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내 가게 사장님’
급증하는 ‘내 가게 사장님’
  • 이희수 기자
  • 승인 2012.08.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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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가에 동종 업체만 6곳, 과열경쟁 양상
[이슈메이커=이희수 기자]

[Self-employed Ⅰ] 위기의 자영업

 

최근 자영업자 숫자가 700만 명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 대다수가 사업 수익이 적은 도소매업이나 음식업 등을 일컫는 레드오션 시장에 주로 포진되어 시장의 약화를 불러올 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소득이 열악한 영세 자영업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레드오션 시장은 저부가가치 분야에 포진되어 있기에 고용의 질은 나빠지고 있다. 분석가들은 자영업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한다. 자영업자 급증세 현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계가 걸린 자영업 종사자 급증해

○○사의 김영수(가명, 52) 과장은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은퇴 후에도 계속 경제  생활을 해야 하는데 퇴직금을 투자할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호프집을 차릴까 고민하고 있지만 주변에도 퇴직을 앞두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들이 너무 많아 김 과장은 선뜻 결정을 못 내린 채 망설이고 있다. 최근 김 과장처럼 자영업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가 정보 업체 ‘점포라인’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24개 업종에 대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 올해 6월 들어 매물로 나온 점포수는 총 976개로 올 2월보다 15.3% 증가했다. 중소기업청의 ‘2010년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은 생계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다. 또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46.2%)은 사업 구상에서 문을 여는 데까지 6개월(46.2%)이 채 안 걸렸다. 퇴직금 등을 끌어 모아 만든 창업자금은 1억 원 미만이 98.65%로 대부분이었다. 특히 자영업자의 절반가량(45.4%)은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10명 중 8명(76.6%)이 연간 매출이 1억 원이 되지 않았으며 10곳 중 6곳(58.3%)은 월 매출이 400만 원에 못 미쳤다. 또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57.6%)이 적자 또는 수입이 없거나 매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급증의 원인을 지난해 불거진 유럽 발 재정위기 등에 따른 경기침체의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즉,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자영업자 수가 급증했던 과거 사례로 볼 때 최근의 유럽에서 불거진 재정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는 요지이다. 국제적인 재정위기 여파에 기업 경영환경이 나빠지며 은퇴 연령 또한 낮아져 40대~50대 은퇴자들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50대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전체 자영업자 중 30%를 넘어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영업 대거 진출이 지속적으로 예고된다. 조기퇴직을 선택하는 40대나 은퇴 시기가 본격화된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재취업 자리를 찾지 못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자영업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가장 크다. 곧 퇴직을 앞두고 있는 이상길(가명, 54) 씨는 이제 와서 다시 취업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뭔가를 새롭게 배우기엔 늦은 것 같아 농기계 장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씨는 농기계 장사 쪽이 이문이 남는다는 말에 퇴직금으로 나올 돈과 대출로 장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이미 퇴직한 마당에 다시 재취업할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자격증 같은 것을 배울 엄두도 안 났다”라며 “아무래도 그 점이 요즘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자영업 쪽에 몰리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천 소상공인진흥원 강원지역본부장은 “자영업자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고용시장의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주와 자영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각각 8년 4개월과 13년 5개월로 임금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과 비교할 때 상당히 안정적인 일자리라 할 수 있으나 진정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700만 시대, 서비스업에 몰려
전주시 완산구 아파트 단지 내 상가 1층에 있는 한 호프집은 한참 붐빌 금요일 저녁을 맞는 가게 같지 않게 문만 열려있었다. 사장인 강용호(가명, 54) 씨는 TV만 주시하고 있었다. 한참 사람이 몰릴 금요일 저녁인데 장사 준비 안 하느냐고 묻자 그는 “몇 명 안 올 것 안 봐도 훤한데 어차피 준비할 필요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 강 씨가 호프집을 차릴 때만 해도 장사는 잘 됐지만 올해 초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단지 내에 비슷한 종류의 술집이 생겨나고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강 씨는 “임대료와 주방 아줌마 급여를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며 “장사도 잘 안 되고, 더군다나 주변에 비슷한 업종 가게만 여러 개라 하루하루 죽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ㅅ○○○○’  주인 한길수(가명, 50) 씨는 “큰 기술과 자본 없이도 시작할 수 있어 치킨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치킨집 주인 대부분은 당초 치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씨는 미싱공장을 운영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장년의 나이에 재취업한다는 보장도 없고 쉽게 창업할 수 있어 막연히 치킨을 선택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2년 동안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운영한 최영호(가명, 49) 씨는 최근 빚잔치를 겪어야 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다 퇴직금으로 받은 1억여 원은 날아갔고, 오히려 2억여 원의 빚더미만 떠안게 된 것이다. 그는 프랜차이즈사의 컨설팅을 듣고 20평 남짓한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설명에 무턱대고 가진 돈 전부를 쏟은 게 화근이었다. 최 씨는 본사의 요구에 해마다 인테리어도 바꿔야 했고 비용은 그의 몫이었다. 또, 본사에 내야하는 수수료도 그에 못지않게 들어갔다. 여름철엔 그나마 100만 원 정도 벌었지만 겨울에는 나날이 적자를 기록했다. 그는 한 거리에 카페만 6곳이지만 주변에 또 커피전문점이 들어서는 걸 보면 참 어처구니없다고 덧붙였다.
강 씨와 한 씨, 최 씨의 고민이 말해 주듯이, 이미 동종업계 종사자가 포화인 상태에서 올해 1월~5월에만 신규 자영업자가 매월 5만 명씩 증가했다. 현재 2012년 5월 말 기준으로 숙박 및 음식업 등의 서비스업에서 자영업자 비중은 30.9%에 달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자영업자의 생활 만족도는 2002년 이후 하락해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만족도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종업원이 없거나 가족과 함께 일하는 자영업자의 임금과 소득 만족도는 전체 5점을 만점으로 2007년 2.44점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해 2.55점으로 더 높았다. 이는 근로시간 및 불투명한 전망과도 연관돼 있다. 자영업주 가운데 42.1%가 사업체 상황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다”, “고전하는 편이다”, “매우 고전하고 있다”는 부정적 응답을 했다. 특히 월평균 소득이 150만 원 미만인 자영업주(64.8%)와 연간 매출액 4800만 원 미만인 경우(51.8%) 이런 응답이 더 많았다. 또, 자영업자의 고령화 추세도 눈에 띈다. 외환위기 전인 1995년에는 전체 자영업자 419만 명 가운데 50대 이상의 비중이 22.9%, 96만 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7년에는 자영업자 498만 명 가운데 38.1%, 190만 여 명이 50대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총 취업자의 30%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의 상당수 역시 생계형자영업자고, 전직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에 덧붙여 “이런 구조를 가진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중에서 가장 어려운 난제이다”고 날선 비판을 덧붙였다.

