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 부실 뇌관 카운트다운
자영업자 대출, 부실 뇌관 카운트다운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8.2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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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침체-대출 부실-사회안전망도 없어 3중고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Self-employed Ⅲ] 대규모 폐업우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금융위기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던 인력들이 속속 자영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놓칠세라 시중은행들도 경쟁적으로 자영업자들의 창업자금 대출 수요 확보에 나서면서 최근 수년간 자영업시장 확대에 기름을 부었다. 무리한 규모 확대 경쟁은 결국 부실로 이어졌다.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면서 곳곳에서 부실이 발생했고,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도 껑충 뛰었다. 문제는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의 특성상 향후 경기흐름에 따라 대량 부실화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은행권 신규대출 64% 자영업자 ‘쏠림’

윤광진(54)씨는 30년 가까이 근무하던 중견기업이 경영난에 처하자 2년 전 구조조정을 당했다. 두 자녀의 유학비를 위해 이미 퇴직금을 중간 정산한 터라 윤 씨가 퇴직금조로 손에 쥔 돈은 불과 2,500만원. 두 자녀 모두 유학기간이 3년 이상 남아있고, 앞으로 대학 등록금과 결혼자금 등을 마련하려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윤 씨는 은행에서 5,000만 원을 추가로 대출 받아 프렌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창업 초기에는 각종 가맹비 및 금융비용을 제하더라도 매월 최소 300만 원 가량의 순익이 보장됐다. 하지만 이내 윤 씨 가게 주변으로 비슷한 업종의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40%씩 급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프렌차이즈 회사에서는 물가상승으로 식재료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매년 가맹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가게를 운영하다 때때로 적자가 날 때마다 윤 씨는 저축은행과 카드사나 대부업체 등에서 소액으로 신용대출을 받아 자금을 융통했다. 빚은 얼마 되지 않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윤 씨의 부채는 결국 7,500만원으로 늘게 됐다. 최근 그는 연체이자조차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채무불이행자 처지로 전락했다.

앞서 소개된 윤 씨의 사례처럼 경기침체로 경영난에 시달리거나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면서 다중채무자 중 자영업자들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개인신용정보업체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다중채무자들이 금융권에 상환해야 할 전체 부채 잔액 가운데 자영업자나 무직자가 차지하던 비중이 크게 증가해 지난 5월 처음으로 50%를 돌파, 50.3%로 집계됐다. 우려되는 점은 은행권 신규 대출이 자영업자에 과도하게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기업은행 등 우리나라 6대 시중은행의 5월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35조 2,000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6조 4,000억 원(4.9%) 늘었다. 이 기간 대출 증가액의 64.4%에 해당한다. 대출이 증가하면서 부실대출도 늘어나 5월 말 연체율이 1.17%로 지난해 말에 비해 0.37%포인트 상승했고,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0.9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까지 0.8%대를 기록하다 올 1월 1%를 돌파한 뒤 계속 오르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자영업자 대출이 급격히 부실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은 자영업자의 특성상 경기 부진에 따른 매출 둔화가 지속되면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부실화의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마땅한 대출 수요처가 없는 은행들이 자영업자 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경기 악화 때 상당수가 부실 대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도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해지면 금융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가계대출 억제 ‘풍선 효과’

자영업자 대출 부실문제를 놓고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정책에 따른 ‘풍선 효과’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시중은행에 가계대출 확대 자제를 요구해왔다.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시중은행들은 고민에 빠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다량의 현금을 쌓아두며 은행들에 대한 대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리스크 위험이 높아 섣불리 볼륨을 확대할 수 없었다. 결국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중 자영업자 대출을 확대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규모가 건당 1억 원 안팎이라 중소기업 대출보다 리스크가 작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불어 자영업자 대출은 심사 과정도 비교적 간편하기 때문에 은행 영업부서에서도 실적을 쌓기 위한 용도로 자영업자 대출에 매달렸다. 일부 시중은행의 경우에는 2007~2008년부터 일찌감치 ‘프렌차이즈론’을 출시, 가맹 점주들을 대거 차주로 확보하며 자영업자 대출의 볼륨을 키워왔다.

