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폭탄 안고 훨훨 날아가리
일본으로 폭탄 안고 훨훨 날아가리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7.07.01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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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도윤 기자]

일본으로 폭탄 안고 훨훨 날아가리

 

 
비행에 대한 꿈과 조국 해방이라는 불꽃 품은 신여성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했다. 과거, 특전사 중대장으로 복무한 적 있는 피 처장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 헬기 조종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대한민국 최초 여성 비행조종사로 이름을 떨친 이가 있다. 어린시절 처음 본 미국 곡예비행으로 비행에 대한 꿈과 조국 해방을 가슴에 품은 당대 신여성 권기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행기 조종사로서의 삶 굳건히 하다 

1917년 5월,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곡예비행 공연을 지켜본 소녀 권기옥은 창공에 대해 동경하게 돼 비행 조종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1923년 4월 임시정부 추천으로 중국 변방에 있는 운남육군항공학교에 제1기생으로 입학한 권기옥은 1925년 3월에 학교를 마쳤다. 이후 그는 임시정부 소개로 중국 항일운동가 풍옥상의 휘하에서 본격적으로 공군생활을 시작해 10여 년간 중국 공군으로 복무했다. 약 7,000시간 비행기를 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권기옥은 첫 출전부터 승진이 빨라 소령, 중령을 거쳐 중국 공군이 개편될 때에는 대위 자리까지 진급했는데, 1929년 국민정부 군정부본부에서 항공 제1대 상위관찰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동안 여러 전투에 참여한 그는 1935년 쑹메이링(장제스 총통 부인) 여사의 제안으로 중국 청년들의 공군 입대를 독려하기 위한 선전비행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때, 권기옥은 선전비행 마지막에 일본왕궁을 폭격할 계획을 세웠지만, 선전비행 당일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비행이 취소되면서 그의 계획도 무산됐다. 광복 이후 권기옥은 1948년 8월에 귀국, 1950년부터 1955년까지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해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때, 권기옥은 친일파 박경원(1901~1933)의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 청연(2005)때문에 대한민국 최초 여성 비행조종사라는 수식어를 두고 박경원과 경쟁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로서 그만의 역량 뽐내다
 

평안남도 평양부 상수구리 권돈각과 장문명의 다섯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권기옥은 숭의여학교에서 박현숙 교사를 만나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4일 20여 명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가 만세를 불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적 있는 그는 평양청년회 김재덕이 부탁한 일이 잘못돼 일본 경찰들에게 다시 체포되어 한 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그런데도 1920년 8월 문일민, 장덕진 등을 도와 숭현소학교 지하실 석탄창고에서 폭탄을 제조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점차 일본의 감시가 삼엄해지자 권기옥은 1920년 9월 멸치잡이 배에 숨어 상해로 탈출했고, 이후 비행조종사로 활동했다. 이후에도 권기옥은 일본의 계속되는 암살시도에 시달려야만 했다. 특히, 권기옥에 대한 연이은 보도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망명한 한국 여학생이 조종사가 됐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자 일본 영사관은 권기옥 암살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다. 1928년 남경(南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권기옥은 같은 해 이상화 시인의 친형이자 역사학자였던 이상정과 결혼, 그와 같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후 권기옥은 1943년 중경 임시정부 직할로 재조직된 한국애국부인회 사교부장 등으로 활동해 여성들의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일평생 조국의 안위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우리의 어머니

 

사실 권기옥은 대한민국 여성 언론인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 그는 1957년부터 1972년까지 ‘한국연감’ 발행인으로 활동했고, 1966년부터 1975년까지 한중문화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권기옥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이에 윤선자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권기옥 지사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당시 여성의 삶을 옥죈 편협한 인식을 극복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비행한 독립운동가이자 근대 한국인”이라고 평했다. 자손이 없었던 권기옥은 전 재산을 청년들을 위해 기부했고, 1988년 4월 19일 88세에 낡은 목조건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비행기조종사로 일평생을 꿈과 조국을 위해 마친 권기옥 선생. 그의 일대기를 통해 본 조국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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