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산 귀족의 군대, 폭력을 묵인하는 정부
돈으로 산 귀족의 군대, 폭력을 묵인하는 정부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2.10.08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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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의 현장에 나타나는 경비용역, 돈 되면 어디든 간다”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Social Focus] 용역폭력

 

노사 간의 갈등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집회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방망이와 방패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며 시위현장을 진압하는 모습이다. 영화에서만 봐야할 장면이 지난 7월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자행됐다. 곤봉과 방패를 이용해 근로자들을 탄압하고 상해를 입힌 경비용역의 실체, 대한민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용역폭력을 살펴보고 우리사회가 가진 문제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교묘하게 법 피한 합법적인 폭력

‘가자!’ 한마디에 손에 쥔 방망이가 떨려온다. 왜 노동자를 탄압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노조를 향해 달려간다. 주위에서 오가는 욕설 속에 방망이를 든 그들을 국민들은 이렇게 부른다. ‘용역깡패’ 지난 7월 27일 방망이와 방패를 들고 중무장한 300여 명이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집결했다. 새벽 5시, ‘진격’이란 외침과 함께 군특수부대, 무술 유단자 등으로 구성된 경비업체 ‘용병’ 300명이 공장 정문으로 돌진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근로자들에게 곤봉과 소화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근로자들에게 악마와도 같았다. 어떤 노동자들은 그들이 두려워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수많은 부상자를 낸 SJM 용역폭력 사태는 대한민국이 가진 아픈 뼈아픈 단면이다. SJM사태 속에서 경비용역업체 ‘컨텍터스’가 질타를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장하나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SJM에 투입된 컨택터스는 이명박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개인경호를 했던 업체로, 2006년 설립한 뒤 이명박 정권하에서 급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민간 군사기업을 지향하면서 무장 경호의 합법성을 획득하고, 총기류와 탄약 및 선박 내외의 무장에 필요한 무기들을 국제네트워크를 통해 원활한 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모토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진압장비를 보유한 대한민국 시위․집회의 해결사를 자칭하며 이를 위해 방패와 헬멧 등 1,000세트와 지휘차량, 진압차량 항공 채증용 무인헬기 까지 갖춘 군사기업과도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돈 없는 국민은 보호받을 자격도 없다, 상품이 돼버린 ‘안전’

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2,671개이던 경비업체수가 2012년 3,739개로 40% 증가했다. 이는 경찰공무원의 인력이 2002년 9만 1,592명에서 2009년 9만 9,594명으로 8.7% 증가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즉 경찰치안은 그대로이지만 사설 경비업체는 늘어나고 있는 것을 뜻한다. 날로 늘어가는 강력범죄에 대한 경찰의 미지근한 대응은 사설경비업체의 증가를 몰고 왔다. 민간 경비원 수는 이미 경찰관의 수를 넘어섰으며, 작년 기준 경찰인력보다 민간 경비원 규모가 14만 6,286명으로 경찰의 수보다 1.4배 많다.

 

국민 모두가 누려야할 안전이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서비스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경비용역이 치안 영역에서 민간 부문의 비중이 확대되는 것과 더불어 경비원의 권한남용 등 부작용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경찰의 방조와 비호아래 급성장한 이들은 폭력뿐만 아니라 도를 넘어선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재능교육에서 부당해고 당하고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민희 씨는 “재능교육 본사 앞 농성장에서 어느 날 낯선 남자들이 찾아와 아는 척 했다”며 “매일 퍼붓는 폭언과 성희롱, 온갖 해괴한 짓과 살해위협으로 그들은 우리를 쓰레기 취급을 했다”며 울먹였다. 이어 박근서 금속노조 한국쓰리엠 지회장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50여명의 용역직원들이 두 줄로 서서 검사하며 노조 조끼와 명찰이 있다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며 “그들은 폭행혐의로 영업취소를 당했었지만 보란 듯이 지금도 쓰리엠에서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얼마 전 SJM 폭력사태를 자행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여 씨와 박 씨는 용역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와 처벌, 법 개정을 촉구하며 국회를 둘러싸고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와 KEC, 유성기업, 한국쓰리엠, JW, 재능교육, 국민체육진흥공단,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등 전국 16개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의 폭력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오래전부터 이어온 관행”이라며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엄격한 자질검증을 통해 선별되는 선진국의 경비용역

독일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민간 용역업체들이 경비와 질서 유지 등을 맡아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용역은 곤봉 같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폭력이 우려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용역들은 이를 경찰에 신고하는 의무를 질뿐이다. 또한 미국 경비업 법제의 특징은 일반 경비원의 경우에도 면허를 취득해야 하고 사후적으로도 교육 등을 통하여 경비원의 자질향상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사회에서 경비용역의 폭력의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노사분규 현장, 재개발 현장 등은 일반 시설경비업무가 아니라 혼잡장소경계업무에 해당하여 별도의 규율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경비업법 제8조에서 경비원이 타인의 권리 및 의무를 침해하거나 개인 혹은 단체의 정당한 활동을 간섭해서는 아니 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경비원의 결격사유로 우리처럼 금고 이상의 형사 처분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집단적, 상습적으로 폭력적 불법행위 기타 죄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로 행정규칙에서 정한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하여 조직폭력배 등이 경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과 같은 면허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지만, 일반경비원에 대하여도 검정을 실시하여 경비원의 능력과 지식을 테스트하고 있다.

 

어제 오늘이 아닌 용역폭력, 정부의 무관심부터 바꿔야 할 때

SJM사태를 비롯한 용역폭력의 배경에는 합의되지 않는 노사관계가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SJM의 직장폐쇄사태로 불거진 용역폭력 문제를 두고 “노동자들을 머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국기업의 적나라한 본질”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 기업은 비폭력일지라도 노동자가 약간의 ‘반항’이라도 시도하면 스스로 유사 경찰이 돼 사유화된 폭력을 행사한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문선곤 노사대책위원장은 “노동 유연화 시대에 사용자와 노동자들의 신뢰가 깨졌고, 파업에 들어가면 한 식구인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짓밟고 용역을 불러 깨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 위원장은 이어 “불법파견 문제가 노사갈등을 일으키고 장기투쟁 사업장을 만드는 심각한 원인으로 등장했다. 결국 용역깡패가 투입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민주노동당 윤성봉 연구원은 “용역경비는 경찰, 자본, 용역깡패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합법으로 전환시킨 것”이라고 피력했다.

 

용역폭력이 난립하고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이 시점에 민주노동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러 의원들이 경비업법의 개정에 나섰다. 정부의 묵인과 비호아래 성장한 경비용역은 노동현장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폭력을 지양하고 법을 준수하고 올바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경찰과 정부 관계자의 법 개정과 정책의 조정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기획/안수정 기자 글/류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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