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內) 권력의 중심에선 그들. 암투는 시작됐다
중국 내(內) 권력의 중심에선 그들. 암투는 시작됐다
  • 김용호 기자
  • 승인 2012.12.26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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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모인 ‘태자’들, ‘공청’회가 가능할 것인가
[이슈메이커=김용호 기자]

[Global Focus]

 

전 세계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G2국가 중국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정치체계 및 권력 구조는 물론 당의 계파를 파악함이 요구된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이기 때문에 당내 실질적인 권력의 맥을 짚기 위해서는 당내 계파에 대한 이해가 더욱 강조된다. 중국 공산당의 계파는 크게 3개의 계파로 볼 수 있는데 ‘태자당’. ‘상하이방’, ‘공청단’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우리가 아는 당파간의 싸움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낙점 된 시진핑의 경우 태자당(혁명원로 자제그룹)으로 분류되지만 상하이방(장쩌민의 상하이 인맥)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4세대 권력에서 5세대 권력으로 중국은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내부는 아직 권력을 잡기위한 암투로 시끌벅적하다.

 

 

중국의 권력의 이동, 상하이방+태자당의 완승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중국의 18차 공산당대회가 2012년 11월 끝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됐다. 이제 제4세대의 지도자들이, 특히 후진타오가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시진핑에게 넘겨주면서 형식상 완전히 권력이 제5세대로 넘어갔다. 이번에 선출된 중국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상무위원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7명이었다. 18차 공산당대회 결과 서열 1위는 태자당(혁명원로자제그룹)의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동시에 승계했다. 서열 2위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리커창이 되었으며 부총리직과 함께 2013년에는 국무원 총리를 맡도록 내정됐다. 서열 3위는 상하이방(장쩌민의 상하이 인맥)의 장더장이며,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관장하도록 내정되었다. 여기서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우리의 국회와 같은 입법기관이다. 장더장은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여 한반도 상황에 가장 정통한 인물로 앞으로 관심있게 보아야 한다고 중국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서열 4위는 위정성으로 현재 상하이시 서기를 맡고 있고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주석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위정성은 상하이방과 태자당 양쪽에 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인물이다. 특히 서열 5위인 류윈산은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으로 태자당과 공산주의청년단에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서열 6위로는 태자당의 왕치산으로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게 되어 앞으로 중국의 사법계통을 책임질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7위는 상하이방의 장가오리로 현재 천진시 당서기를 맡고 있으며 상무부총리가 될 것으로 중국 언론은 전망했다. 이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앞으로 중국을 이끌어갈 제 5세대의 핵심인물들이다. 파벌로는 태자당 3명, 상하이방 3명, 공청단 1명으로 구성 된 정치국상무위원회는 범 상하이방(상하이방+태자당)이라는 측면에서 완벽히 권련을 손에 쥐었다. 이에 반해 공청단은 리커창을 부총리직을 유지하면서 체면유지를 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전에는 군출신이 많다가 이후에는 기술관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후진타오의 제4세대 역시 기술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이번의 제5세대들은 인문사회과학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의 연령은 모두 60세를 전후하고 있어 문화대혁명의 고통을 직접 체험했던 사람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중국의 발전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제5세대의 첫마디는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이 가지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중국이 강대국임을 선언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을 공식화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중국인들에게 민족주의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 역할의 중심에 공산당이 있다는 것을 밝혀 자신들의 집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이제 미국이나 서방과는 다른 자신의 길에 대한 더욱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국제무대에서의 주도권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의 고위관료 자제 ‘태자당’

중국에서 태자당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황제가 낙점한 황태자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장군, 책사 등의 무리를 뜻했다. 후에 황태자가 권좌에 등극하면 이들도 함께 나라의 요직을 차지하기 때문에 미래 권력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이 전통이 이어져 내려와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 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함께 무산계급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과거 지도자들의 2세들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정리해보면 중국의 고위관료 자제로서 중국 정계에 막강한 힘을 가진 귀족계급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데, 태자당은 정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금융, 등에 두루 포진되어 있다.

