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Citizen), 자유를 위해 펜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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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5.02.02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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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Cover Story]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시민(Citizen), 자유를 위해 펜을 들다

테러리즘의 공포에 맞서 하나 된 유럽

 

 

 

 


지난 1월 11일, 약 370만여명이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反 테러 집회에 모였다. 파리에서만 120만명이 집회에 참가했으며 세계 각국의 정상 40여명이 참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등 유럽 정상들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 등 이슬람권 정상들도 참가하며 무자비한 테러행위를 규탄했다. 이 추모행사는 프랑스 뿐 아니라 뉴욕, 베를린 등 전 세계 주요도시에서도 함께 개최됐다. 

  

사이드 쿠아치(Said Kouachi, 34)와 셰리프 쿠아치(Cherif Kouachi, 32) 형제는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편집회의 현장에 중무장하고 침입했다. 쿠아치 형제는 자동소총으로 이 주간지에 만평을 게재하던 다섯 명의 만평가(캬뷔, 티뉴스, 오노레, 볼란스키, 샤르브), 기자, 교정기자, 보호 경찰 등 8명을 조준 사격으로 살해했다. 건물 경비원, 출동한 경찰 등 5명도 같은 날 살해되었다. 샤를리 엡도 살해 현장에서 테러범들은 외쳤다. “알라는 위대하다”

  

계획적인 테러로 충격에 빠진 시민들


끔찍한 테러 사건 발생 직후, 파리 시내에는 최고 테러 경보가 발령되었다. 프랑스군 국가 헌병대 소속 병사들은 중무장한 채로 돌아다니며 경계 태세를 강화했고, 1월 8일 당시 파리와 파리 북부지역은 준전시 상황에 가까운 4등급 테러경보가 발령되었다.

 
사건의 주범 쿠아치 형제와 쿨리발리는 각각 파리 근교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테러진압 부대와 대치하다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쿨리발리가 20여 명의 인질을 붙들고 인질극을 벌였던 곳은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에 따라 준비한 식재료를 파는 코셔 전문 슈퍼였다. 인질극을 시작할 때 살해당한 네 사람이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테러를 함께 모의한 것으로 보이는 쿨리발리의 부인 하야트 부메디엔(Hayat Boumeddiene, 26)은 이미 1월 초에 시리아 IS 진영으로 피신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의 공범 중 실행범 셋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공모범 부멘디엔만 생존해 도주한 상태로 밝혀졌다.

 
테러를 실행한 세 청년은 각각 알제리와 말리에서 프랑스로 이민한 이민자 가정 출신이며 이슬람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 국적자였다. 이들은 파리 북부에서 2000년대 초에 지하드 조직을 결성했으며, 쿠아치 형제 중 동생 셰리프는 2008년 알 카에다에 지원하는 프랑스인을 도운 혐의로 징역 18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형 사이드는 2011년경 알 카에다의 재정 지원으로 예멘에서 몇 달간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여러 차례 절도와 폭력 등의 범죄혐의로 수감되었던 쿨리발리는 수감 기간에 지하디스트 세력과 접촉하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변모했다. 쿠리발리는 인질극 도중 한 언론에 스스로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 조직원이라고 밝혔다.

 
이들 셋은 ‘마호메트’ 캐리커처 게재 및 풍자 등이 이슬람 종단과 신도들에 의해 신성 모독으로 비난받았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와 경찰, 유대인을 테러 대상으로 삼고 실행하기로 치밀하게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 부적응자의 충동적인 범죄와 구별되는 계획적인 테러였다는 점은 프랑스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줬다. 또한, 이들의 테러는 군사집단이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광신적 동기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 고립되어 살다 테러를 결심했던 노르웨이 극우주의자나 시드니 이슬람주의자와 같은 ‘외로운 늑대’형 범죄자와도 다르다.

 

프랑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11일 펼쳐진 집회는 이번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고 테러에 맞서는 프랑스의 용기를 보여주기 위한 행진이었다. 프랑스 내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을 제외한 모든 프랑스 정당의 지도자와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정상 대부분,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이스라엘 수상 등이 함께 거리를 걸었다. 프랑스의 유력지 ‘라베라시옹’은 “나는 한 번도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어요. 게다가 테러 위협이 현존하는 이때 저는 이곳에 오는 것이 좀 무서웠어요.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행진에 참여해야 했어요”라는 한 참가자의 말을 전했다. 