최근 자영업자 대출의 잠재적 부실이 제기되자 은행권은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베이비부머 퇴직 등으로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레드오션’ 업종에 집중돼 대규모 폐업과 이에 따른 사회불안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는 민간 싱크탱크의 섬뜩한 경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영업자들의 부실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폐업과 사회불안을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경제연구원이 7월 9일 내놓은 ‘저부가가치에 몰리는 창업, 자영업 경기 더 악화시킨다’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급증한 신규 자영업자가 대부분 경쟁이 치열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숙박 음식업·도소매업·건설업 등의 업종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자영업자 대부분이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 집중돼 대규모 폐업과 대출 부실이 우려된다”며 “자영업자 대출이 가계부채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불어 내수경기는 위축되는데 자영업 진출은 꾸준히 늘어나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는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위축 뿐 아니라 사회불안 우려

자영업 실패가 가져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가계부채 급증을 견디다 못한 중산층이 자산을 투매해 자산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자산가격 하락→부(富)의 감소→소비 부진→경기위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자산 디플레이션에 물가상승까지 겹치면 경제는 한동안 고물가·저성장이 함께하는 최악의 스태크플레이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중위소득의 50~100%에 속하는 한계 중산층의 추가 붕괴가 염려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중산층 일자리가 양적·질적으로 줄었고 급여 근로자가 자영업으로 전환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며 “지금은 가계부채가 소득 흐름을 불안하게 하는 위험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퇴직→생계형 창업→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폐업→빈곤층 전락의 악순환은 경제위기 때마다 반복됐지만, 특히 자영업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영업자들은 망할 경우 더 이상 기댈 곳 없다는 점이다. 임금근로자는 실업을 해도 공적 부조를 통해 어느 정도 재기의 시간을 벌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이 같은 완충 장치가 거의 없어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가족형 자영업의 폐업과 가장의 파산은 가족 해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사회의 기본 토대인 가족이 붕괴되면서 동반자살이 급증하고 극빈층이 양산되면 자연히 범죄가 증가하면서 사회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영업자의 폐업은 가족생계 전체로 이어지는 게 많다. 생계수단이 끊어지면서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고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용두 소상공인진흥원 원장도 “자영업자 부채가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고,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 사회불안 요인이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년연장·재취업 확산 위해 임금경직성 해소 급선무

전문가들은 자영업 위기가 사회불안까지 이어지는 '자영업 대란'을 막기 위해 3단계로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자영업으로 유입되는 인력을 줄이고 기존 인력 업종은 다각화하는 한편 실패자에 대한 사회 안전장치를 보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과 10여년 후인 오는 202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진입한다. 현재 우리나라 연금제도 수준으로는 급증하는 고령자를 감당하는 데 분명히 한계가 있다. 향후 기대수명이 80세를 넘길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일부 자산계층을 제외한 상당수 은퇴자들은 여전히 일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갈 곳 없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노동시장의 임금경직성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임금 경직성을 해소해 적은 임금으로라도 노동시장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 자영업 위기를 막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고가영 LG경제연구원은 “정부가 공공근로를 통해 노령 취업 인구를 직접 흡수하려 하지만 이는 재원상 한계가 있다”며 “결국 고용의 주체인 기업이 임금피크제나 잡셰어링 제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자영업종에 진출해 있는 인력을 대상으로는 정부가 적극적인 업종 다각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사회서비스업이나 서비스농업 등의 부가가치를 제고해 자영업자의 전업을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서비스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19% 정도인데 이를 선진국인 미국(26%), 프랑스(22%) 수준으로 높이면 사회서비스업이 자영업자의 전업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여성 창업자라면 아이나 노인 돌봄 서비스 등에 진출할 수 있고 지역에 기반을 둔 사람은 환경·문화 사업과 같은 지역 공동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이들 업종의 양성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준다면 자영업 수요 가운데 상당수를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경기악화로 자영업자들이 연쇄 도산을 시작할 경우 이를 감당해줄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자영업자의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란우산공제라는 공제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실업급여 가입제도도 시작됐다. 이 가운데 노란우산공제는 매월 일정 부금을 적립해 폐업 시 일시금 또는 분할금의 형태로 목돈을 돌려받는 것으로 공제금이 법에 의해 압류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자영업자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유용한 제도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시작된 이 공제에 가입된 숫자는 아직까지 15만 여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가 720만 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노란우산공제가 자영업자의 도산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인데 가입률이 너무 낮은 것이 문제”라며 “공제 혜택을 보기 위한 요건을 완화하고 연간 300만원으로 제한돼 있는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통해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빚을 권하는 것을 넘어 떠안기는 사회를 내버려두고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만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폭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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