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힐링’을 찾다
대한민국, ‘힐링’을 찾다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2.11.27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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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자기합리화에 대한 함정 주의해야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Healing

 

힐링 열풍의 명암

 

 

1999년 12월 마지막 주에 발간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는 ‘20세기 부상한 산업과 21세기 부상할 산업’이라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뉴스위크는 이 가운데 20세기에는 ‘몸짱(Physical Fitness)’을 만드는 다이어트 산업이 성장하고 21세기는 ‘멘짱(Mental Fitness)’ 즉 ‘건강한 마음’을 유지 하는 산업이 각광 받을 것이라는 기사를 실어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실제 20세기에는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비만이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어 사람들은 자신의 몸매관리에 신경을 써야했고, 현재 21세기는 복잡한 세상속에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증폭되면서 ‘힐링(Healing 몸이나 마음의 치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힐링(healing)’시대

각박한 사회에 들어서면서 현대인들이 받는 각종 스트레스와 정신적 상처를 자연으로 치유한다는 '힐링(healing)'이 21세기 화두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유명 인사들이 한 지상파 방송 ‘힐링캠프’에 출연함으로서 관심이 더욱 높아진 ‘힐링’ 바람은 문화·경제·정치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불고 있다. 도서는 물론 스포츠, 여행 등 여러 분야에서는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정치권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힐링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설 정도로 그 열풍이 거세다. 이미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에 반비례해서 내면은 더욱 불안해지고 정신적 행복감은 줄어들고 있고, 21세기에 부상할 분야는 종교를 비롯해 명상, 요가, 심리상담 등이라는 10여년전의 예측이 의외로 빨리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힐링 열풍이 불면서 심리학이 인기를 끌고 휴가철에는 사찰체험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에 사람들이 몰려들며, 마음의 평화를 논하는 스님들의 저서는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다. 힐링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힐링푸드, 힐링뮤직, 힐링콘서트, 힐링여행, 힐링스포츠 등 기존 서비스에 ‘힐링’이라는 단어를 붙여 새로운 시장 개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급기야 ‘마음치료사’란 자격증까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웰빙에 이은 힐링 열풍을 보면서 21세기에는 힐링 관련 산업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된다”며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어 ‘마음의 평화’를 쫓는 ‘힐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힐링(healing)’ 우리 주변 어디까지 퍼져있나

유통업계가 올 가을 내놓는 신상품과 프로그램들은 ‘힐링’을 빼놓고는 논하기 힘들 정도로 그 포커스가 ‘힐링’에 맞춰져 있다. 시내 유명 백화점 문화센터들은 가을 학기 마음 치유와 관련된 강좌를 대거 선보이며, 과거 재테크 및 자기계발 강좌가 주를 이루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낚시 용품을 비롯해 런닝화, 허브차 등의 상품 구매율이 크게 증가했으며 유명 소주 업체는 광고 모델이 지인들과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힐링 타임’을 갖는다는 광고카피로 큰 주목을 끌었다. 템플스테이, 제주 올레길 투어 등의 여행 상품 또한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길어진 불황과 취업 등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니즈가 증가하면서 힐링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다.

외식 업계에서도 힐링 마케팅을 통해 경쟁 업체와 차별화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외식을 마친 후 산책이나 미술 관람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만족과 휴식을 동시에 주는 외식 업체들의 창업이 늘고 있는 추세라면서 “이는 외식 공간과 문화가 ‘음식의 맛’이란 1차원적인 개념을 넘어 ‘힐링’이라는 고차원적인 색깔을 입고, 단순히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통한 치유의 공간으로 재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에서도 다양한 감성 마케팅으로 ‘힐링’을 반영하고 있다. 숙명여대 대학원 향장미용학과 김주덕 교수(한국화장품미용학회 회장)는 “최근 화장품 업계가 힐링적 요소를 반영하며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향을 이용하거나 친환경 혹은 천연 성분 등을 이용한 제품을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물론, 기분 전환과 정서 안정까지 도모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외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적 고통으로 아파하는 이들의 삶은 불행하다는 인식이 이제는 화장품에까지 미처 힐링 열풍이 반영된 것”이라며 좋은 의미에서 한층 더 깊이 있게 우리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고자 하는 경향이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업계에서는 에코 힐링(Eco-healing)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산과 강 등이 위치한 지역에 아파트를 짓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단지와 자연환경을 연계한 특화 조경이 등장하면서 전체 부지면적의 50% 이상을 조경에 할애하거나 수십개에 달하는 테마정원을 만드는 단지도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연구실장은 “에코 힐링 아파트는 휴식과 여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주거문화 공간”이라며 입주민의 주거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아파트 시세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링 열풍의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힐링 열풍은 국내 첫 ‘힐링전문 인터넷방송’을 개시한 ‘생명전자방송국’으로 인해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인 인터넷 방송에도 그 영향을 미치며 대표적 힐링 사이트로 자리매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생명전자방송국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힐링트랜드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정보전달이나 공감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생명전자방송국은 프로그램 대부분이 짧은 시간 동안 효과를 볼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기 짧은 시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힐링(healing)’은 마술이 아니다

