등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갈등은 이번 이중수사 건으로 다시 한 번 이슈가 되었지만 수사권갈등은 국민의 정부 때부터 내려온 해묵은 갈등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인 1997년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공약을 내세우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전체 수사의 97%를 경찰이 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경찰에게 공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것이 검찰과의 마찰을 일으켰다. 때문에 검찰 측은 “한정된 범죄라 하더라도 독자적 수사권을 인정할 경우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양측의 거센 반발이 있자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수사권 논의를 중지하고 검찰과 경찰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후 수사권에 대한 논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국민의 정부와 달랐던 것은 2004년 9월 ‘검경수사권조정협의회’가 발족됐고, 같은 해 12월에는 민간위원도 참여하는 ‘검경수사권자문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에서는 사법경찰관에게도 검사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한 조정안을 내놓으며 수사권 논란의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당시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가 이뤄내지 못한 공약을 이뤄줄 듯 했으나 검찰이 종전의 수사정책 기획단을 ‘국가수사개혁단’으로 개편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력히 내세웠다. 그러던 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위 농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를 하면서 경찰에서도 수사권에 대해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 논의를 거쳐 2011년 형사소송법의 개정에 따라 경찰은 그동안 묵시적으로 인정됐던 수사개시권을 형사소송법에 명문을 통해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검찰의 입장을 더 확고하게 하는데 그쳤다. 경찰들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은 수사를 개시할 수 있었지만 그 방법이나 과정에 있어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
사건의 수사에 있어서 검·경이 유기적으로 협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연히 검찰이 경찰의 우위에 있으며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고 감독해왔다. 수사권확대에 대해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경찰이 수사기관으로서 자신들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평소 국민들과의 접촉빈도가 높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검사들의 수사지휘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경찰도 이에 팽팽히 맞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경찰의 권한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경찰수사연수원 황운하 원장은 “기본적으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우리경찰의 수준이 국민에게 걱정을 끼칠 만큼의 신뢰를 잃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권 독립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가는 비리검사 수사, 보는 국민만 답답
이번 김광준 현 부장검사의 비리와 관련해 경찰은 수사를 뺏긴 것과 동시에 많은 참고인을 잃어버리는 신세가 됐다. 이중수사의 문제가 언론에 집중 조명되자 어느새 현직 검사의 비리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3개월 이상을 위해 노력하며 밝혀낸 경찰의 노력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특임검사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고, 경찰도 기존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경찰이 해보던 수사에도 차질이 생겼다. 피고인과 참고인을 소환하더라도 검찰에 갔다가 경찰에 올만큼 착한 피고인이 세상에 있을 리 만무하다. 검찰에 출석된 것을 이유로 경찰의 부름에 불응하거나 인권을 내세워 피고인이 제대로 조사를 받을 리 없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싸움에 졸지에 피고인들은 편안한 출석조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를 보고 있던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는 심기가 불편하다. 피해자 김철민(가명)씨는 “이제 사건의 진척이 보이나 했지만 검찰과 경찰은 자기 밥그릇싸움에 바쁘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피해자의 억울함을 못 풀어줄 망정 저런 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난다”라며 이어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할 검찰과 경찰이 오히려 국민의 동정을 사려고 하고 있다”라며 강하게 질책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사법부가 수사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경찰의 수사개시권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현행 형사소송법령에 근거해 검찰과 경찰이 상호 협력해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수사권 갈등을 보다 못한 정부가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에 정부는 경찰과 검찰의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입장이며,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현재 법령상 양자 간 수사권 갈등 문제를 해소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라며 “검경이 상호 협조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자율적으로 긴밀하게 협의해 수사권 갈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검·경간 자율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가 조정을 위한 합의 유도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할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타협이 없는 대화, 의식과 소통의 부재
김광준 검사의 비리를 시발점으로 촉발된 수사권논의는 경찰과 검찰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며 마라톤 회의만 지속되고 있다. 조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수사협의회도 상대 소속의 직원들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며 팽팽한 신경전을 하고 있다. 경찰은 먼저 수사에 착수한 기관이 수사를 전담하자고 했고,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총리의 경고로 시작된 수사협의회까지 무산되며 양측의 갈등은 당분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퇴직 경찰들의 모임인 ‘경우회’는 “검찰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라며 “검찰의 권한을 분산해 경찰과 서로 견제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한상대 총장을 필두로 검찰 수뇌부가 검찰 개혁에 대한 논의를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회의실에서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 총장과 대검 및 전국 고등검사장급 간부들이 모여 잇따른 검사비리로 검찰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일선의 침통한 분위기를 한 총장에게 전달하고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해 자유로운 토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고등검찰의 김진태 검사장은 이날 “검찰권은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것이지 우리 고유 권한이 아니다”라며 “이번 토론을 통해 국민의 뜻을 받들 수 있는 방안이 뭣인지 논의했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벤츠 여검사, 그랜저 검사에 이어 1년이 체 지나지 않고 터져버린 김광준 검사의 비리사건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서울대학교 조국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경찰이 인지하여 진행한 검찰비리수사를 가로챈 것은 치사하다”라며 “검사를 경찰 손에 넘길 수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건을 날치기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디 @j****는 “검찰이 자신들의 꿀 같은 권력을 내려놓을 리 만무하다. 그들의 자율에 맡기면 또 한 번의 검찰개혁은 이뤄낼 수 없다고 본다”라며 검찰개혁의 바탕에는 수사권조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매 정부마다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검·경간의 수사권갈등이 초래한 이중수사의 논란은 한동안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만의 입장을 고수하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 사법부에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