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판을 치는 ‘韓國’
가짜가 판을 치는 ‘韓國’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11.15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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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골목 프랜차이즈, 나일론 환자까지...천태만상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Zoom In] 짝퉁전쟁

 

몇해 전 파리를 찾은 한국 관광객이 P사의 짝퉁 가방을 가지고 여행하다 가방에 이상이 생겨 본사를 찾아가 A/S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었다. 이 믿지 못할 이야기를 웃음으로 넘겨보려 하지만, 우리나라 짝퉁문화 수준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터. 겨울을 맞아 백화점으로 구두를 사러 간 여성에게 매장 직원은 “손님, 이계 요즘 가장 잘나가요. 명품 모 브랜드랑 똑같거든요”라며 구두를 건넨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달 잡지에서 본 명품신상과 동일하다. 여성의 마음속에는 가죽 소재나 굽 모양이 살짝 다르니 짝퉁은 아니지 않으냐는 생각과 어차피 짝퉁이라는 생각이 팽팽히 맞선다. 어디 이뿐인가? 평소 입맛에 맞은 보쌈을 시키기 위해 전단지를 넘기던 한 남성은 황당한 일을 경험한다. 같은 상호명의 보쌈집만 세 군데, 비슷한 상호명은 다섯 군데에 이르러 어느 곳이 진짜인지를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전 생활에 거쳐 ‘짝퉁 브랜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판매자도 구매자도 거리낌 없다

“입어보지도 않고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달라는 식으로 한꺼번에 제품을 수 천 만원어치를 사요. 직원들은 그런 고객 보면 딱 알아요. ‘물건 베껴서 파는 짝퉁 업자구나’라고 말이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백화점 명품관에서 만난 매장 직원은 한숨을 내 쉬었다. 이 직원은 매달 한두 번씩 명품을 베껴서 되파는 짝퉁 업자들이 물건을 싹쓸이해가지만, 고객에게 안 팔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명품을 구입해 모조품을 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판매하는 사람도 있을 터. 지난 9월 20일 기자는 서울 강남의 귀금속 상가로 향했다. 결혼 시즌을 맞아 예비 신랑·신부가 북새통을 이룬 귀금속 상가에서도 은밀한 속삭임은 계속된다. 백화점 명품과 동일하게 세팅된 예물반지와 커플링 등 가짓수도 헤아리기 힘든 상표들이 즐비한 것이다. 상표법 위반에 대해 묻자 A업자는 “비슷하면 다 유사 제품인가요? 귀금속을 디자인하다 보면 다 거기에서 거기죠. 그 논리로 따지면 다이아몬드가 가운데 박힌 반지도 먼저 등록한 사람이 일등이겠네”라고 다소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B업자도 “우리가 디자인한다 해도 손님들이 백화점에서 본 제품을 찾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나. 이것도 또 하나의 경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업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고객들은 어떤 입장일까? 이날 강남의 귀금속 상가를 찾은 이모(29·여) 씨는 “디자인이 마음에 든 명품을 사게 되면 예단 값이 너무 올라간다”며 “어차피 금이나 보석은 비슷한 재질이라 브랜드 거품을 뺀 이곳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금년 가을 결혼을 앞둔 김모(32·여) 씨도 “올해 초 결혼한 친구의 명품 예물과 똑같은 제품을 봤다. 그 친구와 함께 왔는데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라고 이곳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짝퉁을 산 이유와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이들 모두 명품 사용으로 누릴 수 있는 일정한 효과를 기대하고, 나아가 은근히 즐긴다는 점은 같았다. ‘이 정도의 물건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 명품을 착용한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주는 즐거움이 짝퉁을 구입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준 모양새다.

주로 해외 명품 브랜드 상표를 베껴 팔던 ‘짝퉁’은 이젠 국내 패션 브랜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아웃도어 시장과 슈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아웃도어와 슈즈 짝퉁 시장도 덩달아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웃도어 업계 한 관계자는 “판매자들조차 진품인지 가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상품을 흡사하게 만들어내 문제가 심각하다. 소비자들에게도 혼란을 줄뿐더러 브랜드 이미지 관리차원에서도 큰 문제이다”라고 밝혔다.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모조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사회적 현상은 소비자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와 엠브레인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1,228명을 대상으로 ‘명품 브랜드 모조품 조사’를 실시한 결과, 모조품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전체의 70.9%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 모조품을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대상 가운데 2명 중 1명은 ‘정품 가격이 경제적으로 부담된다’고 답했고, ‘정품이 품질과 디자인 대비 너무 비싸다’라는 의견도 24.7%에 달했다.

