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지하벙커, ‘세마벙커(SeMA Bunker)’로 재개관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 전시장으로 탈바꿈
서울시는 제 기능을 다해 폐기될만한 시설,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던 장소를 도시재생이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대로 두었다면 흉물일 수 있는 장소가 도시재생사업으로 시민들이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민 공간으로 부활한다. 2005년 버스 환승센터 공사 중 발견된 여의도 지하벙커는 지난 10월 19일 ‘세마벙커’라는 전시장으로 개관하며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여의도 지하벙커가 일반인에 재공개됐다. 2015년 처음 서울시가 일반인에게 공개한 지하벙커는 이번에는 문화공간의 성격을 갖춘 ‘세마벙커(SeMa Bunker, Seoul Museum of Art Bunker)’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평일 세마벙커로 내려가는 입장객들은 인근 직장인들이어서 세마벙커의 출입구는 마치 지하철 입구를 연상시킨다. 여의도 지하벙커는 과거 박정희 정부 때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하벙커를 새롭게 단장한 세마벙커는 대통령 경호시설이라기보다 문화예술 공간처럼 느껴진다. 세마벙커 입구를 지나 들어서 처음 만나는 공간은 넓게 탁 트인 예술 전시장이다. 이 공간에는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제 공간에 자리 잡고 있어 관객들의 이목을 이끈다.
전시작품은 1970~80년대의 권위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을 활용한 성격이 강하다. 벙커뿐 아니라 여의도의 역사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기능했는지, 어떤 모습을 거쳐왔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세마벙커를 방문한 한 시민은 “지하벙커에서 과거 군사정권의 분위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대 분위기를 예술작품 속에 녹여낸 느낌입니다”라고 말했다.
150여 평의 넓은 전시장을 지나면, 20여 평의 역사갤러리에 이를 수 있다. 밝은 LED 조명이 설치된 전시장과 달리, 역사갤러리는 조금 더 음침하고 비밀스럽다. 이슈메이커가 방문할 당시, 역사갤러리에서는 ‘나, 박정희, 벙커’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전시돼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20년간 연기한 이창환 씨의 작품과 그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여의도 지하벙커의 역사와 발견 당시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다.
이슈메이커가 역사갤러리를 돌아보고 나올 즈음,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입장해 갤러리 가운데 놓인 소파에 앉아 상황극을 펼쳤다. 직장 상사로 보이는 50대 남성이 “임자, 요즘 학생들이 왜 이렇게 데모를 해대는 거야!”라고 말하자, 함께 온 40대 남성은 “각하! 요즘 학생들이 배가 불러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화답하며 서로 웃었다. 시대가 흘러 이른바 VIP만의 공간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