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반복되는 마녀사냥
‘아니면 말고’, 반복되는 마녀사냥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7.11.05 0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아니면 말고’, 반복되는 마녀사냥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비판적 시선 필요

 

 

 

 

‘서울 240번 버스’ 논란이 온라인상에서 뜨겁게 화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규정을 준수한 버스기사도, 아이를 잃을까 놀랐던 엄마도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네티즌들은 휩쓸리는 여론에 따라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였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마녀사냥’의 문제점이 다시금 지적되고 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글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일반인들이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전락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과 언론의 자정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위 글에 휘둘리는 인터넷 여론

지난 9월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240번 버스’가 실시간 검색어로 랭크되며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는 한 네티즌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240번 서울 시내버스에서 아이만 내리자 엄마가 문을 열어달라고 수차례 호소했는데도 버스기사가 이를 외면한 채 버스를 운행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촉발됐다. 곧바로 버스 기사에게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버스 기사를 해고하라’는 청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상황은 버스 내부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반전됐다. 서울시 조사 결과 버스 기사는 아이가 내린 정류장에서 16초간 정차했다가 출발했고 엄마가 뒤늦게 하차를 요구했을 때는 이미 3차로에 진입한 상태였음이 밝혀졌다. 서울시는 “기사가 사고 위험이 있어 다음 정류소에서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버스 기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당사자는 기존 글을 삭제하고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인터넷 여론은 순식간에 바뀌어 글을 올린 사람에 대한 비판이 폭주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인터넷 여론이 형성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이 올라오면 네티즌들이 다른 커뮤니티로 경쟁적으로 퍼 나르고, 이내 여론의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오면 ‘첫 댓글의 중요성’이 강조될 때가 많다”면서 “처음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의 의견에 일부만 동조하면 반대 의견은 금방 묵살된다”고 설명했다. 

 

언론의 속보경쟁이 문제 부추긴다는 목소리 커

이번 논란은 과거 ‘채선당 임산부 폭행사건’과 ‘된장 국물녀 사건’과 비교되기도 했다. 인터넷에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글이 올라오고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음식점 채선당에서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임신부의 허위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프랜차이즈는 치명적인 이미지 하락을 입었고, 식당 종업원은 온갖 인신공격을 받으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가게의 주인은 영업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같은 해 화상을 입은 아이의 부모는 “한 여성이 국물을 들고 서 있다가 자신의 아이와 충돌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고 달아났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가해자의 신상 파악에 나서는 등 맹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CCTV 확인결과 피해 어린이가 뛰어오다가 충돌한 장면과 부딪힌 여성이 주방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녹화돼 해당 글이 허위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걸러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실 관계를 검증하고 판단하기는커녕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배정근 교수는 “속보 경쟁에 치우친 언론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일단 보도하고 보면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범죄 예방 위한 법제화 필요성 제기

온라인 소통공간이 발전하면서 많은 시민들은 문제 제기의 창구로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글을 옮기고, 편향된 의견을 개진하면서 마녀사냥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240번 버스 사건의 경우는 문제의 글을 아이 어머니가 올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익명의 제보자가 올린 글의 사실 관계가 드러나자 아이 엄마가 되려 ‘맘충’이라며 누리꾼들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사회가 불안하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워져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며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리적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온라인상에 잘못된 글이 올라와 피해를 입는 사례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사이버 범죄는 2014년 11만 109건에서 지난해 15만 3,075건으로 39% 급증했다. 이 가운데 명예훼손과 같은 사이버 폭력은 지난해 1만 4,808건으로 2년 만에 6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SNS 괴담으로 경찰력이 낭비될 수 있다며 사이버 모욕죄 신설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경남대학교 경찰학과 김도우 교수는 “인터넷 신고로 고소 건수가 많아지면서 일선 경찰의 업무 피로도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며 “사이버 경찰의 법률적 경험치나 인프라가 부족하다보니 경찰 입장에서는 모욕죄나 사이버 명예훼손과 관련해 내부 지침이 있는게 낫다”고 지적했다.
 

  ‘침묵의 나선’ 이론을 창시한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은 ‘여론은 사회적인 피부’라는 말을 했다. 여론의 동향을 언제나 주시해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 전체의 의중인지 실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가지는 노력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