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친일파 청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 김동영 기자
  • 승인 2012.08.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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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움직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이슈메이커=김동영 기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친일파 청산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 청산을 모범적으로 했다. 레지스탕스 조직은 '거리의 정의'라는 비상 군법 회의 재판을 통해서 8000~1만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친일 청산이 실패했다. 그런 결과로 이 나라는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이 사회는 검증받아야 할 자들이 기득권층에 위치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검증하는 희한한 사회가 됐다.

 

 

‘반민특위’의 구성, 실패한 친일파 청산

광복 이후 미 군정청이 설립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1947년 7월 2일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민족반역자ㆍ부일협력자ㆍ전범ㆍ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식민지배에 적극 협조했던 행정관리, 군인, 고등계소속 경찰에 재직한 자로 구분해 친일파 처벌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 군정청은 친일 경찰ㆍ관료들을 대거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법안의 인준을 거부했다. 친일 경찰 및 관료들도 입법의원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고 특별법 제정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미 군정장관에게 전달하는 등 격렬한 반대투쟁을 벌였다. 결국 친일파 청산의 과제는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로 넘겨졌다. 건국헌법에 친일파 처벌법 제정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8월 5일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 기초위원회가 구성됐다. 친일파의 지지 속에 출범한 이승만 정권은 처음부터 친일청산 의지가 없었지만, 정부가 제출한 양곡매입법안이 부결될 것을 우려해 반민법에 서명하고 공포했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5일 중앙청에 사무실을 차린 뒤 일제에 협력한 군인 검찰 경찰 등을 시작으로 정ㆍ관계, 종교ㆍ문화계 등의 친일파 인사 688명을 검거했다. 반면, 이승만 정권과 친일 잔재세력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무산시키기 위해 집요한 방해공작을 벌였다. 친일파들은 1949년 3월 ‘국회 프락치사건’을 조작해 진보적인 소장파 국회의원 13명을 체포했으며, 같은 해 6월 3일에는 우익단체인 국민계몽대 주관으로 열린 집회에 참석했던 300~400명의 군중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몰려가 ‘반민특위 내 공산당을 숙청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후 반민특위 활동은 급속도로 위축돼 1949년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 결과 친일파 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반민특위의 활동은 실패했다. 이러한 사실은 친일세력이 그 후에도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길을 열어준 것은 물론이고, 한국민족주의의 좌절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간차원에서의 역사 바로 잡기 활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1994년부터 친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편찬 작업을 진행했다. 총 3권, 3,000여 쪽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은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일제식민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389명의 주요 친일행각과 광복 이후의 행적 등을 담아 2009년 11월 8일 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2001년 편찬 작업이 본격 시작된 이래 무려 8년 만에 이뤄진 결실이었다. 연구소는 편찬작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후원회원이 줄면서 위기를 겪었으나, 1999년 8월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편찬 지지교수 1만 인 서명운동을 시작해 4개월 만에 완료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회의 예산삭감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삭감된 예산은 2004년 이뤄진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운동으로 채워졌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저희가 이 연구소를 1991년에 만든 이유는 우리나라 민주인사들이 ‘수사기관에 가면 내가 독립군 때려잡은 사람이다’라고 경력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친일파 청산 안 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만들어 지게 됐습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 이외에도 ‘독립군의 후손’ 심정섭(65) 씨가 친일파의 행적과 일제 강점기 시대상을 드러내는 자료집을 국내 최초로 펴내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언론 등을 통해 친일파의 실태와 독립운동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해왔다. 심 씨는 “출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자료를 수집‧정리해 친일파의 만행을 알리고 암울했던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게 여생의 목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최근 음성에서는 친일파 농민문학가인 이무영 기념사업을 폐지하라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이무영기념사업폐지를위한음성군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차흥도 목사는 4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이무영 기념사업 행사가 설성공원에서 열리는 것은 음성의 수치”라며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음성군은 이무영 기념사업 폐지 여론이 일자 매년 지원해 오던 사업비를 올해부터 중단하고 설성공원 앞 도로 명칭도 ‘무영로’에서 ‘설성공원길’로 바꿨다. 경남 거제시에서도 올바른 근현대사 정립을 위한 노력들이 한창이다. 거제시는 항일독립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김백일 장군이 등재되면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동상철거 압력을 받고 있다. 