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mical Products Ⅱ]일상에 찾아든 공포, 케미포비아
[Chemical Products Ⅱ]일상에 찾아든 공포, 케미포비아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7.08.25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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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전국적으로 불붙은 화학물질에 대한 불신


독성물질이 버젓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었던 이유와 아웃시킬 방안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2011년 4월, 산모와 영·유아 120여명이 잇따라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무려 5년 만이다. 올해 1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조사가 이뤄지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은 서둘러 사과했다. 하지만 사망자 146명 가운데 103명이 사용한 제품의 제조사 옥시는 책임 은폐에 바빴다. 옥시는 뒤늦은 사과를 했지만 이미 대중은 등을 돌렸다. 오히려 대중은 옥시 뿐 아니라 같은 성분이 들어간 화학제품 불매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분노한 대중의 외침, ‘옥시 OUT’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5월 31일,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옥시·현 RB코리아)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업무상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신 전 대표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신 전 대표는 2000년 10월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해성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흡입독성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제품을 제조·판매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의 겉면에 ‘살균 99.9%-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던 점을 근거로 신 전 대표에게 특경법상 사기 혐의도 추가로 적용했다. 대중은 옥시 측에서 제품이 인체에 유해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판매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또한, 유행성을 알면서도 상대적으로 신체기능이 약한 영·유아에게 안심하다고 광고한 점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이 옥시에 분노한 이유는 이 뿐이 아니다.

 
올해 초,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어지자 옥시는 정보 조사 결과에 반박하는 77쪽 분량의 의견서를 냈다. 폐 손상의 원인이 ‘봄철 황사’라고 주장하는 내용과 자체적으로 실시한 실험 데이터가 옥시가 제출한 의견서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 중 옥시 측에서 실험 데이터들 중 일부를 폐기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폐기한 실험 데이터 중에는 임신한 쥐 15마리를 가습기살균제에 노출시키자 13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죽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이처럼 유해성을 알고도 이를 감추려고 한 사실에 대중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옥시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을 포함한 시민단체와 피해자 모임 등에서는 연일 옥시를 지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16일, 가습기살균피해자가족모임과 환경운동연합 등 60여 개 시민단체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옥시 한국 본사 앞에서 ‘옥시 불매 결의대회’를 개최한 내용을 취재한 결과 이날 집회에서 시민단체는 상품 판매 중단 촉구 항의 서한을 제출했지만, 옥시 측에서는 임원이 아닌 홍보팀 직원이 나와 서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화학제품에 번진 불신


옥시 제품 불매 운동의 타격이 화학기업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면서 방향제와 탈취제 등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방향제 및 탈취제 매출을 살펴본 결과 방향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7% 떨어졌고, 탈취제 역시 같은 기간 대비 15.9% 매출이 감소했다. 온라인쇼핑에서도 방향제 등 생활용품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오픈마켓 옥션이 같은 기간 생활용품 매출을 집계한 결과 방향제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7% 감소했고, 세정제 역시 21% 감소했다. 이는 화학제품에 대해 대중의 신뢰가 낮아진 탓이다.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은 5월 19일부터 24일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소비자 4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중 87%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을 못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표백제가 2.19점(1~5점 중 응답하는 것으로, 점수가 낮을수록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으로 소비자들이 사용을 가장 꺼리고 있었다. 방충제(2.26점), 탈취제(2.47점), 방향제(2.50점) 등에 대한 불신도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 중 69.2%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천연재료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려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인해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P&G에서 판매하고 있는 섬유탈취제인 페브리즈에서도 가습기 살균제와 유사 성분이 들어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인하대학교 의대의 임종한 교수는 최근 국내 한 라디오프로에 출연해 “페브리즈에도 가습기 살균제와 유사 계열인 벤즈아이소씨아졸리온(BIT)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BIT가 바로 살균제 성분인데 보존제로 사용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유사한 계열의 물질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관련 연구로는 이 성분에 노출되고 난 다음에 흡입독성으로 인해서 세포 자체의 손상 부분이 노출된 것과 비례해 그만큼 더 진행된다는 독성학적 보고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가 강조한 분야 중 하나는 미국은 P&G 성분을 공개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와 같은 정보를 알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한국P&G 관계자는 “P&G는 진출하는 국가들의 관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소비자 안전과 국제 안전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라며 “페브리즈는 1999년 한국에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큰 부작용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 제품 안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화학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자 정부는 생활화학제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 8,000곳의 제품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또한, 정부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기 위해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도 마련 중이다.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 15종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 8,000곳으로부터 제품에 살생물질(biocide)이 포함된 경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연말까지 위해성을 평가한다는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생활화학제품 15종은 페브리즈와 같은 탈취제, 스프레이형 방향제 등이 망라돼 있으며, 특히 이중 소독제ㆍ방충제ㆍ방부제 3종은 이미 정부가 지정한 살생물 제품으로, 소비자들이 민감해하는 품목으로 꼽힌다. 정부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라 업체들로부터 생물을 죽이거나 활동을 저해하는 기능을 하는 화학물질(살생물질)의 함량과, 위해성 평가 자료를 제출받을 예정이다. 업체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과태료(1,000만 원 이하)를 부과할 방침이다. 

