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옥수수재단 김순권 이사장
국제옥수수재단 김순권 이사장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2.06.28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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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옥수수를 통한 한국의 저력을 퍼뜨릴 것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국제옥수수재단 김순권 이사장

 

 

우리시대의 멘토, 농업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농업연구대상(벨기에 국왕상)을 비롯하여 각종 유수의 상을 수상한 국내의 학자. 세계를 넘나들며 옥수수연구에 매진하여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린 인물. 노벨평화상에 거론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상을 목적으로 연구를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옥수수재단의 김순권 이사장. 전 세계에 K-con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경북대에서 정년을 마쳤고 한동대의 연구 요청이 와서 흔쾌히 수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미얀마 등지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미얀마에서 무리를 해서인지 건강이 나빠졌더군요. 연구를 위해 미얀마에서 계속 있고 싶었지만 주위의 만류로 당분간 한국에 들어와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휴식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지만 쉴 수가 없어요. 강연과 강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곧 떠나게 될 중국일정에 앞서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과 만나고 중간 중간 남는 시간에는 연구 중인 옥수수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일정은 어떻게 되죠?

“앞으로 몇 달은 중국에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동북삼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에서 옥수수연구를 크게 진행 중에 있는데요. 중국내에도 옥수수 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당분간은 돌아오기 어렵죠. 중국 내에 2만개 업체들과 경쟁하려면 하루하루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고 전 세계 25%의 옥수수생산량을 차지하는 중국이니 만큼 중국 안에서 기틀을 다지고 우리나라 연구와 병행한다면 후에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중국에서도 국제옥수수재단의 활동을 계속할 생각인데 다른 NGO와는 달리 농업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단체이기 때문에 단순히 재정적인 지원이 아닌 재배방법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죠. 전 세계 20개국이 사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중국으로 진출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은데?

“전 세계에서 옥수수 생산량을 비교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단연 우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기술력을 100으로 본다면 중국의 기술력은 60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미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토지 면적의 80%이상이 옥수수 밭인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퍼뜨려 그 수준을 90%이상으로 끌어올린다면 세계 식량 위기와 기후변화에 옥수수가 일조를 할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은 그만큼 준비가 되어있지만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죠. 때문에 현지에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항상 ‘내가 아니면 이일을 할 수 없다’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동대와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서 중국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연구는 국내 인프라를 활용해 진행 중입니다. 국내와 중국을 넘나드는 지속적인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옥수수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특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는 수많은 낙방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데요. 고등학교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결국 원치 않던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 부모님들의 업을 이어 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더군요. 학교에서 육종과 종자에 대해 공부하던 차에 흥미가 생기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교도 갔다가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위해 대학원에 시험을 쳤지만 또 낙방하게 되었죠. 대학원에 떨어진 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저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겁니다. 처음에는 공무원으로 시작을 하게 되어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면서 벼 연구로 시작했습니다. 옥수수와는 거리가 멀었죠. 그런데 옥수수과에 공석이 생겨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우연처럼 이뤄진 사건이 제 인생 전체를 바꿔놓은 계기가 된 것이죠. 그 후 국가장학금을 받으면서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발전된 미국의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옥수수에 대해 관심이 크게 없었거든요. 옥수수가 우리나라에서 수입과 소비하는 제 1작물이라고 아는 사람은 드물고, 작물 중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생산량을 내는데도 국내에서 연구는 미진하더라고요. 이러한 국내사정을 알고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이 연구를 해야지 누가 하는가?’라는 일념으로 옥수수에 미쳤어요.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던 학교도 3년 3개월 만에 조기졸업하고 돌아왔습니다.”

 

 

옥수수에 대한 국내연구가 미진한터라, 초창기 어려움이 많았겠군요?

“내 조국에서 옥수수를 연구하는데도 순탄치는 않았죠. 1971년 강원도에서 처음 옥수수 심고 연구했는데, 주위에서 손사래 치며 말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당시 같은 연구를 하던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자신들도 해봤는데 ‘이건 안 된다’, ‘가능성이 없다’라는 말과 함께 비난과 힐책이 섞인 말이 돌아왔죠. 자존심이 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기존 수도권에서 연구를 하던 연구자들도 비웃으며 많은 반대를 했죠. 그런데 4년 만에 성공을 해보이자 보는 눈들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요즘도 절 비난했던 연구자들의 제자가 여전히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어 많이 속상하기도 합니다.”