태자당이 중국 정계에 대거 진출한 것은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에 쩡칭훙에 의해서다. 쩡칭훙은 마오쩌둥과 공산혁명을 이끌었던 쩡산의 아들로서 대표적인 태자당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쩌민이 만든 상하이방의 2인자이자 이번 18차 전국대표회의(이하 ‘전대’)의 막후 기획자로 알려진 중국 최고의 실세이기도 하다.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쩡칭훙을 중심으로 태자당은 정계에 다수 포진했고 최근 태자당의 대표 격인 시진핑이 2012년 11월 18차 전당대회를 통해 중국의 1인자가 됐다.

현 중국공산당의 상무위원 7명 중에 태자당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시진핑, 위정성 상하이시 서기, 왕치산 부총리를 들 수 있는데 위정성의 아버지인 황징은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과 함께 마오쩌둥과 공산혁명을 일궈냈던 인물이고 왕치산의 경우는 아버지가 아닌 부총리였던 야오이린에 의해 태자당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이번 중국 18차 당 대회 통해 태자당은 중국의 최고 권력집단이 됐다. 사실 태자당은 상하이방이나 공청단처럼 실체가 뚜렷한 계파가 아니다. 정기적 모임도 없을 뿐 아니라 태자당이면서 상하이방에 가까운 이도 있고 또한 태자당이면서도 공청단인 사람도 있다. 물론 권력 핵심층에 있는 대부분의 태자당은 상하이방과 같거나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대로 태자당이면서 공청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류옌둥 국무위원이 있다.

 

장쩌민의 상하이 인맥 ‘상하이방’

중국의 2세대 지도자인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1989년 들어 물가가 치솟을 뿐 아니라 고급 공무원들의 부패에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공산당의 관료주의 특권과 부패에 반대하고 노동자와 일부 대학생들의 언론과 집회결사 자유를 허용하는 등 민주주의 노선을 과감히 수용한 덩샤오핑의 후계자 후야오방이 1989년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에서 대학생, 교수, 지식인, 실업자들은 개혁을 요구하게 됐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같은 해 6월 4일 톈안먼(天安門)에 군을 투입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덩샤오핑은 후계자로 지목한 후야오방과 후에 다시 후계지목을 했던 자오즈양 모두 급진적인 성향 때문에 중국정치 원로들의 눈에 차지 않아 총서기로 세우지 못하게 되자 덩샤오핑은 어쩔 수 없이 당시 상하이시 서기였던 장쩌민을 총서기에 앉혔다. 재밌는 점은 장쩌민은 원래 상하이시 서기를 그만두면 교통대학 교수로 일할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그를 권력의 핵심부로 옮겨가게 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나기 전 이미 상하이에서도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장쩌민은 개혁적인 언론사를 폐간하고 공안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 해산 시키는 등 강력한 정권 지키기에 나섰다. 후일 베이징으로 입성한 장쩌민은 공산당 중앙에서 근무할 당시 상하이 인맥들을 요직에 앉히며 ‘상하이방’을 탄생시켰다. 장쩌민의 정치적 인맥으로는 대표적으로 중국 정치 달인 쩡칭훙이 있다. 쩡칭훙은 1993년 장쩌민의 반대파였던 양상쿤 국가주석을 낙마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장쩌민의 장기 집권의 길을 열어줬다. 1998년 반대파인 천시퉁 베이징 서기 제거의 핵심 인물도 바로 쩡칭훙이다. 2002년 장쩌민이 물러나고 쩡칭훙도 2007년 나이 때문에 정계를 은퇴하지만 이들은 현재 중국에서 아직도 실세 중에 실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모두 공청단으로 상하이방의 미래는 이후 불투명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리틀 후진타오 리커창을 밀어내고 태자당의 시진핑을 발탁해 결국 ‘시진핑의 중국’을 완성하면서 상하이방은 여전히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실세임을 입증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 ‘공청단’