 

 

 

 

연구자와 정책, 기업이 함께 나서야할 때


가습기 살인사건 이후 화학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곳곳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상의 공포로 다가온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 현상 때문이다. 사실 대다수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화학제품을 사용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샴푸로 머리를 감고, 바디워시로 샤워를 한 후 스킨과 에센스, 선크림, 향수 등을 몸에 바른다. 렌즈를 사용하는 사람은 렌즈세정액에 담가둔 소프트렌즈를 꺼내 눈에 넣기도 한다. 여기서 사용된 제품은 천연제품이 아닌 이상 모두 화학제품이다. 또한, 화장실에서는 벽면에 붙어진 방향제가 의도치 않게 화학제품을 뿌려대고 있고, 설거지하는 세제 역시 화학제품으로 만들어졌다. 다림질 보조제나 향초 등도 화학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대다수 사람은 24시간 화학제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냐는 여부다.

 
환경 독성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환경공학부 최진희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주로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PHMG)과 에톡시에틸 구아니딘(PGH)이 사용되고 있고, 클로로메칠 이소티아졸리논(CMIT)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 물질은 피부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적어 샴푸, 물티슈 등 여러 제품에 이용되지만 호흡기로 흡입될 때 발생하는 독성에 관해서는 연구가 되지 않아 피해자가 발생할 때까지 아무런 제재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일어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2007년 EU REACH(신화학물질관리정책)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화학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로, 한국도 2015년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이 발효돼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위해성 정보 제출이 의무화됐다”라고 말한 후 “이러한 환경규제 강화와 나노신소재 등 많은 신규화학물질의 빠른 개발 속도로 인해 과거 동물실험 위주의 독성평가 방법으로는 효율적인 안전성 평가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환경사고 예방과 연구개발에 기업체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환경 안전 분야는 공공분야여서 정책이 중요한 분야지만, 실제로 물질을 생산하는 것은 기업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기업체가 기술을 개발할 때 보통 효능성과 경제성을 고려하지만 이번 사건도 발생했고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해짐에 따라 안전성까지 고려해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부터 독성연구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결과가 발생해서 안타깝다”며 “연구와 정책, 산업체가 함께 나아가는 사회적 프레임이 만들어져야 진정한 친환경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낳게 했다. 최진희 교수의 말처럼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학물질 안전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한국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지난 년도부터 법률을 발효해 화학물질 위해성 정보 제출을 의무화했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다. 잘못을 저지른 기업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엄중히 처벌을 받고,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윤 목적 등으로 또 다른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화학제품이 엄격한 검사를 받은 후 이상이 없을 경우 시중에 등장해야하며, 기업과 연구자들은 양심적으로 제품 개발과 출시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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