 

오리무중 속의 자영업자, 이대로 괜찮나?
이슈메이커에서 7월 17일 자영업에 종사한 시민 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에 참여한 시민 67.5%는 자영업의 실패 원인으로 준비 부족을 꼽았다. 그 중 응답에 참여한 조동화(가명, 50) 씨는 “같이 창업교육에 참여한 동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쫓겨 창업 교육을 듣고, 창업하려는 분야의 관계자들로부터 몇 번 얘기를 듣고는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고 생각하고 뛰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퇴직금 2억 원을 갖고 의류 전문 업체를 차렸지만 결국 빚만 늘고 있다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한남대 박현채 객원교수는 “영세자영업자들은 자영업 포화상태로 인한 경쟁 격화, 대기업 계열사와 프랜차이즈 및 기업형 슈퍼(SSM) 등의 골목상권 공략, 높은 경기 민감도, 카드사용으로 인한 매출 투명화, 치솟는 재료비, 금리인상 추세 등으로 가계부실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통계를 보더라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갑절로 늘어났지만 종합소득세 납부자중 하위 20%에 속하는 자영업자의 소득은 오히려 35%나 줄었다고 덧붙였다. 전체적인 부가 늘어나는데도 저소득 자영업자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성장의 과실이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인력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어렵게 마련한 목돈을 쏟아 붓고 자영업의 꿈을 키우는데도 1년 이상 버티기 힘들다지만 향후 5년간 매년 20만 명 이상이 창업 시장에 가세할 전망이다. 대다수 자영업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실에서 그들은 후손들에게 가업승계를 원치 않는다고 토로한다. 중소기업중앙회충북본부의 ‘소상공인 경영상황’ 조사에서 71.6%가 자녀에게 사업을 승계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충북본부는 이들 스스로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는 사업을 물려주는 게 꺼려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최근 1년 간 적자 내지는 현상유지에 급급했다는 응답자만 89.3%나 됐다. 이중 86.8%는 앞으로도 상황이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미 포화상태인 자영업종에서 안정적 수익을 올릴 정도로 성공할 확률은 높게 봐도 10%대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박재환 중앙대 교수는 “자영업 종사자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4에 해당할 정도로 창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자영업자의 창업과 퇴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국가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상권의 같은 업종에 지나치게 많은 자영업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을 방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병오 창업학 박사는 “음식점·의류점·부동산 중개업·미용업 등 생활밀접 30개 업종은 각 업종마다 전국에 5,000개 이상의 점포가 집중돼 있다”며 “디자인, 컨설팅, 복지 관련 서비스업 등 고부가가치 업종에서 도전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증가 현상은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곧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쳐 경제 악순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을 거듭하는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들이 지속적으로 폐업할 경우 국가경제에 큰 영향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보다 큰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는 자영업자 급증이 불러올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획/안수정 기자 글/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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