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지팡이가 부러졌다
민중의 지팡이가 부러졌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8.08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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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달라’ 외침에 ‘무덤덤’했던 경찰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Social Focus]수원 살인사건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 사건의 충격이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건 자체가 보여주는 잔인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만, 피해자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초동수사 단계부터 너무 안이한 대처를 해왔다는 사실이 온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납치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 A(28) 씨는 112에 전화해 비교적 정확히 자신의 위치를 밝히고 필사적으로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112 신고센터는 끔찍한 비명이 이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부부싸움인가…” 하는 기막힌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경찰이 사건의 전말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시신 280조각으로 돌아온 A 씨
지난 4월 1일 오후 10시 40분께 경기 수원의 112신고센터에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모르는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A 씨의 전화였다. 사건 당일 A 씨는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조선족 오원춘(42)씨와 몸이 부딪쳤다는 이유로 오 씨의 집에 끌려갔다. 집으로 들어간 오 씨는 A 씨에게 성폭행을 시도했고,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A 씨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고를 접수한 수원중부경찰서는 순찰차와 경찰관을 투입해 휴대전화가 발신된 기지국 반경 300~500m에서 불이 켜진 상가와 숙박업소 등을 중심으로 새벽까지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현장을 찾지는 못했다. 사건 발생 10시간 뒤인 4월 2일 오전 9시 20분 쯤 인근을 탐문하던 경찰이 한 상인으로부터 “부부 싸움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 범위를 좁혔고, 바로 옆 건물 1층 다세대 주택에서 오 씨를 붙잡았다. 하지만 A 씨는 오 씨로부터 처참히 살해된 이후였다.
‘수원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이번 사건은 연일 사건의 잔혹성이 보도되면서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오 씨가 집안에 있던 둔기로 저항하는 A 씨의 머리를 내리치고 목을 졸라 살해한데 그치지 않고 그 시신을 토막 내 여행가방과 비닐봉지에 나눠 담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특히 언론 보도를 통해 ‘시신을 280여점으로 난도질했다’, ‘가축을 도축하듯 뼈와 살을 발라냈다’ 등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참혹한 현장 상황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을 할 말을 잃은 모양새다.

 

“에이 끊어버리자” 피해자 신고전화 끊은 경찰
잔인한 살인 사건에 대한 세간의 분노는 피해자 A 씨가 직접 신고까지 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으로 옮겨 붙었다. 신고 당시 A씨의 목소리가 생생히 녹음된 전화통화 기록은 모두 7분 36초. 전화를 건 직후 1분 20초 동안 A 씨는 수차례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며 성폭행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성폭행 당하신다고요?”, “누가 그러는 거예요?”, “주소를 알려 주세요”라는 공허한 말만 반복했다. 이후 범인인 오 씨가 들어오자 휴대전화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피해자의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등 비명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됐다. A 씨는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와 ‘못골 놀이터 전’, ‘집안’ 등 핵심적인 단서를 경찰에 알렸지만 이 직원은 범죄신고 접수 처리표에 ‘집안’이라는 내용을 입력하지 않았다. 당시 112신고센터 4팀장은 이 직원의 보고내용을 고치지 않고 A 씨의 비명소리가 ‘공청 시스템’을 통해 들리는 와중에도 방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다른 112 신고센터 요원이 신고자의 휴대폰 기지국 확인을 통해 확인한 위치를 다시 보고했지만 내용을 고치지 않았다. 결국 보고대로 출동한 경찰들은 도로나 빈집과 학교 운동장만 돌았을 뿐, A 씨가 신고한 지동초등학교 인근 주택가는 제대로 수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A 씨가 112신고센터에 신고한 음성파일에 “에이 끊어버리자”라는 직원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전화를 끊은 사람도 범인 오원춘(42·중국교포)이 아닌 신고센터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감찰팀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결국 112 신고센터 요원의 거듭된 질문과 상황판단 미숙으로 A 씨는 발만 동동 구르다 화를 당했다. 이 112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경력 수개월에 불과한 신참 경찰관인 것으로 4월 9일 확인됐다. 이에 성남소재 경찰서 112 운영실장 B 경감은 “상황접수는 주변 지리를 세세히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해당 서에서 50대 이상 10년차 이상 사람들이 배치돼 있다”며 “경력이 1년이 채 안됐다는 얘기를 듣고 발령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사건당일 녹취록을 들은 A 씨 유가족들은 허탈한 심경을 드러냈다. 피해자 A 씨 유가족은 “위급하고 안타까운 상황인데 IT강국에서 어디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나”며 “112신고센터에서 우리 아이를 죽였고, 그것은 온 국민도 알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이모부도 “딸들이 ‘이런 경우에 112와 119 중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며 112신고센터의 무성의함을 지적했다.