 

 

최근 개발한 품종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대표적으로 구제역예방옥수수, 바이오에너지옥수수, 한방옥수수 등이 있는데요. 작년 한해 구제역으로 전국 축산 농가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개발한 옥수수를 사료로 사용하면 구제역에 대한 면역이 생겨 구제역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바이오에너지옥수수를 통해 옥수수알맹이는 식량으로 사용하고 줄기에서 휘발유를 생산할 수 있는 옥수수를 개발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옥수수연료는 옥수수가 자라면서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줄기를 연료로 활용하면서 진정한 친환경 연료가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한방옥수수 개발을 했는데요. 한방옥수수는 웰빙이 대두되는 시대에 옥수수를 가지고도 한약을 먹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옥수수입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옥수수는 재배 량이 많아서 가격 면에서도 값비싼 한약재에 뒤처지지 않고, 건강면에서도 좋기 때문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제가 만든 옥수수를 드셔보라’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슈퍼옥수수와 유전자 변형(GMO) 옥수수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구별하면 되나요?

“슈퍼옥수수는 전통육종에 의한 NON-GMO입니다. 건강에 해롭지 않고 자연의 공생관계를 이용한 품종이죠. 그래서 병충해나 주변작물과도 어울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유전자 변형 품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전자 변형이 인위적으로 면역을 강화시켜 병충해나 주변작물과의 공생을 해치는 것과는 달리 슈퍼옥수수는 주변 환경과의 공생도 생각하고, 작물을 재배 할 때 기후변화나 병이나 벌레가 나더라도 안전한 수량이 확보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연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히 인간에게도 좋은 것은 당연합니다. 즉 안정적인 생산량을 가진 보험 같은 옥수수라고 할 수 있어요.”

 

 

유전자 변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자연의 원리는 공생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병이나 벌레도 살아남고 자연스러워야 생물이 살아가는 것이죠. 농약이나 약 혹은 유전자 변형으로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만들더라도 후에 면역을 갖춘 생물들이 다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또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강화시키고 이런 활동들이 반복이 되어가는 것이죠. 유전자 변형은 공생관계를 깨는 것은 물론 인간에게 아직 나타나지 않은 불완전한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10년, 20년 시간이 지나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땐 늦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전자변형품종이 생산이 쉽기 때문에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지만 훗날 제가 개발한 품종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유전자 변형을 하나의 해답처럼 생각하지 말고 자연의 공생원리에 반하는 유전자 변형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 1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무턱대고 대지가 넓은 지역으로 식물을 재배하러 진출하고 있지만 큰 성과를 보이기 어렵습니다. 기후대가 완전히 다른 것이 큰 요인인데, 열대 지방은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미얀마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가고, 온대지방은 한국, 중국, 몽골과 북한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한국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니까 여기서도 잘 자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진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맛보고 돌아가는데요. 작물을 연구하다보면 ‘G’와 ‘E’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즉 ‘Genotype’ 품종과 ‘Environment’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학적인 측면을 먼저 생각하고 다음으로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맞더라도 경쟁력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중점적인 연구과제로 환경과 품종에 맞는 그리고 경쟁력 있는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옥수수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아시다시피 북한의 주식량은 옥수수입니다. 옥수수 하나를 먹지 못해 아이들이 굶어죽고 영양 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죠. 북한의 70%가량이 옥수수 농사를 하고 있는데. 옥수수 육종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생산되는 옥수수의 양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북한을 방문해서 살펴보니 북한은 옥수수 재배에 있어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북한에 옥수수를 심고 남한에 쌀을 심어 식문화의 교류가 이뤄진다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먹는 것을 교환하는 것은 높은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입니다. 식량 교환을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제가 개발한 옥수수들이 북한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뿌듯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북한 농민과 국민들이 뿌듯해 하는 것을 보고 ‘아 옥수수만 잘 하더라도 통일을 앞당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힘든 상황 가운데 이사장님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있다면?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신앙’이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6.25를 겪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들이 많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좌절을 한 경험도 많습니다. 그러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었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내가 겪는 어려움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라는 생각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매일 기도합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면 곧 나 뿐만 아닌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신앙을 바탕으로 견디고 극복해온 경험들이 축적되어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도 있으실 텐데요.

“요즘 젊은이들은 돈과 권력에 치우쳐 한길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바라는 곳은 많은데도 시각을 좁게 가져서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삶을 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고 먼저 생각한다면 최근 일어나는 자살이나 학교폭력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테죠. 스스로 생각의 성장을 이뤄낸다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개인의 발전이 모여서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남의 희생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이 먼저 어려운 일을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지를 빌어 전하고픈 말씀.

“정의로운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힘없는 사람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 모두 자신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에 맞게 노력 한다면 사회는 틀림없이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을 배우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어디든지 적응할 수 있는 근성을 가지고 있고 전쟁을 겪으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민족이지 않습니까? 국민 모두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위상을 높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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