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 초월한 인류애 실천
‘국가’와 ‘민족’ 초월한 인류애 실천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7.08.05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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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도윤 기자]

 

‘국가’와 ‘민족’ 초월한 인류애 실천​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활동한 조직으로 기억되다

최근, 극장가에 영화 ‘박열’이 개봉했다. 이에 독립운동가 박열이 가담한 흑도회와 흑우회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흑도회는 무정부주의들이 모인 흑우회와 공산주의자가 만든 북성회가 조직되기 전까지 『흑도(黑濤)』라는 간행물을 발행하는 등 일본인을 대상으로 조선의 실태를 알리는데 힘썼던 조선인 청년·노동자 단체다. 1920년대 유행한 이념을 통해 흑도회에 대해 알아봤다.

 


 

다양한 이념이 공존한 1920년대

1920년대는 국제적으로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념들이 혼재된 시대였다. 일본에서 유학중인 조선인 청년들은 당시 일본 내 유행하던 스펜서 하버드 교수의 사회진화론이 일본 제국주의를 합리화한 이론이라는 사실을 자각해 새로운 이념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3·1운동 이후 국내 노력만으론 조선 독립이 어렵단 사실을 깨달은 조선 민족주의자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국제로 눈을 돌린 이들이 맨 처음 수용한 사상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오늘날 무정부주의로 알려진 아나키즘은 당시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과 3대 독립운동 중 하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해 아나키즘을 택한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다. 조세현 부경대 교수는 “아나키즘의 핵심 가치는 ‘연대’로 권력층에 맞서는 민중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민중에 대한 애정에 기초해 사상을 실천하고, 교육자로 계몽에 앞장섰다”고 전했다. 이어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해 아나키즘이 과격한 사상으로 인식됐지만, 실제 그러한 경우는 일부였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점점 잊어진 아나키즘과 달리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그들만의 모임인 코민테른을 결성해 전 세계 약소국가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앞장서 전 세계에 빠르게 전파됐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활동한 흑도회는 공산주의가 유입되기 직전에 조직됐다.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이 함께 한 흑도회

흑도회는 동경유학생 및 노동자사회의 지도와 원조를 목적으로 결성된 동경조선고학교학생동우회(東京朝鮮苦學生同友會) 소속인 김약수, 박열, 정태성, 백무 등과 사상단체 신인연맹(新人聯盟)을 준비하던 원종린, 임택룡, 권희국, 김판권 등 20여 명이 1921년 11월 21일 결성했다. 흑도회의 취지는 조선에 암담한 현실을 제국주의에 빠지지 않은 선량한 일본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국가나 민족 간의 이해관계에 벗어난 세계 융합 실현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흑도회는 기관지 『흑도(黑濤)』를 발간하거나 1922년 7월 발생한 시나노가와수력발전소 조선 노동자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항의운동을 벌이는 등 일본 제국주의에 부조리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흑도회는 아나키즘과 공산주의 중 아나키즘 성향이 강했다. 당시 사회주의 상징색은 적색인 반면에 아나키즘 상징색은 흑색으로 흑도회라는 단체명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흑도회에서 출간한 기관지 흑도 창간호와 제2호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지 일본인들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부조리함 폭로 

그러나 흑도회는 결성 직후 아나키즘 오스기 사카에, 이와사 사쿠다로의 지도를 받은 박열 등과 사회공산주의자 사카이의 영향을 받은 원종린 등 사이에 노선 갈등을 겪었다. 결국, 흑도회 내에 1921년 12월 박열, 김중한 등이 주축이 된 흑우회(黑友會)가 결성됐고, 1923년 1월 김약수, 김종범, 안광천 등이 북성회(北星會)를 조직하면서 흑도회는 자연스레 해체됐다. 이후, 박열이 주축이 된 흑우회는 『민중운동』, 『현사회(現社會)』 등 잡지를 발간하는 언론·출판업에 주력하며 서울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 등 노동단체들과 연대활동을 펼쳤고, 북성회는 조선과 일본 프롤레타리아를 결합해 재일조선인노동자 단일조합을 창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흑도회는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 연대해 일제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고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들의 노력은 실제 흑도회에 일본인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 이와사 사쿠다로(岩佐作太郞) 등이 참여한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 역사적으로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흑도회원들은 국가와 국민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섰다. 특히,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기보다는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양국 사이에 부조리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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