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엄홍길 휴먼재단 엄홍길 이사
[단독]엄홍길 휴먼재단 엄홍길 이사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2.07.30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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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좌 등정의 기록, 16개 휴먼스쿨 설립으로 이어갈 터”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엄홍길 휴먼재단 엄홍길 이사

“16좌 등정의 기록, 16개 휴먼스쿨 설립으로 이어갈 터”

▲엄홍길 휴먼재단 엄홍길 이사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는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시릴 정도로 만년설이 웅장하게 자리 잡은 고봉이다.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 설산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민 한국인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부족한 산소와 추위 속에서 ‘도전’이라는 고귀한 발걸음을 걸어가는 대한민국의 작은 거인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신의 가호아래 16번째로 로체샤르 정상에 태극기를 펄럭인 세계 속의 한국인이다.

 

 

 

엄홍길 대장은 경남 고성의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산이 좋아 산을 오르기 시작한 그는 산에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가 없다고 표현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인연이 계기가 된 후 1985년 히말라야 등정을 시작으로 히말라야의 장엄한 환경과 싸우게 되었다. 평소 산을 ‘정복’이라는 표현 대신, 자연이 잠시 빌려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엄 대장은 산이 곧 자신의 스승이자 전부라고 단언한다. 이제는 산에서 잠시 내려와 히말라야의 신에게서 받은 축복을 휴먼재단을 통해 히말라야의 오지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는 그를 만났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요즘 국내 청소년들을 위해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주 5일 수업이 활성화 되면서 청소년들이 주말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졌지 않습니까? 이 시간을 청소년들이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청소년 등산교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등산을 하고 있습니다. 등산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인생선배이자, 옆집 아저씨처럼 이것저것 많은 대화를 나누며 좀 더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할까요?(웃음). 뿐만 아니라 휴먼재단을 통해 히말라야의 어린이들과도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엄홍길’ 하면 세계 최초 16좌 등정이란 타이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16좌를 생각하셨습니까?

“히말라야 등정을 시작했을 때가 1985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은 지금과 사뭇 달랐죠. 주위사람들의 걱정과 우려의 눈초리 속에 8,000미터 고지를 하나하나 올랐고, 이내 사람들의 걱정은 기대로 바뀌어 가더군요. 초창기 해외 원정을 한번 가면 돈이 억 단위로 들어갔기 때문에 16좌라는 건 꿈도 못 꿨습니다. 그러다가 스페인의 바스크 원정대와 함께 마칼루를 올라갈 기회가 있었어요. ‘도전’이라는 목표를 제게 심어준 스페인 친구들의 조언을 가슴속에 새기고, 경험을 더 쌓은 뒤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됐죠.”

 

 

 

세계의 수많은 산이 저마다 다른 모습이듯, 각각의 산을 올랐을 때 느낌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다를 텐데요.

“많은 산을 올랐다는 것은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16번째인 로체샤르를 등정한 것 보다 사고를 통해 대원을 잃은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안나푸르나를 등정할 때 4번의 실패 후에 5번째에 성공했고, 이곳에서 3명의 동료를 가슴에 묻었습니다. 사랑하는 동료를 좋아하는 산에서 잃었다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기억입니다. 한번은 도중에 떨어지는 셰르파를 잡겠다고 같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다행히 로프에 발목이 걸려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서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로프 하나에 의지해 산을 내려오면서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난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꼭 발목을 회복하고 다시 이산을 오르리라.’ 이렇게 수없이 다짐하면서 7,000미터 고지에서 4,500미터 까지 2박 3일을 내려왔습니다.”

 

 

 

등반하면서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대장님을 지탱해 줄 수 있었던 내면의 힘이 무엇인가요?

