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10.08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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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구타·방치 등 사건사고에 멍든 아동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Child Focus Ⅰ] 위기의 아동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뉴스를 보기 미안할 정도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정서적, 육체적 학대 소식이 들려오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러한 폭력들이 특정 아동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닌, 목적과 대상 없이 자행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쪽같은 내 아이의 안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처: EBS 방송화면 캡쳐

 

잠자던 女초등생 이불 채 납치돼 성폭행

“집이 바로 저긴데, 바로 저긴 줄은 아는데…. 아무리 일어나서 집에 가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못 왔어요. 미안해요, 아빠.” 나주 초등학생 납치·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A(7)양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면서 이렇게 흐느꼈다고 한다. 전남 나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새벽 나주시 영산동의 한 변두리 주택에서 잠을 자던 A 양이 고종석에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

모텔과 PC방을 전전하던 고종석이 A 양 집에서 200여m 떨어진 작은 아버지 집을 찾은 것은 지난 8월 25일. 태풍도 불고 순천에서 일거리가 없던 차였다. 8월 29일 그는 사촌동생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30일 새벽 1시께 평소처럼 작은 아버지 집에서 150m 가량 떨어진 PC방에 들렀다. 이곳에서 고종석은 알고 지내던 A 양의 어머니 B 씨와 마주쳤다. 5년 전 잠시 이곳에 살았던 고 씨는 B씨의 큰 딸이 떠올랐다. 순간 욕정이 솟구친 그는 B 씨에게 “애들은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B씨가 게임에 빠져있는 사이 PC방을 나온 그가 80m 가량 떨어진 A 양의 집에 들른 것은 새벽 1시 45분.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인적도 없었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4남매가 누워 있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고종석은 문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누워있는 A 양을 이불 째 들고 납치했다. 건장한 체격의 그가 겨우 20kg 남짓 된 아이를 들고 나가기까지 가족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놀라 잠에서 깬 A양을 “삼촌이다”며 안심시킨 고종석은 곧바로 300m 가량 떨어진 영산대교 밑으로 향했고,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뒤 자리를 떴다. 대장이 파열되는 등 중상을 입은 A 양은 집에서 직선거리로 100m가량 떨어진 길가에서 이불에 둘러싸인 채 발견됐다. 조금만 걸어가면 집에 돌아갈 수 있었으나 경찰에 발견될 때까지 그저 이불을 둘러쓴 채 가만히 있었다. A 양이 느꼈을 충격과 불안감은 어른들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여아를 상대로 한 성폭력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남자 아이들도 성범죄 위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인 A 군은 최근 수영장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50대 아저씨가 A 군의 성기를 만지고 비비는 등 강제추행을 저지른 것이다. 경기 지역에 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B 군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60대 남성에게 유사성행위 등의 강제추행을 당했다. 9월 14일 경찰청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강제추행을 당한 남성 아동·청소년은 2000년 2건에서 지난해 75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강제추행 아동·청소년 피해자 중 남아의 비율을 보면 2000년 1.8%에서 지난 10년 2010년 7.3%로 급증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남아의 상담건수도 지난해 31건, 지난 2010년 28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자 아동의 성추행 피해 신고율은 여성 아동보다 더 낮다는 것을 미뤄보면 실제 발생하는 남아 성추행 사건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과거에 비해 남자아이의 성추행 피해에 대한 신고나 상담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여자들만 성폭행 피해를 입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남성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다. 때문에 남성 아동들이 유사성행위 등 성폭행에 쉽게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집계한 2011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2054건에 달했다. 2007년 857건이던 것이 5년 만에 2.4배에 이를 정도로 급증 추세다. 같은 기간 성인 대상 성범죄가 1.4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증가 추세가 훨씬 가파르다. 앞서 한국의 아동 성범죄 발생 건수가 세계 4위권인데다 세계 6위의 음란물 생산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한국 사회의 특징과 변화상에 비춰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부유층 거주지보다는 도시 변두리나 농어촌 지역에 훨씬 집중돼 있다. 방과 후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환경이 취약한 곳이다. 또 이웃이나 면식범의 소행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광택 경희대 교수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계급 격차나 성 산업으로 돈을 버는 구조적인 문제는 짚지 않은 채 특정 범죄자의 인격 장애로 몰아간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며 “정치인들이 연일 범죄자에 대한 격리와 감시를 강화하는 대책을 쏟아내며 인기에 영합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감금·폭행 등 양심 없는 어린이집

