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주관적 ‘중산층 의식’점점 악화
국민의 주관적 ‘중산층 의식’점점 악화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2.11.27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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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중산층 만들기 위해 국민 인식 변화와 정책 필요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Social Focus

 

무너지는 중산층의 자신감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가구 기준으로 2006년 64.6%였던 중산층 비중은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63.1%까지 하락했다가 2011년 현재 64.0%로 반등했으나 5년 전에 비하면 소폭 감소한 상태에 있다. 소득분배를 보여주는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도 2009년 횡보하고 있는데 반해 장기 추세로 보면 악화된 상태에 있고, 국내외 경제 침체 등으로 소득분배 관련 지표들이 나빠지면서 국민들의 주관적인 ‘중산층 의식’과 ‘생활양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중산층이다’ 국민 중 46.4% 불과

우리나라의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일까? 한 연봉 정보 사이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 조사에 따르면 ‘부채 없는 30평 이상의 아파트와, 월 급여 500만원 이상, 2천CC 이상의 중형차와 잔고 1억원 이상의 예금액, 그리고 1년에 1회 이상의 해외여행’을 다니는 가구라는 대답이 나왔다. 1998년 중산층 가구의 소득이 248만 6천원이라고 답했던 것에 비하면 중산층의 기준은 소득만으로도 2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난 8월 1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중산층 비중은 64.0%로 떨어져 있으며,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 등 소득분배 지표도 추세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2011년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본 ‘중산층’ 비중은 64.0%에 달하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주관적 '중산층'은 2012년 8월 기준으로 46.4%에 불과했고, 자신이 ‘저소득층이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50.1%를 차지했다. 최근 5년간 '계층이 하락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19.1%에 달했는데 계층 하락의 원인으로는 ‘소득 감소’와 ‘부채 증가’를 가장 많이 꼽았다. 주목할 점은 향후 계층상승이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98.1%로 압도적이었다.

자신이 ‘저소득층이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50.1%는 통계청의 소득 기준 저소득층 비율 15.2%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스스로 고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도 1.9% 뿐이다. 이 역시 통계청의 고소득층 비율 20.8%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 정도에 대한 인식도 심각했다. 중산층의 78%, 고소득층의 75%, 저소득층의 77%가 ‘우리 사회의 소득․재산 분포가 불평등한 상태’라고 응답했다.

 

갈수록 늘어가는 중산층의 ‘개인워크아웃’

대기업 차장인 이모(47)씨는 1억34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가게를 차려 사업을 하던 아내에게 자금을 조달해 준 게 그만 화근이 됐다. 이씨는 은행 2곳, 카드사 3곳, 캐피탈사 2곳, 저축은행 1곳에서 빚을 냈다. 하지만 불경기로 인해 아내의 사업은 망했고, 올 초 가게 문을 닫았다. 이후 빚 상환을 고스란히 부담하게 된 이씨는 월 400만 원 정도의 소득으론 도저히 감당이 결국 대출금을 연체하기 시작해 못 갚은 이자가 2000만원으로 불어났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현재 소득으론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이달 초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개인워크아웃(채무재조정․키워드)을 신청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씨와 같이 중산층에 속하는 채무자들의 개인워크아웃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워크아웃은 원래 저소득층 다중(多重) 채무자들이 신청했었다. 이는 웬만한 소득이 있는 중산층까지 빚을 갚겠다는 의지를 접고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단편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월 28일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중에 월 소득 150만 원 이하인 사람의 비중이 2010년 88%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82%로 줄어들었다. 반면 월 소득 150만원을 넘는 사람들의 비중은 12%(2010년)→15%(2011년)→18%(2012년 상반기)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고 한다.