“산소가 희박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포기’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정신 차리고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마도 다시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싶다는 목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절 지탱해 준 것이겠죠. 고통을 견딘 힘이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극복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휴먼재단의 설립은 히말라야를 향한 대장님의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히말라야를 등정했을 때부터 마지막 로체샤르를 오를 때 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좌를 마치고 16좌를 준비하면서 이 산을 정말 내가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거예요. 너무 욕심내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뿐만 아니라 간절함이 저를 더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로체샤르를 오르는 내내 기도했죠. 히말라야의 신이 있다면 제 소원을 들어달라고 말입니다. 이 산을 제게 허락해 주시면 그 은혜는 제가 평생 갚아 나가겠다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신에게 제 간절함이 통한 것처럼 로체샤르의 정상에 섰을 때는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안전하게 산을 내려오고 난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휴먼재단을 설립했어요.”

 

 

 

16개의 학교를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첫 번째가 팡보체 지역인가요?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듯이 처음 지역을 고르는데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지라 하더라도 도시에 가까운 지역을 선택해서 재료의 운반과 조달을 쉽게 할 수 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생각나더군요. 히말라야 등정을 시작하고 난 후 첫 번째 희생된 동료가 먼저 생각났어요. 팡보체는 에베레스트를 2번째 등반할 때 셰르파였던 술딘 도루지가 살았던 곳입니다. 아직도 그의 부인과 노모가 살고 있는 곳이죠. 기회가 되면 술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저의 취지와 의미가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오지에 학교를 짓는다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좋은 의미로 시작을 했다 하더라도 저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벅찹니다. 제가 추진하는 사업의 의미를 알아봐준 기업들과 저를 후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첫 번째 학교를 지을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그 지역에서 학교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학교처럼 크고 좋은 시설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단에서 짓는 학교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시설을 갖추려고 노력중입니다. 물론 학교를 짓는 것과 동시에 의료봉사활동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오지라서 치료를 제대로 받는 사람들이 드물거든요. 현지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있는데 한국에서 수술 받고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어요.”

 

 

 

휴먼재단 활동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처음 팡보체 지역에 학교를 건설할 때 마을사람들조차 반신반의 했죠. 카메라 들고 사람들이 와서 학교를 짓는다고 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건 아닌지, 이미 보여주기식 선행에 불신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이라서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대도시에서 재료를 공수하고 야크와 경비행기를 통해서 재료를 운반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 주더군요. 이후 1년 만에 학교를 완성하게 됐고, 주민들은 모두 놀랐어요. ‘기적보다 더한 일이다. 참 대단하다’라는 반응을 보여준 것이 뿌듯하게 남아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던 부모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부모들도 있었죠. 순간 술딘이 생각나면서 함께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산에서 동료를 잃으면 산이 싫어질 법도 한데요.

“가장 안타까운 동료 중에 한명을 꼽으라면 故 박무택 대원을 꼽습니다. 박 대원은 저 때문에 8,000미터 히말라야 원정을 가게 됐고, 저와 인연이 되어 본격적으로 8,000미터를 함께 도전한 대원이거든요. 평소 말이 없고 무던한 성격이었지만 근면한 대원이었습니다. 박 대원을 잃고 상실감에 잠시 산이 싫어지려고 했지만 진정으로 그를 위한 길이 아니란 생각에 휴먼원정대를 조직해서 산에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들의 시신을 찾고 있습니다. 얼마 전 먼저 하늘로 떠난 故 박영석 대장이나 故 고미영씨도 같은 동료이자 가족 같은 산악인들인데 큰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먼저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대장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알피니즘이란 무엇인가요?

“오은선 대장의 경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본인이 등정을 했다고 주장을 하기 때문에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처음 하는 등정도 아니고 대기록을 앞둔 상황에서 증명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타인들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본인을 속이지 않고, 산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면서 당당하게 산에 오르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알피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의 말을 믿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지를 빌어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여건이나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항상 부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괴롭고 힘들면 지쳐서 빨리 포기하고 발전하기를 그만두기 일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힘든 과정 없이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죠. 그래서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다 지나가야할 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면 포기한 그 정도에서 계속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그 벽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길 권유합니다. ‘항상 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모든 일에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이종철 기자 정리/류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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