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이군(不事二君)의 고려충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고려충신
  • 임성희 기자
  • 승인 2018.05.04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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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세종시 역사인물 임난수 장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고려충신
역사 속에서 지워진 그, 세종대왕 통해 그 이름 알려지다

세종시 지역기획을 진행하면서 많은 취재원들로부터 예전 연기군 지역이 부안 임씨 집성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 역시도 부안 임씨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조사를 해보니 부안 임씨의 중시조인 임난수 장군이 집성촌의 시조였다. 임난수 장군은 우암 송시열이 고려 말 3대 충신(정몽주, 길재, 임난수)으로 손꼽을 만큼 고려 말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었으나, 조선건국 후 역사서에서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조선에 반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배재되어버린 인물 임난수 장군. 세종시 수립이후 그 후손들이 그를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 어느새 임난수 장군은 세종시의 대표적인 역사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개경에서 내려와 전월산 양화리에 자리 잡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로 유명한 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임난수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364년에 권문세가 후손으로 태어난 임난수 장군은 고려가 몽고에 괴롭힘을 당하고 원나라에 복속되던 아주 불행한 시기를 겪었다. 공민왕이 끔찍이 사랑한 노국공주의 빈소를 지키는 벼슬을 최영 장군을 통해 맡게 된 사람이 임난수 장군이다. 정사를 뒤로한 채 노국공주의 영혼을 달래고자 노력했던 공민왕이기에 그녀의 빈소를 지키는 벼슬을 맡았다는 건 웬만한 신임 없이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바뀌면서 명나라 주원장에게 바칠 말을 구해오라는 공민왕의 명을 받고 임난수 장군은 최영 장군과 제주도로 가서 전투를 하다 오른팔을 잃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승리를 하며 말 3천 필을 끌고 오지만 공민왕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이 왕위에 오르고 우왕이 임난수 장군의 공을 높이 사 자금어대(紫金魚袋;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어있는 주머니. 공복(公服)의 띠에 매달아 관직의 귀천을 구분하였음)를 내리고 지금의 경기도지사 정도 되는 부평부사의 직을 내리게 된다. 그 후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중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 벌어지고, 최영 장군도 죽임을 당하면서 임난수 장군은 태조 이성계가 그를 회유하기 위해 전서라는 벼슬을 내리지만 이를 물리치고 자신의 고향인 전북 부안(당시 보안)으로 내려간다. 금강 변을 따라 내려가 던 중 전월산이 자신의 성인 임(林)자 모양으로 생겼다고 생각해서 양화리에 터를 잡은 게 지금의 집성촌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아들 임목이 선친을 기리기 위해 독락정을 지었는데, 현재 금강이 보이는 세종시 나성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아들 임목이 선친을 기리기 위해 만든 ‘독락정(獨樂亭)’
전월산에 자리를 잡고 임난수 장군은 기념식수로 은행나무 2그루를 심었는데, 그 은행나무가 600년 넘게 터를 지키며 세종시문화재까지 지정됐다. 임난수 장군은 전월산 꼭대기에 우물을 파서 매일 그 물을 떠 고려 마지막 왕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전월산 꼭대기 큰 바위(상려암)에 앉아서 매일 개경을 바라보고 엉엉 울었다 한다. 1408년에 운명한 임난수 장군은 약 16년 가량을 전월산 양화리에서 은거하며 보냈다. 양양도호부사를 지낸 그의 아들 임목이 선친을 기리기 위해 독락정을 지었는데, 현재 금강이 보이는 세종시 나성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임난수 장군의 후손들은 12년 전부터 ‘독락문화제’를 개최하며 임난수 장군을 기리는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독락정이 있는 나성동에 나성역사공원이 지어질 예정인데, 독락정과 임난수와 고려시대 최고 가전체 문장가 임춘을 모셨던 기호서사가 주요 테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호서사가 복원 중에 있어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올해부터 초등학생들 교과서에서 ‘임난수 장군’ 만나다
본 기사를 작성함에 있어 연기향토박물관의 임영수 관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고려충신 임난수 장군 일대기’라는 책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정리해 출판했다. 그는 임난수 장군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알려져야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안타까운 역사 속 인물이라며 아쉬워했다. 자신이 집필한 임난수 장군의 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그는 이미 세종시에 임난수 장군의 흔적을 남긴 1인이기도 하다. 세종청사 국무총리실 근처에 ‘임난수로’라는 도로명 주소를 적극 추진한 장본인인 것이다. 더불어 교과서심의위원으로 참여해 초등학교 3,4학년 교과서에 임난수 장군이 실릴 수 있게 협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초등학생들은 임난수 장군을 교과서를 통해 배울 것으로 보인다.  


 

 


연기향토박물관 임영수 관장     
임난수 장군에 대한 기록은 묘소에서 발견된 376자의 지석과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두려움이 일기까지 했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선조의 훌륭하신 업적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해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임난수 장군이 살았던 시대에는 중요한 역사가 몇 가지 있습니다. 몽고의 끈질긴 침략에도 28년간 버텼지만 결국 원나라에 복속되어 부마국이 된 것, 공민왕의 반원정책, 신돈의 등장, 우왕과 최영의 요동정벌, 이성계의 회군, 조선건국, 왕자의 난 등 그 역사 속에 고려 충신 임난수 장군이 있었고, 고려의 정신을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후 세종이 등극하여 임난수 장군에 대한 평가를 귀하게 여기고 이를 보존토록 당부하였으니, 그 뜻을 받들어 세종시 역사인물로 정리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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