4인 가족 최저 생계비(149만5550원)에 해당하는 150만원보다 수입이 많은 사람의 개인워크아웃 신청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가계부채 문제’가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층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산층 개인워크아웃 신청자가 늘다 보니 신청자의 부채 규모도 이전보다 커지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중 부채가 5000만원이 넘는 사람의 비중은 2010년 8%, 2011년 9%인데 반해 올해 상반기엔 10%로 늘어났다. 반면 빚이 3000만 원 이하인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들은 2010년 78%였지만 올 상반기에는 75%로 감소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소득이 웬만큼 되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 한도만큼 빚을 내고도 그것이 부족해 제2금융권에서 추가로 돈을 빌렸다가 연체하는 경우가 잦아들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전언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불경기 탓에 소득은 줄고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자산가치도 줄고 있어 지금은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산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문제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개인회생 신청자는 2012년 6월까지만 해도 1만80명에 달했다. 개인회생 신청은 2008년 5763명에서 2009년 8699명, 2010년 8908명, 2011년 1만3806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소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 신청이 늘어나는 것은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불황에 따른 타격을 입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진단했고,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저성장 기조가 오래가면서 경제 회복이 늦어졌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중산층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일정 소득이 있는 중산층들에게 마이너스 대출을 남발했다가 부실을 키운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에듀푸어’ 전국적으로 82만4000가구

하우스푸어로도 모자라 이제는 ‘에듀푸어’(Education Poor․사교육발 빈곤층)까지 등장하며 가뜩이나 무거운 중산층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유모(48)씨는 는 중소기업 이사로 재직하면서 매달 4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유씨는 현재 두 자녀 사교육비로만 월 15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인 큰 딸은 영어와 수학 등 기본 과목만을 학원에서 수강하는데도 80만원이 들고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딸은 영어․수학은 물론 논술학원까지 다니면서 70만원을 지출한다.

뿐만아니라 유씨는 자녀들의 학군을 위해 용인시의 자택을 전세로 주고 대치동으로 이사와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유씨는 현재 전세금 차액 때문에 2억원을 대출받은 상태인데 내년에 또 대치동 전세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유씨는 추가로 1억원의 주택대출을 신청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그는 “명문이라 불리는 SKY대를 보내고 싶은 욕심에 자녀들이 원하는대로 모두 학원을 보냈다”며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모든 게 사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살림이 적자거나 빚이 있는데도 평균 이상으로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에듀푸어'가 전국적으로 82만4000가구에 이른다. 이는 자녀가 유치원 이상 재학 중인 가구 9곳 중 1곳 꼴이라고 한다. 교육 빈곤층의 주류는 대졸 이상 학력, 40대 이상, 중산층 가구다. 이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가구는 26만 1000가구로, 교육 빈곤층의 31.7%를 차지했다. 이들은 월평균 교육비가 105만 3000원으로 소득의 27.2%, 소비지출의 28.5%나 됐다. 교육비를 과다하게 지출해 적자 상태에 놓인 중산층만 해도 60만 가구를 넘었다.

특히 중산층일수록 자녀교육을 위해 집을 담보삼아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산층 가구의 전체 담보대출 가운데 교육비 목적 대출의 비중은 2.0%로 밝혀졌는데, 이는 소득 상위 20%가구 0.8%보다 2.5배나 많고 전체 평균 1.2%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지난해 전체 담보대출의 약 90%가 주택담보대출인 점을 감안할 때, 자녀 교육비 마련을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받고 있는 중산층이 불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돈’의 기준과 ‘생각과 행동’의 기준

자신이 저소득층으로 내려갔다는 응답자들은 소득 감소와 부채 증가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들의 98.1%는 아예 계층 상승 기대감을 접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체념했다. 세대별로 보면 20대는 불안정한 일자리, 30대는 대출 이자와 부채 증가, 40대는 과도한 자녀교육비, 50대는 퇴직과 소득감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사회의 총체적 실패가 중산층의 심리적 패배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산층은 우리 경제의 중심축이자 버팀목이다. 빈부․이념 등 각종 갈등을 완충하는 사회 안전판이고 사회 통합과 안정적 성장에 중요 역할을 하기에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말했고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산층의 안정 없이는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중산층이 희망을 잃으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산층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공적부조보다 본인이 부담하는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안전망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교육․보육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중산층까지 지원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잘못된 선택을 유도해 비효율을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외국어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스포츠 하나는 즐길 수 있을 것,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을 것, 남의 집과 다른 요리솜씨 하나를 지닐 것, 공분(公憤)에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할 것’ 이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제기된 ‘중산층 제시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중산층의 기준을 ‘돈’으로 봤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생각과 행동’에 두고 있다. 영국은 중산층의 정신적 조건을, 프랑스는 생활의 질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국민 스스로가 중산층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재고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이 우선이 아닌 ‘생각과 행동’의 기준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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