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한국은 고졸 취업 힘들다
아직까지 한국은 고졸 취업 힘들다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2.08.2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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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처우·직장내 차별 등 개선할 점 많아
[이슈메이커=남윤실 기자]

[Zoom In] 고졸 취업 ‘차별’

 

기업들에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도 올 들어 처음으로 고졸 관리직 700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내년 초 고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도 이 대열에 가세했고, 오비맥주는 아예 입사 요강에 ‘대졸자 이상’이란 자격요건을 빼버렸다. 정부가 작년 하반기부터 ‘열린 채용’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채용 실적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고졸자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곧장 취업 현장에 발을 들이더라도 열악한 처우·직장내 차별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 제도 보완 및 전반적인 고용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고졸 채용 실적 여전히 미흡한 수준

지난 7월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288개 공공기관의 고졸자 정규직 채용은 577명으로 연간 목표의 23.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목표치 2,508명의 4분의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이 기간에 대졸자 채용은 7,510명이나 이뤄졌다. 대졸 채용은 연간 목표치인 1만 2,761명 중 58.9%의 달성률을 보여 고졸자 채용과 극심한 대조를 이뤘다.

고졸 채용은 인기 공공기관일수록 더 저조했다. 한국전력공사 등 28개 공기업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83개 준정부기관의 고졸 채용률은 각각 19.1%, 18.0%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대병원 등 117곳의 기타 공공기관은 38.3%의 고졸 채용률을 기록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1,500여명이 고졸인턴으로 근무 중인 상황과 하반기 정규직 전환계획 등을 고려할 경우, 상반기 실질적인 고졸자 채용은 1,300여명에 이르러 당초 계획의 52.8%를 기 달성했다”면서도 “고교 교과과정상 1학기 채용이 힘들어 상반기 실적이 다소 부진했다”고 말했다.

국내 민간 기업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기업 31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3년 전에 비해 고졸 채용을 확대했다고 답한 기업은 21.0%에 그쳤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 24.0%, 중소기업 17.9%가 고졸 채용을 늘렸다고 답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고졸 채용이 역시 저조했다. 특히 최근 2~3년간 고졸 채용규모 변화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 기업의 73.5%가 ‘변화없다’고 답해 ‘열린 채용’의 갈 길은 먼 것으로 나타났다. 또 2~3년 전에 비해 고졸 채용을 줄였다고 답한 기업도 5.5%로 집계됐다.

 

고졸 채용 열풍, 빈 수레가 요란

고졸자들이 막상 취직을 해도 취업 현장의 애로사항이 상당히 많아 ‘열린 채용’ 안착은 묘연한 실정이다. 고졸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고 대졸자와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에 나선 고졸자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어려움은 생각보다 얇은 월급봉투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의 ‘2011 고졸자 취업진로조사’에 따르면 고졸자의 월평균 소득은 평균 131만 9,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저임금에 따른 월 급여를 간신히 넘어선 수준이다. 대졸자의 임금과 비교하면 더 초라하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조사한 우리나라 대졸자 평균 임금인 258만 9,000원에 비해 무려 127만원이나 적다. 열악한 근로환경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50%가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24시간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열린 채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벽 중 하나로 직장 내 보이지 않는 ‘차별’을 꼽았다. 실제 올해 서울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박모씨(19)은 중소기업에 입사했지만, 열악한 처우과 직장내 보이지 않은 차별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다. 박모씨는 “처음에는 취업해서 마냥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일주일이 채 못가더라고요. 적은 급여와 직장 내 학력 편견 등으로 업무상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대학에 진학해 대졸자 신분으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졸 취업자 김모씨는 고졸과 대졸과의 차별은 엄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취업을 했지만 직장 내 차별은 그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었다. 그는 차별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참고 버텼다. 이유는 ‘평균 4~5년 후 대졸 사원과 동일한 대우를 해준다’는 조건을 듣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대졸 사원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그에게 “솔직히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회사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수시로 했고 실제로 고졸 출신으로 승진하거나 성공한 선배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졸 취업자들의 애환은 비단 박모씨와 김모씨 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고졸 취업자들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학벌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19일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고졸 직장인 388명에게 조사한 결과, 75.3%가 ‘고졸 학력이 직장생활 및 사회생활에 있어 걸림돌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학력이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직종선택이나 이직에 제약이 많아서’라는 응답이 51.0%로 가장 많았다. 그밖에 ‘학력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이 심해서’ 27.7%, ‘학력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평가절하 당해서’ 15.4%, ‘이성을 사귀거나 혹은 인맥을 구축할 때 어려움이 생겨서’ 5.1% 등이었다. 현재 대학진학을 희망하거나 고려하고 있는냐는 질문에 54.1%는 ‘그렇다’고 답했다. ‘직장과 병행해 다니고 있다’는 응답도 11.4%를 기록해 모두 65.5%가 대학진학을 희망하거나 재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업계 고등학교 교사는 “졸업후 입사 4년차가 되면 대졸자 임금대비 90% 정도는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고졸이라는 이유로 승진기회도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격차가 커집니다”라며 고졸 취업 이후 진급과 임금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 시급