 

대중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든 ‘짝퉁’

짝퉁은 고가의 명품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 곳곳까지 들어섰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는 식의 업계 상도가 무너진 지 오래고, ‘된다’ 싶은 카피 브랜드가 하룻밤 사이에도 여러 개 생기면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부추기고고 있기 때문이다. 9월 18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가맹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상표권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22.3%의 기업이 “자사의 상표권을 타인이 무단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이 중 72.9%는 ‘브랜드 이미지 실추’, 25%는 ‘가맹점주로부터의 불만’, 14.6%는 ‘매출감소’ 등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44) 씨는 지난 연휴 자녀들에게 피자를 시켜주기 위해 ‘임실치즈피자’라는 상호에 주문을 했다가 지금껏 먹어왔던 피자와 맛과 모양이 다른 것을 느꼈다. 박 씨가 주문한 곳은 유사상호 업체였던 것. 박 씨는 “이름도 비슷하고 가격도 같아서 아무런 의심 없이 주문했는데 아이들이 단번에 맛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며 “적어도 유명프랜차이즈의 이름을 빌려 쓴다면 품질도 비슷해야 할 것 아니냐”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일부 유사상호 업체들의 경우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원조’격 업체의 상호 뿐 아니라 상표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소비자들을 오인케 하고 있다. 결국 소비자들은 이름만 비슷할 뿐,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구매해하게 되면서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업계는 이 같은 ‘짝퉁 프랜차이즈’와 관련해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다. 특히 지명(地名)이 상호에 사용된 경우에는 상표나 상호로 특허를 받을 수 없어 ‘짝퉁’의 범람을 막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편 ‘짝퉁’은 대중문화로까지 스며들었다. 최근 서바이벌 형식의 경쟁구도는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케이블방송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공중파의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나는 오페라 가수다’ 등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된 방송사 덕분에 소비자는 짝퉁 프로그램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이다.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한 방송 관계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비슷하다고 문제 될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은 달랐다. 포털사이트 DAUM 아이디 zldr***은 “한 프로가 뜨면 경쟁 방송사에서 이름만 바꾼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며 “새로운 문화를 알려야 할 방송사에서 획일적인 짝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시민들의 의식이 나아질 리 없다”라고 방송사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도덕 불감증’도 위험수위

제품이나 프랜차이즈 카피가 이른바 ‘짝퉁 대한민국’의 전부일까? 가짜문화는 우리의 의식 수준까지 낮추는 주범이 됐다. 지난 9월 13일 현직 교사들이 ‘가짜 입원’으로 수억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가짜로 입원한 뒤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로 부산 A고등학교 교사 윤모(33) 씨 등 초·중·고교 교사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허위입원을 묵인하고 입원요양금을 챙긴 최모(47) 씨 등 의사 13명과 범행을 도운 보험설계사 정모(40) 씨 등 4명도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 씨는 11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뒤 방학기간 동안 입원한 것처럼 꾸며 2010년 2월부터 5회에 걸쳐 4,100만 원 상당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나머지 교사들도 비슷한 수법을 썼으며 이들이 챙긴 보험금만 2억 3,000여만 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의사 13명은 범행을 묵인하고 900여만 원을 챙겼으며 보험설계사 중 일부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보험가입을 권유한 뒤 사기를 공모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윤 씨 등은 잦은 칠판 판서로 목·어깨가 결린다거나 학교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는 이유를 대고 허위 입원했으며 입원 조치만 해놓고 학교 수업을 하거나 여행까지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교사들의 보험사기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즉 ‘보험사기=범죄’라는 인식이 희박해서 벌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입원해 보험금을 챙기는 것처럼 환자 사칭을 ‘내가 낸 돈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는 비양심적인 짝퉁 환자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부산광역시 사하경찰서는 택시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실직상태인 것처럼 속여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아온 허 모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허 씨는 지난 4년간 택시회사와 짜고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채 근무하며 매월 50~60만원의 월급을 현금으로 받았다. 회사는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 씨를 채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허 씨는 정부로부터 4,000여만 원을 받아 챙겼다.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세금을 축내온 ‘가짜’ 수급자인 것이다. 허 씨는 정부가 기초 수급자를 가려내는 기준으로 삼은 소득·재산 등의 공적자료가 15종(10개 기관)에 불과해 빠져 나갈 구멍이 많다는 점을 악용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갈 혜택이 ‘가짜’의 심각성을 모르는 이들에 막혀 갈 길을 잃은 것이다.

 

사회·경제에 악영향 단속과 인식변화 필요

이처럼 대한민국 ‘짝퉁’의 범람은 공정하게 거래를 하는 정상적인 업체들의 매출 감소 및 이미지 추락, 국가 신뢰도와 경쟁력 약화, 도덕 불감증 등을 야기한다. 서강대 경영학과 전성률 교수는 “유사 브랜드가 난립하는 현실은 결국,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게 되고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 교수는 “통상적으로 대기업의 ‘후광 효과’를 노려 브랜드를 차용하지만 자칫하면 자신만의 색깔이 없어져 상품 가치를 잃게 되고, 소비자들에게는 얄팍한 상술로 비칠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남의 브랜드는 유명하다 해도 넘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가짜상품은 업체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금전적인 손실과 상처를 남긴다. 특허청과 관세청 등 정부기관에서 ‘짝퉁’ 퇴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성신여대 문화콘텐츠학부 심상민 교수는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보호국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상표 문제는 하나의 징표가 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유사 브랜드의 난립을 막는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전문가들은 특허청을 비롯한 검·경 및 관세청 등 정부기관이 아무리 위조 상품의 생산·공급업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짝퉁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는 한 위조 상품의 척결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특허청의 한 관계자는 “위조 상품의 생산·공급업자와 이를 알면서 구매하는 소비자의 공생관계가 존재하는 한 짝퉁은 마약처럼 계속 생산 및 공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올바른 인식과 건전한 소비문화를 확산하고 실천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정보화로 어떤 의미에서 원본이 사라진 ‘짝퉁의 시대’로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인간의 따스한 숨결 대신 허상만 남아 있는 시대에 원본에 대한 갈증은 더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즉 창의력과 독창성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덥히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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