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회자되는 ‘상처입은 용’의 신념
다시금 회자되는 ‘상처입은 용’의 신념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7.09.06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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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다시금 회자되는 ‘상처입은 용’의 신념

 

탄생 100주년 맞아 삶과 음악 재조명 움직임

 

▲ⓒPixabay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 베를린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7월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가토우 공원묘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남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고 꽃다발 리본을 헌화했다. 묘소의 주인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하지만 간첩으로 몰려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고(故) 윤이상 선생이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올해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 음악계에서는 윤이상을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1995년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1917년 경남 통영 출신의 윤이상은 14살부터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음악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작곡과 음악이론, 첼로를 배우게 된다. 1941년 귀국 후에는 항일운동에 참여하며 갖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1957년 서독으로 건너가 ‘베를린 음악대학(Berlin Hochschule)’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이후 유럽 각지에서 활동하다가 1964년 독일 포드기금회의 요청으로 베를린에 정착한다. 1972년 뮌헨 올림픽 개막 축하행사로 무대에 올린 오페라 ‘심청’이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1970년 킬 문화상과 1987년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대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조은아 교수는 “한국이란 나라를 서양음악 일변도의 세계 음악 지도에 당당히 올려놓은 중요하고도 자랑스러운 작곡가이다”라고 그를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그의 이름이 너무나 생소하기만 하다.

 

동백림 사건 연루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다

윤이상은 대한민국이 버린 작곡가였다. ‘상처 입은 용’이라는 수식에서 보듯, 삶은 굴곡으로 점철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로 살았다. 그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 사건은 1967년 발표된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이다. 윤이상은 1963년 북한에 있는 자신의 옛 친구 최상한을 만나기 위해, 또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보고자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를 빌미로 그가 간첩활동을 했다고 연루시켜 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나라 안팎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정부를 비롯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세계적인 작곡가와 지휘자 외에도 200여 명이 윤이상 석방 운동에 참여했다. 결국 서방 국가들의 압박으로 윤이상은 1969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하지만 1971년 독일 국적을 취득한 뒤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윤이상의 딸 윤정씨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걸릴지라도 아버지를 꼭 다시 고향 땅에 모시고 싶다”며 애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계인’ 윤이상의 음악, 다시 경계 없이 흐른다

그는 남한과 북한, 그리고 독일에도 온전히 흡수된 적이 없는 ‘경계인’이었다. 그럼에도 윤이상은 분열된 조국의 화합과 독재의 청산과 같이 자신이 갈망한 이상향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1980년 5·18 광주항쟁의 참극을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로 표현했고,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개최하며 남북이 음악을 통해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국내에서 윤이상의 유산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적극적으로 향유되기 시작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공연계에서는 그를 기리는 무대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윤이상의 생애를 다룬 연극과 ‘금지곡’으로 인식됐던 유작곡이 실연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고향 경남 통영에 위치한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하반기 내내 윤이상의 곡이 울려 퍼질 예정이다.
 

  이처럼 윤이상의 음악이 재조명되는 분위기지만, 정치적 잣대는 여전히 그를 향하고 있다.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장은 “한국의 음악가 가운데 최초로 국제적 명성을 지닌 윤이상 선생은 보는 시각이나 정권에 따라 부침이 심한 분”이라 말했다. 실제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된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는 정부 예산 지원이 중지되어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윤이상 평화재단’이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탓이다. 
 

  이처럼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선 그이지만, 윤이상을 추모하는 물결은 최근 다시 크게 일렁이고 있다. 김정숙 여사는 그의 묘소를 참배한 자리에서 기념관 건립에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변화의 흐름 가운데서 윤이상의 음악이 상처 입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들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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