아동 성학대만이 문제가 아니다. 안심하고 보내야 할 어린이집에서도 아동학대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0일 오산시 지역 내 한 시립어린이집 원장이 원생을 감금하고 구타를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산시 세교2단지 어린이집 아동학대 피해 학부모 모임은 오산시청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학부모 측 주장에 따르면 오산시 세교 2단지 A시립어린이집 원장 B 씨는 원생(0~1세)들이 울며 보챈다는 이유로 가슴과 등 부위에 폭행을 가하고, 4~5시간 동안 원장실에 감금까지 일삼는 아동학대를 저질렀다. 학부모 측과 교사들은 B 씨의 이 같은 행태가 올 3~9월까지 6개월간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원장은 교사들에게 감금된 원생들의 안전을 물으며 “원생들이 숨은 쉬고 있는지 확인하라”라는 말까지 내뱉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장의 딸인 C 씨까지 구타에 가담했다는 목격담도 제기됐다. C 씨는 교사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원장의 딸이란 이유로 채용돼 2010년 8월부터 올 3월까지 해당 어린이집에서 근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생의 감금과 구타장면을 목격했다는 보육교사 김혜리(46) 씨는 “원생들이 울면 매우 짜증을 내면서 뺨을 때리고 가슴 부위에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부터 해당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해 왔다는 심순정(33) 씨도 “말 못하는 아이들이 겪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학부모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모두 털어놓게 됐다”고 했다.

한편 경기도 광명의 한 시립어린이집에서 장애전담교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아동을 학대한 일도 발생했다. 9월 1일 경찰에 따르면 시립어린이집 장애전담교사 A씨는 지난달 18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B(5) 군이 점심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숟가락을 B군의 입에 억지로 밀어 넣고, 등을 수차례 때린 뒤 양 볼을 잡고 뒤로 밀쳤다. B 군의 부모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른 아이의 부모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듣고 어린이집에 찾아가 당시 상황을 CCTV로 확인한 뒤 박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B 군의 어머니는 경찰에서 “CCTV를 보니 교사가 아이를 윽박지르고 등을 때린 뒤 양볼을 잡고 뒤로 밀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었다”며 “교사는 달래주기는커녕 아이의 식판을 뺏더니 자기 밥만 먹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대 가해자 10명중 8명 ‘부모’

아동쉼터를 찾은 최(19) 군은 아버지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아 이곳을 찾았다. 평소 다정하지는 않아도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매일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다. 하루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최 군을 화장실로 부른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최 군에게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담게 하고는 그 안에 고춧가루를 풀게 했다. 이윽고 아버지는 최 군의 머리를 움켜잡고는 물에 수차례 넣었다 빼는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하기도 했다. 인근 가게에서 외상술을 사오는 것은 그의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술을 사오지 않으면 항상 아버지의 발길질과 주먹세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외상장부에 적지 않고 술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건넨 일도 많았다.

아동학대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앞선 최 군의 상황처럼 주 가해자는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집에서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9월 3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전국 45개소)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건수를 조사한 결과 총 1만 146건으로 집계, 2010년 대비 약 10%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 아동학대 판정사례는 6,058건으로 확인됐다. 6,058건의 아동학대 가운데 86.6%(5,426건)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으며 부모에 의한 학대가 83.1%(5039건)에 달했다. 아동학대 유형은 중복학대(43.3%)가 가장 많았다. 방임은 1,783건으로 29.4%를 차지했다. 이어 정서학대(15.0%), 신체학대(7.7%), 성학대(3.7%), 유기(0.9%) 순이었다.

3세 미만의 영아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하거나 영아에게 폭력 등을 가하는 20,30대 부모도 급증했다. 2011년 학대를 당한 0~2세 영아는 708명으로 4년 전인 2007년(362명)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학대 행위자는 대부분 부모(86.5%)인 것으로 나타나 젊은 어머니가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영아를 학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일반적인 학대 사례에서는 대부분 아버지가 학대를 가하는데 반해 영아의 경우 어머니가 많은 것은 아동 양육을 주로 담당하는 어머니의 육아 스트레스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이제 남의 집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날로 증가하고 잔인해지는 아동학대를 시 차원에서 적극 나서 ‘아동학대예방 종합대책’을 수립, 9월 4일 발표했다. 그동안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사후 조사, 조치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공공의 책임성을 강화해 ‘사전예방’부터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재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 보호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마련된 ‘아동학대예방 종합대책’은 ▲아동학대 신고전화 일원화 ▲신고포상제도 도입 ▲서울시 아동학대예방센터 공적 개입 강화 ▲지역아동학대예방센터 확대 ▲피해아동 맞춤형 상담 치료 ‘전문 그룹홈’ 설치 ▲아동학대 발생시설 ‘무관용 원칙’아래 엄벌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실장은 “한명의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며 “아동학대를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 문제로 방치하지 않고 초기부터 적극 개입해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꼼꼼히 챙겨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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