이렇듯 힐링은 우리주변 깊은 곳에 자리잡으며 새로운 문화 컨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힐링 열풍’이 무조건 긍정적인 요소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정신과 전문의들은 ‘힐링 산업’이 커지는 것은 혹독한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현대인들이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실태조사’를 보면 18세 이상 성인 중 ‘최근 1년간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은 519만명이나 되지만 정작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병원치료 대신 자연스럽게 힐링카페나 힐링여행, 힐링 관련 서적을 찾게 되면서 힐링 열풍을 고조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문가들은 ‘마음의 치유’가 중심이 되야 할 ‘힐링’을 상업적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교수는 “현대 사회가 효율 극대화, 생산성, 성과를 중심으로 과도하게 돌아가다 보니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지친 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며 힐링 산업 등장 이유를 진단하는 한편, 힐링 산업이 돈이 된다고 생각해 시장 자체가 너무 커지면서 ‘너 아플 거다’라는 걸 부추기는 면도 분명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대병원 정신과 김철권 교수는 “힐링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용해 사이비 건강식품, 건강요법이 인터넷 공간에서 범람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도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말했다.

힐링 열풍이 불면서 힐링은 요즘 방송가 최고의 소재로 떠오르며 장르를 망라하고 힐링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방송에서의 힐링 프로그램들이 ‘힐링’은 되지 않고 당사자 간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선정성과 자극성을 부각시켜 그들의 문제를 단순한 흥밋거리로 만드는 경향도 있어 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황명진 교수는 “힐링은 사회의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고착화시키는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며 특히 방송매체의 특성상 문제를 보다 극적으로 부각시키거나 출연자의 목소리가 아닌 사회자의 주도로 대화나 프로그램이 전개되어갈 우려에 대해 주의할 것을 권고했다. 황명진 교수는 “가정폭력이나 가족간의 인권유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크게 문제시하는 ‘몰아가기’식 전개가 아쉽다. 노출기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더라도 수습, 치료와 방법에 입각해서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믿음은 배재하고 ‘힐링’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는 현대인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방광암으로 19년 동안 14번의 수술을 받고 암을 극복한 경인한의원 박태열 원장은 “힐링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고, 즐거움이 있다면 선택하면 된다”고 말하는 한편 목표를 잊고 수단에 매몰되면 이상한 방향으로 빠져 '미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아대병원 정신과 김철권 교수는 “힐링이 마술은 아니다.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선 곤란하다”며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기회로서의 의미,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를 고민해 보는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로 힐링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힐링(healing)’, ‘나 자신’과 적절한 응용방안 모색해야

힐링 열풍은 21세기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도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힐링이라는 것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삶이란 현실적 기반에 있고 자신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가능성을 찾는 것이라는 이해가 ‘힐링’으로 인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치유’라는 관점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삶으로 유도하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자칫 나약한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쉽사리 빠져들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박범신 상명대 석좌교수는 “진정한 ‘힐링’은 자본의 옥죔으로부터 빠져나올 자기정체성이 전제돼야 한다”며 “힐링이 대세인 것은 ‘반힐링’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는 뜻과 같다. 힐링 다음의 비전이 없는 힐링은 일시적인 고통의 중절이나 게으른 자의 ‘자기합리화’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장덕진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다 정작 목표에 도달하면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회의가 들어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서 “이제는 뛰지 말고 천천히 걷는 것도 중요하다. 길옆에 꽃도 보고 타인과의 관계도 생각해 보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찾는 그런 것이 힐링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힐링이 “고단한 현실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그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체험함으로써 해결하는 우회적 방법”중 하나라면 ‘힐링’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눈 뜨고 세상을 보는 사람’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감은 눈으로는 이상을 꿈꾸되 뜬 눈으로는 현실을 냉정하게 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힐링이 자신에게 진정한 몸과 마음의 치유가 되려면,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주는 위로와 함께 현실적 삶에 대한 긍정이 기반이 되어야 진정한 힐링 열풍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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