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한국인 입맛과 통했다
커피믹스 한국인 입맛과 통했다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2.08.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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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커피보다 커피믹스를 더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
[이슈메이커=남윤실 기자]

[Coffee] 한국, 커피믹스 종주국

 

커피믹스 소비 1조원대

대형마트에서 라면과 쌀을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최고의 효자 상품이 바로 ‘커피믹스’ 이다. 커피믹스는 2009년과 2010년 이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으로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지난 5월 롯데마트에서 가공식품 중 가장 많이 팔린 품목 역시 커피믹스였다. 한 달 판매액만 110억원. 봉지라면·맥주(각 70억원)의 1.5배 수준이다. 이제 우리 생활에서 커피믹스는 기호품이 아니라 생필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림커피, 에스프레소, 레떼아트 등 다양한 커피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커피믹스이다. 동서식품·남양유업·롯데칠성과 스타벅스까지 시장에 뛰어들어 고급화·다양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인 맞춤 환상의 배합률을 자랑하는 커피믹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커피믹스’가 우리나라 기업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커피믹스는 다방문화에서 소비층 확보

지난해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양탕국에서 커피믹스까지’ 전시를 기획한 김래영 학예연구사는 커피믹스가 인기를 끈 가장 주요한 요인은 다방문화의 성장이라고 설명했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책자에 의하면 ‘남대문역 다방’을 시작으로 다방 문화가 시작됐으며 다방이 문화와 예술의 집합장소로 꽃을 피운 건 1930년대부터이다. 모던 보이(Modern Boy)라 불리던 그 당시 신세대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미국에서 건너온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복혜숙이나 이상과 같은 영화배우나 시인 등의 예술가들이 다방을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 예술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 전쟁을 계기로 커피는 대중에게 더욱 확산되었다. 이후 등장한 음악다방은 젊은 지성인들을 연결해 주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각광받았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표현의 자유가 봉쇄됐던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음악다방은 탈출구이자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양희은과 조영남 그리고 송창식 등이 음악다방을 무대로 활동하며 당시 청년문화를 이끌었던 주인공들이었다. 이 무렵 지극히 한국적인 인스턴트커피에 계란 노른자위를 넣은 ‘모닝커피’가 아침식사 대용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외화유출을 이유로 다방에 커피 판매 금지령이 내려졌던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있다.

 

커피믹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발된 아이디어 상품

커피, 설탕, 크림의 합체인 커피믹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커피는 한국인들의 삶에 더욱 깊숙이 자리 잡게 이른다. 50년 전만 해도 커피는 일반 서민들은 접하기 어려운 상류층의 사치품 중 하나였다. 이런 커피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고 대중화된 계기는 1970년 인스턴트 커피가 출시되면서부터다. 동서식품은 첫 제품 출시 후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을 계속해왔고 1974년 국내 최초의 커피 크리머인 ‘프리마’를 개발해 ‘부드러운 커피’를 좋아하는 당시 한국인들의 기호에 어필했다. 세계 최초의 크리머는 61년 스위스 식품회사인 네슬레가 내놓은 ‘커피 메이트’다. 야자열매의 식물성 유지를 주원료로 만든, 커피 맛을 부드럽게 하는 재료다. 본래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에 납품할 분유를 만들었던 미국 회사 ‘카네이션’의 기술이었는데 네슬레가 사들여 제품화했다. 우유에서 얻었던 기존 크리머에 비해 쉽게 상하지 않고 물에도 잘 녹았다. 동서식품은 이 같은 기술을 재빨리 들여와 74년 크리머를 자체 개발했고, 2년 후 커피믹스라는 신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커피와 크리머, 설탕을 이상적인 비율로 배합한 커피믹스는 1976년 처음 나온 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지난해 기준 1조원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커피믹스가 아직까지는 인기 상품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래는 결코 만만치 않다. 물론 아직은 커피믹스 소비량이 훨씬 많다. 동서식품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커피믹스는 150억 잔 분량으로 전문점에서의 원두커피 소비량 11억 잔을 압도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커피믹스 한국인들의 특유 문화와 부합