 

112 신고센터 ‘시스템 부재’ 근본 원인
대표적인 긴급전화인 112는 긴급전화라는 명성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평균 도착시간 기준으로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2010년 이전까지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5분 안에 도착한 비율은 2007년 90.9%에서 2009년 87.5%로 감소한 실정이다. 평균 도착시간만을 산출한 2010년부터도 지역별로 평균 도착시간 편차가 극심했다. 2010년 기준 부산지방경찰청 112 신고 평균 현장도착시간은 2분55초에 불과했던 반면 충북지방경찰청은 112 신고자가 경찰을 만날 때까지 무려 7분19초를 기다려야 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112 신고센터 근무자들의 경력과 숙련도가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하는 1차적인 관문을 담당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고 지적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의 관계자는 “112 신고센터에 근무하는 이들은 의무 복무 차원에서 기동대 대신 112 신고센터를 택하는 경우”라며 “112 신고센터에서 장기 근무하는 직원은 거의 없고 1년간 단기근무를 하는 경찰이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어차피 1년 후 떠날 생각으로 일하기 때문에 책임감이나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인센티브나 승진 등에 도움이 못 되 소속 직원들의 의욕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이상원 교수도 “112 요원들이 전문성을 배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미숙련 요원들이 배치돼 있기 때문에 핵심적인 질문과 대응들이 빠지고 이번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범죄심리학자인 경찰대학 표창원 교수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번 일이 경찰 내부 문화와 미비한 시스템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수원사건 녹취록에서 “112 신고센터에 배치된 지 채 2개월이 되지 않은 경찰관이 전화를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미숙한 대응이 단지 경험이 적은 직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근본적인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에 있는데 이번 사건의 경찰 대응은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이 112센터와 연락하며 빈틈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색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구축되거나 훈련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모두 달라 매뉴얼이나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신고를 받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판단력으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보다 우수한 인력이 배치돼야 하고 지금 생활안전 부서에 있는 112 신고센터를 수사, 형사 부서로 이전시키는 게 소통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기술적인 부분과 관련, 신고자 본인 동의가 없더라도 GPS를 이용한 정확한 위치 추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GPS 등의 장비를 통해 사건현장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현재 119의 경우엔 GPS 추적이 가능하지만 112는 아직 이 같은 시스템이 구비돼 있지 않다. 현재 경찰에서 112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개발해 바로 GPS 추적이 가능하게끔 하고 있지만 대상이 19세 미만으로 한정돼 보급에 어려움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경찰…때늦은 112 개편
사건이후, 경찰은 긴급사건 초동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112신고 대응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4월 16일 112신고 대응체계로 지방청 및 도내 일선 경찰서 112센터와 상황실을 통합하고 상황전담 경정·경감급을 포함한 우수 인력 137명을 선발, 도내를 4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 전담체계를 구축하고 신고 접수와 지령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고 밝혔다. 우선 112신고센터와 상황실의 통합 및 인적 쇄신으로 현재 이원화돼 있는 112신고센터와 상황실을 통합하고 경정·경감급 상황전담요원을 24시간 배치해 상황 관리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했다. 또 지방청과 경찰서 지령요원의 계급, 경찰경력, 일선 지구대 및 수사부서 근무경력 등을 정밀 분석, 부적격자로 판단된 52명을 교체하는 등 우수 인력 총 137명을 선발 배치했다. 이와 함께 112센터 근무자의 책임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심사승진을 계급별 2~3명씩 배정하고 중요 사건 해결 시 특진기회를 늘리는 등 인사상 인센티브와 확대 승진을 앞둔 우수한 자원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돼 책임의식을 갖고 열심히 근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했다. 더불어 생명 및 신체에 대한 위험이 예상되는 ‘코드1’ 긴급사건 발생 시에는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 순찰차뿐 아니라 형사기동대, 교통경찰, 112타격대 등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신고 내용 외부 공청 기능 확대와 서장·형사과장·팀장 등 지휘관에게 신고 접수 즉시 자동으로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초동 대응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112신고 대응시스템 개편이후 경기경찰청은 16일부터 18일까지 3일 동안 3인조 특수강간범, 지하철 성추행범, 주거침입 성폭행 미수범 등을 현장에서 검거한 사례를 모아 4월 19일 ‘신속한 신고내용 무전전파 및 현장 총력대응으로 강력범 검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경찰을 향해 ‘누워서 침 뱉기’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페이스북 아이디 ssu1***은 “경찰이 땅에 떨어진 이미지를 되살리려고 홍보에 애쓰고 있지만, 수원 살인사건으로 경찰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전하다”며 “수원 살인사건 유족들이 이 사실을 접하면 얼마나 원통할까? 실추된 경찰이미지를 회복하려고 홍보하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서 아이디 wests***은 “일단 엄청나게 큰일이 터져야 움직이는 경찰이 이번에는 얼마나 갈지 의심스럽다. 단시간 쇼가 아니길...”이라며 경찰을 비난했고, 아이디 dldud***도 “이게 당연한 건데 이런 걸 꼬집어 칭찬해야 하다니... 씁쓸하다”라고 밝혔다.
수원 살인사건 발생 이후,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찰의 안일한 대처와 은폐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경찰청장의 사임은 늘 반복되어오던 여론 잠재우기 용도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경찰’이 되려면 잠시 시선을 끄는 쇼가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힘을 쏟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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