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정치지형 변화Ⅰ]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
[유럽의 정치지형 변화Ⅰ]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
  • 박지훈 기자
  • 승인 2017.06.02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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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클릭 -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이슈메이커=박지훈 기자]


 

우클릭 -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포퓰리즘 정당에 지지자를 빼앗기는 좌파정당의 현실


  

 

유럽 각국의 좌측 날개를 담당하는 좌파정당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채택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며 자리 잡은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을 포기하고 복지정책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실현됐다. 노동자들의 혁명적인 전위정당에서 민주적인 대중정당으로 변화한 좌파정당의 역사를 살펴보며 그들이 거둔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다.




공산당과 다른 길을 선택한 사회민주주주의 정당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유럽 각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표방한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둔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탈피한 사회민주주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베른슈타인이 제안한 사회민주주의적 개혁 노선에 기초하고 있다. 쉽게 말해,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 노선을 포기하고 민주적이고 점진주의적인 방식을 통해 사회주의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에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를 사이비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했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공산주의야말로 사회주의의 전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왜곡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1951년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채택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비판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경직된 교리로 굳어졌다"고 적시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시기와 각국의 사정에 따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진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당 내에서도 급진파가 존재해 소련 및 동유럽의 공산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각국이 처한 상황으로 프랑스, 이탈리아의 좌파 정당은 소련의 공산당과 소통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만드는 불평등을 시정하는 데 정책적 관심을 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어떠한 정책과 노선을 걸어왔는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권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몇 년 사이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서양 세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대중정당으로 거듭났다.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서유럽 국가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제1야당이 됐다. 이들은 자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영국 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이룬 성과와 노출한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공황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립정권, 단독정권, 거국내각을 이뤄본 적이 있는 영국 노동당은 전후 집권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유권자에게 사회주의화한 의료체제, 영국 은행의 국유화, 다수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을 포함한 사회복지와 국유화에 관해 입안된 강령을 제시했고 전후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재창출했다. 애틀리(Clement R. Attlee)가 총리로서 이끈 노동당은 강령에서 약속한 정책들을 부분적으로 실시했다. 수입세나 상속세의 강화를 통한 재산의 재분배를 시도한 노동당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는 소수 계층에게 편중되어 있었고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다른 국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1959년 바트고데스베르크(Bad Godesberg) 당 대회를 기점으로 그동안 유지해온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선의 포기를 강령으로 명문화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사회민주당의 이념적 토대에 두고, 노동 계급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전국적인 대중정당으로 거듭났다. 새로운 강령인 '가능한 만큼의 경쟁, 필요한 만큼의 계획'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사회민주당은 마르크스주의를 상당 부분 포기하고 자유주의를 흡수한 모습을 보였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와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총리가 집권한 1969년부터 1979년까지 독일 사회민주당은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교육, 노동 분야에서 복지정책을 강화했다. 이러한 새로운 조처에도 불구하고 이는 통제적 시장 경제에 만족하는 수준이었고 영국의 사회당과 수준의 국가개입정책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세계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중 가장 오래 집권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은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이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0년대부터 40년간 집권했고, 타게 에를란데르(Tage Erlander) 총리는 무려 23년간 총리를 지내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노동당의 집권기에 유럽의 가난한 농업국에서 개인의 평균소득이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변모했다.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다른 주요 선진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보다 더 균등한 소득분배, 더 적은 빈자 비율을 만들어내며 가장 모범적인 복지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르웨이처럼 북해유전을 보유하지도, 서유럽 선진산업국가처럼 식민지의 유산을 가지지도 못한 현실에서 거둔 복지국가의 모습이었기에 더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1년 프랑크푸르트 강령에서 제시한 점진적인 사회주의화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대신에 개인이 체제 내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능력과 원천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유주의적 시장 사회를 재형성하려고 했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사례에서 보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정치체제를 확립하고 경제적으로는 일부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복지제도를 확충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면서 민주적이고 점진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했지만, 경제성장을 중시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재산을 재분배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평가받는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중도화, ‘제3의 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주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은 상기한 정당들보다 정치적으로 왼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당은 같은 원내에 사회당보다 급진적인 공산당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노선 경쟁을 하기 위해 소련 공산당과 소통했고 강령 또한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론에 좀 더 충실하려 했던 프랑스 사회당은 연이은 선거패배로 노선을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사회당은 1980년 '프랑스를 위한 사회주의 계획'에서 공산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화를 주장했다. 그 결과,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은 사회당 출신 후보로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어 치러진 총선에서도 절대다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는 약속했던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게다가 연임에 당선된 미테랑 대통령은 사회당이 1986년 총선에서 우파정당인 공화국연합에 밀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를 총리에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좌파 대통령과 우파 총리가 협치하는 ‘좌우동거체제’가 만들어졌고, 사실상 의회를 장악한 시라크 총리가 실세 총리로 국정을 운영했다. 이에 공화국연합에 협조해야 했던 사회당은 점점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 후반, 거시경제학에 새로운 이론이 부상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카고 학파로 불리는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 프리드먼(Milton Friedman)는 국가의 경제 간섭을 줄여 기업의 자율성을 높이고, 만성적인 사회복지비용을 줄이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줄여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라고 불린다. 


이들이 좌파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시기에 석유파동과 그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유럽, 미국은 위기를 겪었다. 전후 좌파와 우파 모두 케인즈주의를 기조로 복지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정적인 전후재건, 경제성장이 있었으나, 두 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져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복지정책의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를 가중시켰다는 보수정치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1979년 영국 국민은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를 총리로, 미국 국민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 두 국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세금을 줄이고 동시에 복지정책을 축소하는 정책이 펼쳐졌고,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신자유주의 정치이념이 주요 선진국의 정치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개인의 책임과 노력을 강조한 신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이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된다. 10여 년간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Tony Brair)는 노동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노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신노동당 정책'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경쟁 후보를 꺽고 노동당의 대표 정책인 국유화 강령을 폐기했고 시장 경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안을 제시했다. 제3의 길이라고 불리는 그의 정책은 보수정당의 신자유주의와 좌파정당의 복지정책 사이에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과거 노동당이 실행했던 최저생계비 지원과 같은 사회안전망 복지가 아니라, 실업자가 노동의 의지를 보여야만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생산적 복지가 토니 블레어 정부의 변화된 신 노동당 정책이다.

 
80년대 이후 각국 좌파 정당은 영국과 비슷하게 정치이념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프랑스의 좌우동거정부, 독일의 사회민주당 정부,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가 유사한 길을 걸었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금융자본주의가 확대되고 무역의 장벽이 더욱 허물어지는 등 신자유주의 이념이 세계 경제를 주도해 경제 구조가 변화한 결과다. 좌파와 우파의 노선을 절충한 제3의 길이라는 중도주의 노선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 주요한 전략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중도노선은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오랜 기간 집권하지 못하고 있고, 프랑스의 사회당은 올랑드 전 대통령이 약속한 정책을 대폭 후퇴시켰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노동법 개정을 시도하는 우클릭 노선을 선택했다. 유럽의 좌파 언론들은 유럽 각국의 좌파정당이 우파정당과 차별화되지 않고 대중들이 좌파정당이 경제에 무능하다는 생각을 가져 외면을 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내세웠던 좌파정당은 거듭 자유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노선을 선택해왔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대중의 선택을 받을만한 정책을 이어왔으나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좌파정당의 혁신방향이 어떨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길에 따라 세계 정치지형은 다시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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