커피믹스가 먼저 자리를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믹스가 ‘커피’로 불리고 원래의 ‘커피’에는 ‘원두커피’라는 이름이 붙게 된 특이한 경우이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믹스. 왜 많이 팔리는 것일까? ‘커피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프림 두 스푼’이라는 다방커피 공식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아무 거부감 없이 커피믹스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간편하고 실용적이기도 하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설탕조절이 가능하므로 자신의 취향대로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간편하고 빠른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장소에 구애 없이 어디에서건 뜨거운 물과 커피믹스 하마면 따뜻한 커피한잔을 즐길 수 있다. 심지어 길거리를 지나다가 커피자판기를 통해서도 동전 몇 개와 30초의 시간이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내가 원할 때 언제 어디서든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는 커피야말로 한국인에게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커피믹스는 1997년 외환위기는 커피믹스에 오히려 기회였다. 회사마다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커피 타는 부하 직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까지 조성되면서 직장에서 커피를 직접 타 마시게 된 것 역시 커피믹스 소비 증진에 일조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각 회사 안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2000년대 중반엔 각 음식점이 들여놓기 시작한 자동판매기 덕을 봤다. 크기가 작은 커피 자동판매기를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놓기 시작한 것. 한국인의 대표적 입가심 먹거리였던 숭늉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이 자판기에는 자판기용 대용량 커피믹스가 들어갔다. 이런 변화와 맞물려 커피믹스 판매가 늘어난 덕에 다른 회사들이 역성장을 하는 가운데서도 동서식품은 96~98년 연평균 10% 이상 성장을 했다. 무엇보다 커피믹스는 해외여행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커피믹스는 고추장, 김, 김치와 함께 고향의 맛처럼 이민 간 친척을 만나러 해외에 나갈 때 필수 선물로 꼽히기도 했다.

 

커피믹스 포장, 소비자의 입맛 고려

커피믹스의 종주국답게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종류를 선보이는 한편, 포장은 더욱 더 편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커피믹스는 처음엔 길쭉한 막대 형태가 아니었다. 요즘의 티백 같은 넓은 직사각형 포장에 담겨 나왔다. 76년 넓적한 사각형 포장에 담겨 나온 최초의 커피믹스엔 커피와 설탕·크리머가 봉지 안에서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막대형으로 바꾼 뒤엔 세 원료를 섞지 않고 원료가 층을 이루게 했다.

이 방법에 힘입어 막대 뒷부분을 잡으면 설탕량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한 제품이 96년에 나왔다. ‘부어서 타 마신다’는 단순히 1차적 성격 외에 설탕이나 프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구조를 용기에 적용했다. 이후 커피믹스의 진화는 가로로 뜯는 이른바 ‘이지컷’(Easy-cut) 방식으로 이어졌다. ‘이지컷’은 톱니 모양으로 생긴 포장지 끝을 위아래로 찢어내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낱개 포장을 가로로 쉽게 찢을 수 있도록 커팅 선을 내, 좌우로 살짝 잡아당기면 윗부분이 절개되는 형식이다.

 

커피믹스 뜨거운 진화는 계속된다

최근에는 커피믹스를 둘러싼 기업들의 경쟁도 커피전문점 간의 경쟁 이상으로 뜨겁다. 커피믹스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커피 프리머에 대한 건강 위해 논란이 가열되면서 남양유업에 이어 동서식품까지 무지방 우유를 첨가한 커피믹스제품을 내놨다. 무지방 우유 첨가 후발 주자인 동서식품은 아예 설탕까지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자일로스 슈거로 바꿔 커피믹스의 진화를 다시 이끌었다.

동서식품이 최근 출시한 ‘맥심 화이트골드’는 기존 커피믹스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한 제품으로 프리마 유해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남양유업의 ‘프렌치 카페믹스’에 대응하고 있다. 화이트골드는 ‘무지방 우유’와 ‘자일로스 슈거’를 사용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 ‘모카골드 마일드’에 들어가는 ‘백설탕’과 ‘천연카제인(우유)’은 넣지 않았다. 카제인은 남양유업이 ‘프렌차카페 카페믹스’를 광고하면서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고 해 인체 유해성 논란이 일었던 성분이다.

남양유업의 광고로 자사의 프리마 원료를 천연카제인으로 교체했던 동서식품은 이번에는 아예 프렌치 카페믹스와 같이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사용한 것이다.

커피믹스 시장의 변화바람은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카페믹스가 이끌었다. 2010년 말 출시된 프렌치 카페 커피믹스는 ‘우유를 첨가한 커피믹스’라는 차별성으로 출시 1년 만에 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리며 30여년 가까이 맥심과 한국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양분하던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 2위로 올라섰다. 프렌치카페믹스를 기점으로 커피믹스가 빠르게 진화하며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혀준 셈이다. 커피믹스의 진화는 어디까지 이뤄지고 한국인들의 커피믹스 사랑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또 원두커피와 커피믹스 간의 경쟁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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