 
유례없는 행진대열을 이룬 사람들은 각각 테러를 감행한 이들에 대한 분노와 이웃을 잃은 슬픔 등을 토로하지만, 공통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프랑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3일간의 대테러전이 끝난 후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서 66%의 프랑스인은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를 하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과반을 훨씬 웃도는 프랑스인이 무슬림과 극단주의 테러리즘을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을 중도좌파라 밝힌 한 프랑스 고위 공무원은 이조차 너무 낮은 비율이라고 답했다. 더불어 29%에 달하는 프랑스인이 “이슬람이 프랑스에 위험요소”라고 답한 것에 대해 근심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행진 다음 날 설문 조사에서 97%가 “프랑스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사태가 종결된 다음날 무슬림 이민자 가정 출신의 경제학자와 프랑스 정치학자 등의 견해를 실었다. 해당 기사에서 무슬림 경제학자는 “내가 섬기는 신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빌려 테러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했다. 다수의 무슬림은 평화를 존중하며, 알라의 이름으로 인간을 모욕하는 소수 극단주의 종파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기사에서 프랑스 정치학자는 이에 대해 “프랑스의 무슬림은 스스로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무슬림이 이 사태에 대해 자신은 테러리스트와 무관하다며 정당화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해서도 안된다고 적었다. 이는 공화국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당 정부의 마누엘 발즈 국무총리 역시 공식적으로 무슬림과 테러리즘을 같은 것으로 보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해야 하며, 이는 테러리즘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권위 조롱하던 과격한 만평


샤를리 엡도는 만평지이다. 사건 직후 국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교나 무슬림을 주요한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들은 모든 권위, 특히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적 권위와 정치인의 위선과 반민중성을 조롱했다. 특히 가장 빈번히 반외국인, 반이슬람 정책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극우 정당을 조롱했다.

 
이 잡지는 정치적 의제를 제안하는 정치 매체가 아니었지만, 함께 일하는 만평가와 기자는 대개 극좌 또는 좌파 성향이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권위주의 정책을 천명하는 장마리 르펜이 설립한 극우 정당 ‘국민 전선'(Front national, 약칭 FN)을 가장 혐오했다. 국민 전선은 샤를리 엡도를 15차례 이상 고소했고, 이슬람 종단은 단 한 차례 고소했다. 1960년 창간한 샤를리 엡도(전신 하라키리 엡도)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제목 때문에 잠시 폐간되기도 했다.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샤를리 엡도의 다소 무정부주의적이며 복잡다단한 지향은 더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하여 더 많은 광고 및 판매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영업원칙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철저하게 ‘우리와 함께 웃을 독자’, ‘우리의 유머 코드를 이해하는 독자’를 찾는 편집 원칙을 고수했다. 대중성을 추구하지 않는 이들의 판매 부수는 지속해서 하락세를 그려왔고, 최근에는 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를리 엡도는 근육질 남성의 사진을 게재하는 성 소수자 타켓의 잡지,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주간지, 정론지, 싸구려 정보지 사이에서 근근하게 명맥을 이어왔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과 풍자는 일관된 방식으로 권위를 비웃었다. 새로운 정보나 격조 있는 에세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으니, 점잖은 정치학자나 독실한 신자들은 구태여 이틀을 찾아 읽을 까닭이 없었다. 이들은 스스로 광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었으므로, 광대질을 금지하는 집단이 이들과 가장 불화했다. 2011년 샤를리 엡도는 잘못을 한 사람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이슬람 율법을 희화화하기도 했다. 마호메트의 형상을 한 인물이 “이번 호를 읽고 죽을 것처럼 웃지 않은 이에게 채찍질 100번”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때문에 이들 사무실이 세 들어 있는 건물에는 폭탄이 날아들었다.

 

'JE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


사건 발생 이후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는 테러리즘에 저항하는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샤를리’가 추구했던 가치 자체가 존중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은 샤를리의 과격함과 존중 없는 표현의 자유를 불편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생명을 빼앗는 극단적인 폭력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언론들이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는 그것이다. 특히 지난해 발생했던 소니 해킹 사건과 연관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련의 사례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집회에 모인 370만여 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위축될지도 모를 표현의 자유를 걱정할 것이고, 누군가는 테러리즘에 의해 전 유럽이 공포에 떨게 될 내일을 걱정할 것이다. 한 생명의 죽음에 슬퍼할 수도 있고, 테러리즘의 잔혹함에 분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따로 있다. 이는 테러 사건 이후 계속 샤를리와 관련된 1면 기사를 내던 리베라시옹이 테러에 관한 사설에서 단 한 차례도 이들을 ‘이민자’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국가이며, 이민자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의 유지이며 ‘자유’정신의 추구이다. 수많은 이들이 외치고 있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며, 폭력과 모욕에 대한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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