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약 재분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다
피임약 재분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다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2.08.29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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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놓고 공방
[이슈메이커=남윤실 기자]

[Medicine Issue] 사후 피임약, 일반약 전환논란

 

병원 처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야간이나 휴일, 연휴에 구입이 불가능한 현재의 사후 피임약의 구매 접근성은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고, ‘응급성’이라는 약의 기본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후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이 하나의 방법으로 고려돼야 한다.

 

‘사후 피임약, 일반약 전환’ 논란 가열

한해에 30~40억의 판매고를 올리는 약이 있다.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으며 가격은 1만5천원~3만원 선이다. 성관계 후 72시간 내에 복용하면 임신을 막아주는 사후 피임약이다. 사전 피임약에 비해 호르몬 함량이 10배 이상 많아 구토·매스꺼움을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 이 약은 현재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구매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사후 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그냥 약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정부가 사후 피임약을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터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중고생 임신뿐만 아니라 주말 등의 이유로 처방전을 구하지 못해 사후 피임약을 구매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사후 피임약의 구매 편의를 높이면 원치 않는 임신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어 낙태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후 피임약, 일반약 전환’을 놓고, ‘다음 아고라' 토론 게시판에는 “사후 피임약의 구매 편의를 높이면 원치 않는 임신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어 우리나라 낙태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와 반면 “경구피임약은 혈관염, 뇌혈관질환이나 간기능 장애, 고혈압 증상이 있는 경우 복용을 금지해야 한다. 또 뇌졸중이나 우울증, 요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꼭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후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낙태 예방 수단이자 실천적 방안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여성의 건강 측면보다 윤리적·법적 측면에서 금기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과 형법상에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조차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100% 완벽한 피임 방법이 없는 현실에서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낙태는 더욱 음성적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낙태 비용에 위험 비용까지 전가되고 무면허 시술 등으로 인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청소년 등 취약계층의 경우 부담이 더욱 크다. 실효성 없고 사문화되어 있는 현행법과 낙태 규제 정책을 전환해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그러나 낙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각계의 시각이 서로 달라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 이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건강 측면에서 낙태 예방 수단이자 실천적 방안으로 사후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이하 경실련)은 사후 피임약을 일반약으로 풀어달라는 의견서를 통해 “피임 관련 정책 개발과 사후 피임약의 접근성 제고는 병행돼야 한다”며 “피임은 여성 스스로 선택과 책임을 가지는 주체로서 가져야 하는 권리로,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국의 사례를 들어 사후 피임약의 부작용은 경미한 수준에 불과함을 강조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2003년 미국 응급피임약에 대한 OTC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 0.75mg을 12시간 간격으로 두 번 복용하는 패키지를 665명이 패키지를 설명없이 받았고, 540명이 복용했다. 이중 단 1.3%가 부작용을 호소했다. 또 6.6%가 라벨이 지시한 대로 복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10명이 연구 중 임신이 됐다.

사후 피임약이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매가 가능하므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사후 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사후 피임약은 최대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24시간 이내 복용 시 95% 이상 임신을 막을 수 있어 가급적 12시간 이내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낙태수술이나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더 큰 위험이 발생하게 되므로 사후응급피임약은 소비자의 빠른 판단으로 복용을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대전 김모 약사(41·여)는 “평일에는 처방을 받기 용이하지만 주말에는 처방받기가 힘들어 결국 여성이 진정으로 원할 때 약을 처방받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사후 피임약을 구매하려는 2명 중 1명이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인데, 처방전이 필요해 사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경우,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땐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 논란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의사들 모임인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은 지난해 사후 피임약을 병원에서 직접 팔 수 있도록 하고 피임 상담 진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보내기도 했다.

 

사후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낙태로 가는 지름길

오·남용과 윤리적인 문제 등을 제기하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의료계 한편에서는 사후 피임약은 그야말로 응급상황에서만 써야 하는데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할 경우 이를 마치 피임약의 한 종류로 잘못 인식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박애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 위원은 “안전한 피임을 위해서는 사전에 정확한 피임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응급피임약을 정상적인 피임의 한 종류로 인식하는 사고를 심어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여성건강 차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후 피임약이 성관계 전에 복용하는 경구피임약에 비해 여성 호르몬 수치를 과도하게 조절해 몸에 무리를 주고 약에 대한 내성을 갖게 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재무이사는 “피임약의 본 용도를 생각했을 때 사후 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유지돼야 한다”며 “성관계를 시도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는 가운데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약의 오·남용만을 가져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범죄나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 음성적인 방법으로 응급피임약을 찾을 게 아니라 의료기관을 찾아 사후관리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일반약 전환을 주장하는 측은 응급피임약이 필요한 용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계에서는 성문란을 조장하고 생명존중 풍토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환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미래목회포럼 정성진 목사는 “사후 피임약은 초기 인간 생명을 죽이는 문제를 야기시키며 그것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신앙적으로도 당연히 거부해야 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응급피임약을 단순한 사후 일반피임약 정도로 알고 복용하지만, 습관적으로 복용할 경우 생리불순, 불임 등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약의 실패율도 5~45%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상 이 약은 낙태로 가는 지름길로써 ‘조기 낙태’ 또는 ‘화학적 낙태’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사후 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면 접근성이 좋아진다고 거론한 것에 대해 대한산부인과학회 저출산대책소위원회 이임순 위원장(순천향대학교병원)은 “사후 피임약 자유 판매는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불법적인 낙태를 고민하게 만들어 결국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 병원은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약국은 9시면 문을 닫지 않는가”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선진국 또한 사후 피임약 재분류에 대한 의견 분분

선진국들은 사후피임약을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게 풀어주는 추세다. 심야·주말·응급 상황을 고려해 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미국은 주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식품의약국(FDA)은 사후 피임약을 의사처방 없이 마트 등에서 팔되 18세 미만의 경우에는 처방전을 의무화한다는 기준을 정했다. 캐나다·벨기에·핀란드·프랑스·스웨덴·스페인·호주·영국 등 상당수 국가도 논란 끝에 사후 피임약을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했다. 캐나다는 2005년 사후 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팔 수 있도록 한 데 이어 2008년에는 마트 진열대에서 골라서 구입할 수 있는 약(OTC)으로 전환했다. 스웨덴도 마트에서 사후 피임약을 판다. 프랑스는 학교 양호실에서도 사후 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일본·독일·이탈리아 등에서는 사후 피임약을 구입하려면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 또 최근에는 온두라스 국회가 사후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들을 감옥에 보내는 법을 통과시키려고 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처럼 나라마다 정책이 다른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답 역시 결코 쉽지 않으며 각 사회의 문화와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사실 찬반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을 담고 있어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현실적인 필요성과 남용 가능성을 절충한다면 미국처럼 일정한 연령대를 정해 미성년에게는 처방전을 요구하고 성인은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사후 피임약은 일반약으로 재분류할 것이 아니라 응급약으로 24시간 운영되는 병원에서 직접 투약할 수 있도록 ‘의약분업 예외약품’으로 지정해 재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또 사단법인 대한주부클럽연합회 김천주 회장은 “우리나라는 피임교육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청소년의 성 개방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는 가운데 정작 '성'에 반드시 수반되는 책임인 피임에 대한 교육은 등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성교육은 피상적인 경우가 많으며,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친구에게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접하고 있다”며 “피임교육이 제대로 정립된 유럽 선진국에서도 사후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해 아직까지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 논란에 앞서 체계적인 피임 교육과 준비된 성관계에 대한 성숙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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