창원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이일주)는 5월 10일 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에 있는 김백일 동상을 철거하지 말라는 판결로 그동안 잠잠했던 동상 철거운동에 불을 지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세워진 김백일 동상 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거제지역 시민단체들은 최근 동상철거를 하지 말라는 법원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동상 철거 재촉구에 나서고 있다. ‘거제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김백일동상 철거 범시민대책위’는 5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김백일 동상이 세워진 거제도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화해와 평화를 위한 후세의 교육장이다. 이곳에 간도특설대 출신 김백일 동상이 세워질 역사적 관련성이나 개연성은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 2의 반민특위, 진보된 역사교육의 초석을 만들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는 2005년 5월 31일부터 2009년 11월 30일까지 활동한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일제 강점기 하의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한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자를 선정해 조사하는 한편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사료를 편찬하는 일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2006년 12월 6일 이완용 등 제1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106명을 공개했고 이듬해 12월 6일에는 민영휘와 송병준 등 제2기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195명을 공개해 총 1,005명의 친일인사가 발표됐다. 이후 위원회는 2009년 11월 27일 친일인사 명단과 조사 결과를 4부 25권 2만 1,000여쪽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로 발간하고 11월 30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반민규명위 초대 위원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위원회 활동은 우리 역사의 가장 중요한 치부 중 하나인 친일반민족문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어요. 문화 민족이 자기 역사의 치부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라며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할 줄 모르면 그건 문화민족이 아니죠.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하자는 것이지 새삼스럽게 누구를 벌주기 위해서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2006년 7월 13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협력하고 한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 친일반민족행위로 모은 재산을 조사, 선정하여 국가에 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4년간 조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모두 168명이고 2359필지(1,113만 9,645㎡)에 달하는 토지를 국고로 환수했는데 이는 여의도 면적 1.3배에 해당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2010년 7월 활동을 종료함에 따라 소송 관련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법무부 국가송무과에 신설됐다. 현재는 법무부 국가송무과 친일재산송무팀(팀장 이혜은 검사)이 친일재산 환수에 앞장서고 있다. 이혜은 팀장은 “친일재산 국가귀속업무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관련 소송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 소송 수행에 역사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역사자료 수집, 분석에 있어서도 누구보다도 전문성을 갖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자손들이 긍지를 가지는 사회 만들어야”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로 이주해 항일운동을 펼치던 독립운동가 집안 후손 김시진(75) 씨는 고국에 돌아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돌보고 있다. 2001년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한 김 씨처럼 중국에 살다 국적을 회복한 중국동포들 뿌리는 일본강점기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 유민과 독립운동가들이 상당수다. 그는 “나라를 위해 목숨과 전 재산을 바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귀화해도 모두 어렵게 살고 있다. 막상 한국에 온 뒤 생활고 때문에 부인과 함께 죽을 생각도 했다”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윤원일 운영위원장은 “친일파 청산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가슴 펴고 사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자동 상임대표는 “독립 운동가 자손들은 선열들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이 시대에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정치, 사회, 교육, 좌우 이념의 문제들 상당 부분이 100여 년 전 이미 벌어졌던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실수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친일파들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고 집권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성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또 다른 비극을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고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1974년 엠네스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된 일본 리츠메이칸대 서승 교수는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동포를 유린하고 기득권을 차지했던 친일파가 여전히 사회의 주류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역사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제대로 청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일파’라는 단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의 일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며,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역사인 ‘친일파’ 문구를 삭제하려다 거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아픈 과오를 씻고 지금이라도 건강한 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 이러한 노력들이 밝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해본다.

기획/임성희 기자 글/김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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