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옭아맨 심리적 덫,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대방 옭아맨 심리적 덫, 가스라이팅(Gaslighting)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8.03.2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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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도윤 기자]

상대방 옭아맨 심리적 덫 

 

때에 따라 가해자나 피해자 될 수 있어

 

 

 

지난 11월 13일, 다산책방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다산북카페에서 페미니즘 단편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출간 기념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중 <현남 오빠에게>는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가 쓴 작품으로, 화자가 10년 간 사귄 남자친구 ‘현남’에게 쓴 편지글이다. 주인공은 글을 통해 자신이 당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덤덤히 고백한다. 국내에서 정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지만,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화제가 된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일까? 

 

What is 가스라이팅(Gaslighting)?
 

결혼한 지 올해로 10년 차인 김태희(가명·38) 씨. 과거, 그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사랑했다. 한창 직장생활을 할 때에 김태희 씨는 매끄러운 일처리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툭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면박을 주거나 ‘넌 나 없으면 안 된다’는 언행을 일삼았다. 최근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된 지인이 경험이 많은 그에게 일을 부탁하자 남편은 “거기는 인재가 그렇게 없어? 너처럼 일 못하는 애에게 맡기게”라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김태희 씨도 남편에게 따졌지만, 일관된 그의 태도에 점차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아졌다.
 

  김태희 씨와 같은 사례를 최근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 스스로 의심하도록 한 뒤에 이들의 흐려진 판단력을 이용해 내면세계에 파고들어 정신을 지배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스등 이펙트》에서 처음 언급됐고, 이 책의 저자인 로빈 스턴은 조지 큐커 감독 작품 <가스등>에 착안했다. 

 

국내에서는 정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어

사단법인 한국심리학회 관계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심리적 의미로 사용되는 현상이 있지만, 학계에서 통용하거나 이론을 정립해 구체적으로 연구한 개념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참고로, 현재까지 가스라이팅이라는 키워드로 분류된 심리학 논문은 전무하다”고 전했다. 이와 달리,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가스라이팅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 가스라이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실제 국내외에서 발생한 다수의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이 가스라이팅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들은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가스라이팅 학대수단에 대한 10가지 진실’을 쓴 쉐이 엠마 페트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가해자가 그들의 장점을 가스라이팅에 교묘히 악용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팅 가해자 중 다수가 남성이고, 피해자는 대개 여성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가스라이팅을 젠더문제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가스등 이펙트》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성별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등 다른 대인관계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계질서 속에서 기생되다

《가스라이팅 : 성별화된 세뇌(1)》를 저술한 페미니스트 조은채(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과정) 씨는 가해자가 가스라이팅을 행하는 이유로 “가해자는 보통 자신의 권위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거나 단순히 상대를 더 손쉽게 조종하고 싶어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전했다. 그는 《가스등 이펙트》를 인용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저지른 이유보다는 ‘저지를 수 있는’ 혹은 ‘저질러도 되는’ 원인에 주목하고 싶다. 가스라이팅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질서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위계질서 아래에서 자행되는 폭력이나 착취에 둔감한 사회적 분위기도 가스라이팅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현남 오빠에게> 속 현남은 주인공의 모든 대소사에 관여했다. 그 때문에 화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현남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벗어나기가 힘들었지만, 그보다도 ‘쟤는 당할만 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더 괴로웠다고 전한다. 모든 사람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위계질서와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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