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Ⅰ]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
[차별Ⅰ]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
  • 박진명 기자
  • 승인 2017.08.01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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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진명 기자]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

‘경쟁’하며 살고 싶은 사람들의 절규 

 

▲ⓒ전국철도노동조합

 

 

오늘 날 현대인들은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가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길 원하는 것에 대한 박탈감과 분노, 지방대와 상위권 대학생들 간의 학교 서열과 학교등급을 나누고, 정시생과 수시생 등 단계의 차이를 과장하고 벽을 쌓는 ‘학력위계주의’ 등 사회 곳곳에 내재돼있는 차별들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위험한 사회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의 계급이 바뀌는 ‘수저론’과 희망 없는 사회를 뜻하는 ‘헬조선’, ‘노오력’ 등의 신조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과거에도 사회를 반영하는 신조어는 많았지만, 최근 사회·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 자기비하형 ‘청년 신조어’가 늘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포털 사이트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환경보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성공을 결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최근 청년들이 자신의 사회 경제적 형편과 상관없이 노력과 능력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불평등이 이미 현실화된 상황에서 또 다른 차별주의로 왜곡돼 공동체와 배려라는 가치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6년, 김경근 고려대 교수가 한국교육사회학회에 제출한 ‘중고등학생의 능력주의 태도 영향 요인에 대한 구조방정식 모형 분석’에 의하면, ‘능력이나 업적에 따라 보상을 다르게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항목이 평균 2.917점(4점 만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합격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적’(2.623점), ‘장학금을 줄 때 가정 형편보다 성적고려’(2.436점) 등 나머지 항목도 중간 값(2점) 이상을 기록했다. 김 교수는 “능력주의 본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3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 건 청소년들 사이에서 능력주의가 공고한 신념체계로 자리잡고 있다는 방증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부작용을 우려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공평하게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년 시기부터 능력주의를 맹신할 경우 경쟁으로 포기해버릴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한 개인의 박탈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연고주의가 강하고 최근 ‘수저계급론’까지 등장하고 있는 우리사회는 능력주의가 실현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진단했다. 더욱이 사교육 불평등으로 인한 입시 불평등이 취업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능력과 노력보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윤 교수는 “불평등한 출발로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소외계층도 있다는 공동체주의 태도가 사회 전반에 필요합니다”라고 역설했다. 

 

‘노오력’할 의지와 성장동력 잃어가는 무기력한 사회


사회에 만연한 ‘당연한 차별’은 단지 대학서열에 대한 집착에만 국한되는 문제도 아니다. 지난 2008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KTX 여승무원들이 농성을 벌이자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 노동자들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는 KTX 철도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는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입사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공사의 정규직이 되겠다는 파렴치한 요구라 규정하고 있다. 이런 요지의 글들은 많은 인터넷에 게재됐고,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대학서열에 따른 차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요구 투쟁, 이외에도 철거민들의 주거권 투쟁,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대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의 청년들은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던 개발경제 시대의 논리가 더는 통하지 않습니다”라며, 계층 상승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포용적 성장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방 연구원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자리 나눔을 통해 모두가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능력껏 일해 기여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분배제도가 정착돼야 합니다. 또한, 근로자와 회사가 서로를 배려하는 노사관계,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상호 존중 사회를 열어 가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며, 통합된 사회를 이루려면 형평의 가치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2006년,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다. 4년이 지난 2010년에는 노동자들의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청년들은 지금도 토익점수를 몇 점 더 올리기 위해 영어책을 뒤적이고, 짬이 날 때마다 “정규직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댓글을 단다. ‘헬조선’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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