최근 들어 은행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확대되는 등 변화의 조짐도 있지만, 고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곳곳에서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는 벽이다. 기업들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식으로 또는 능력의 검증에 자신이 없어서 손쉽게 대졸자를 선호하고 있다. 이성을 사귀거나 결혼상대자를 고를 때에도 고졸이라고 하면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 결혼정보업체인 듀오는 고졸 출신 남성은 아예 가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회원가입 자격 요건으로 ‘남자는 전문대졸 이상, 여자는 고졸 이상’을 명시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신한은행이 고객의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해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례를 보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대졸자와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 때문이다. 학력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학력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졸 학력만으로 우리사회에서 성공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 대학 진학률은 줄곧 80% 정도이다. 2008년 84%로 최고치 이후 꾸준히 70~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선진국에서 고졸 취업률이 될 만한 수치가 우리는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학력은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생산성이나 경쟁력은 제자리다. 일본의 대학 진학률은 60%를 채 넘지 않는다. 우리의 3분의 2 수준이다. 우리는 매년 일본보다 30%가량 더 고학력 인구를 배출하지만 생산성은 되레 더 떨어지고 있다. 우리와 다르게 선진국의 경우 ‘선취업·후진학’이 일반화돼 있다. 고졸과 동시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적성은 이미 중·고교 때 현장교육과 방과후교육 등을 통해 알 수 있어 고졸과 동시에 곧바로 직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청년층 취업자 중 고졸 이하 비중이 59.9%에 이른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스위스 등도 높은 실업계 졸업률과 효율적인 학교 현장교육이 어우러져 기업 경쟁력을 배가시킨다. 스웨덴은 대학 신입생 가운데 20%가량이 30세를 넘고 있다. 고교 졸업 후 10년 정도 일하던 직장인이 본인의 직업에 필요한 연구를 더하기 위해 대학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교육당국에서 선취업·후진학의 구체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관습이 제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이제는 무작정 대학진학을 하는 것이 아닌 이런 ‘선취업·후진학’의 취업-교육 패러다임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고졸 취업자가 자신의 직업능력 개발을 위해 언제든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고용문화 개선이 필요할 때

우리 사회에는 고졸 사장과 고졸 은행장 등 이른바 입지전적인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 적지 않다. 대졸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불굴의 의지와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한 사례다. 그러나 앞으로는 고졸자의 성공이 더 이상 신화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고졸 취업자가 우리 사회의 보조인력이 아니라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학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쟁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권태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내부에는 고졸자를 위한 교육시스템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실망해서 다시 대학을 진학하게 됩니다”라며 “중장기적으로 고졸채용이 확산되는 문화로 가야하고 기업의 인사관리 시스템 관행이 바뀌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가 꿈에 부풀어 취업했지만 회사의 무관심과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중도 탈락하는 사례가 많다면 ‘고졸 채용’이 뿌리내리기 어렵다. 좋은 인재들을 애써 뽑아놓고도 관리 소홀로 미래의 일꾼들을 잃는다면 기업으로서도 이중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고졸자를 채용한 후에는 이들이 회사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 차원의 세심한 관리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고졸 채용’을 일시적인 생색내기가 아니라 채용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생각한다면 학력보다는 능력으로 대접받는 직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승진과 임금 등에서 불필요한 차별은 없애야 한다. 또한 ‘멘토제’나 ‘고졸 커뮤니티’ 등 고졸자 적응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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