공청단은 공산주의 청년단의 준말이다. 중국 정치의 파벌로써 공청단은 당시 공청단 지도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 중 정치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용어로써 이들은 따로 모임을 만들어 자기들만의 권력을 쥐어보고자 공식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공청단 지도부에서 함께 생활했고 같은 주제를 놓고 함께 고민해 온 만큼 끈끈한 인간관계와 신뢰 관계를 맺어 중국 정치에서 하나의 정치 계파를 탄생시켰다. 공청단의 권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후야오방이다. 후야오방은 1957년과 1964년 공청단 내 서열 1위인 제1서기를 맡으면서 공청단을 이끌었다. 물론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 공청단원들은 자체적으로 홍위병을 조직했기에 공청단 지도부의 역할이 크지 않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공청단이 다시 재조직되면서 후야오방은 향후 공청단파를 이끌어 갈 인물들을 본격적으로 영입하고 육성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중국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가 꼽힌다.

현재 모든 언론사에서 이야기하는 중국 정치권력의 실체로서의 공청단은 바로 후진타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봐야한다. 후야오방이 죽고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난 후 그야말로 중국 공산당 중심부에는 공청단의 신진들을 이끌만한 세력이 사라져 버렸고 공청단은 후진타오가 2002년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기 전까지 구심점을 잃고 힘없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내 서열 1위에 오른 후진타오는 자신을 압박해오는 상하이방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할 인재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는 공청단원들을 자신의 힘으로 중국 권력 내부로 편입시키기 시작했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그로 인한 다양한 관점과 이익들이 충돌을 일으키게 되면서 그전까지 관료들이 갖고 있던 한계가 드러나게 됐고 정치력을 행사할 인재들을 요구하게 됐다. 이렇게 후진타오의 권력을 구축하려는 욕구와 시대의 요구가 어우러져 공청단은 중국 정치의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됐다. 물론 이번 18차 전대에서는 공청단은 범 상하이방에게 밀렸지만 서열 2위 리커창이라는 후진타오의 공청단 후예를 입성시킴으로써 공청당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빛과 그림자

‘시진핑 시대’를 이끌어 갈 중국 최고 지도부 인선 결과는 한마디로 ‘장쩌민 대 후진타오’, 그리고 ‘상하이방(+태자당) 대 공청단’의 10년 대란의 결과라고 중국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특히 2002년 장쩌민의 권력 이양에서부터 최근의 보시라이 사건까지 지난 10년간 벌어진 양자의 대결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상하이방과 태자당 등 보수파 세력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공청단으로 대표되는 개혁파 세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점친 중화권 언론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순혈 공청단파는 리커창(李克强) 한 명뿐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상하이방과 태자당 연합세력의 완승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 들어 제5세대 지도부 물밑 조율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태자당+상하이방 연대 세력과 공청단 간에 비슷한 수의 상무위원 자리 분배가 예상된 가운데 어느 계파가 한 석 정도의 우위를 점하느냐가 관심사였다.

특히 올해 초 중국 정치권을 뒤흔든 보시라이 전 충칭 당서기 사건이 터지면서 차기 권력경쟁에서 공청단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한 보이보의 아들인 보시라이는 태자당 소속으로 유력한 상무위원 후보였다. 개혁 성향이 강한 리위안차오와 왕양이 막판 상무위원 인선에서 탈락한 것은 공청단 입장에선 뼈아픈 부분이다. 보수파의 득세를 계기로 개혁보다는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당시 민주화 세력의 핵심 요구 사항 중 하나가 ‘태자당의 비리척결’이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선 소수 권력집단인 태자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상무위원회를 떠받치는 핵심 권력 그룹인 중앙정치국 위원들은 상무위원단보다는 상대적으로 계파 색채가 약한 것이 특징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정치 분석가는 “젊고 개혁적인 인사들의 최고 지도부 진입이 좌절되면서 중국이 당분간 보수 색채가 짙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우리는 더 강해진,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중국을 만나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서있다. 변화하는 세계정세. 그 중심의 G2국가 중국의 수장 시진핑이 앞으로 난립하는 중국권력의 암투싸움에서 어떤 식으로 화합을 다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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