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악 끊어낼까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악 끊어낼까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7.06.02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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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악 끊어낼까

개혁의지를 바탕으로 개헌 논의를 풀어갈 수 있을지 관심 집중


 

▲대한민국 청와대 ⓒwikimedia

 

 


지난 5월 9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국정농단 사건과 사상 초유의 현역 대통령 탄핵을 뒤로하고 19대 대선이 열렸다. 제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사를 돌이켜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 전임자들은 초라한 결말을 맞아야했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아 과거의 과오를 떨쳐버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순, 대한민국 대통령 잔혹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장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 모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현행 대통령제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는 평이 잇따르고 있다. 70년간의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11명의 역대 대통령 중 무려 8명이 비운을 겪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대통령들은 영광보다는 치욕의 상처만 안고 물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의 잔혹사가 이어지는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최측근 등 비선 라인이 월권을 휘두르며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습은 역대 정권에서 빠짐없이 반복돼 왔고, 결말도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급격히 흔들면서 결국 레임덕과 정권 몰락이 가속화됐다.

 
그간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취임하면서 “측근 비리는 없다”고 공언해 왔다. 탄핵의 비극을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왜 매번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군부독재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1987년 직선제 쟁취 이후 국민의 손에 뽑힌 정권들도 이런 비선 실세들의 전횡을 막아내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영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 동생인 박철언 씨가 '6공(共) 황태자'로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박씨는 당시 정무장관 등 굵직한 공직을 맡고 있었지만, 그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국정 전반에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다. 갖은 의혹과 비판에도 건재를 과시하던 박 씨는 김영삼(YS) 정부 출범 이후 슬롯머신 사업자에게서 6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993년 수감됐다.

 
김영삼 정부 비선 라인의 핵심은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였다. 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불렸을 만큼 그 역시 청와대 내부는 물론 여당과 정부 요직에 측근들을 심고 국정운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당시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현철 씨를 거친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1997년 한보 사태 때 기업인들로부터 66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결국 옥고를 치렀다. 아들의 구속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렸다.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말 ‘홍삼(弘三)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의 끊임없는 비리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각종 권력형 비리가 연발했고, 그 때마다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홍업·홍걸씨 모두 이권청탁 등으로 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정권 말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고, 홍일 씨 역시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사건'에 연루돼 기소되기도 했다. DJ도 이런 일로 임기 말 '식물 대통령'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 다음 들어선 참여정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 씨의 인사 개입 잡음이 계속 이어졌다. '봉하대군'이라 불릴며 영향력을 행사했던 노 씨는 각종 인사 배후로 거론됐고, 결국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29억여 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의 386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기업체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 각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여기에 더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결구 자살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해 민간인 사찰을 지휘한 '영포회'라는 비선 조직이 숨은 권력이었다. 특히 MB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영포 라인의 핵심으로 꼽혔다. MB의 형인 이 전 부의장은 '상왕', '영일대군'이라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전 부의장 역시 결국 저축은행 로비 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 전 국무차장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금품 수수 및 원전 비리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역대 최악의 비리사건과 마주해야 했다. 지난 3월 10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면서 불행한 역사가 또 쓰이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싫어 했던 말이 ‘독재자의 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를 앞세우고자 했지만 말과 행동은 달랐고, 국정운영에서 법과 원칙은 무시됐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잔혹사를 또 잇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역사


우리나라에 대통령이라는 말은 1892년 미국식 대통령제의 ‘프레지던트(president)’에 대한 번역어로 일본에서 생긴 조어(造語)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유례다. 1881년 이헌영이 신사유람단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조사, 문견한 바를 기록한 ‘일사집략’에 “신문을 보니 미국 대통령, 즉 국왕이 총에 맞아 해를 입었다고 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후 1883년에 체결된 한미조약에 ‘president’의 중국식 표기인 ‘伯理璽天德(백리새천덕)’을 사용하다가 1892년부터 공식 단어로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대통령이란 단어가 사전에 처음 등록된 것은 1938년 문세영(文世榮)의 ‘조선어 사전’이다.

 
사실 대통령제는 미국혁명의 소산이다.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서 미국연방헌법이 제정돼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왕권에 대한 도전과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입법부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미국연방헌법의 대통령제는 독재의 출현과 권력 남용 방지, 강력한 중앙정부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국연합체제는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으로 호칭됐고, 이미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직책이 행정부서에 존재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간의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근거한 균형헌법 제정이다. 정치구조의 모범이라 칭할 정도의 미국식 대통령제는 미국에서만 성공한 제도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상당수 나라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식이 아닌 대통령중심제이거나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대통령제다. 대통령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 임명권과 입법권의 일부 권한까지 장악한 무소불위의 권한 행사다.

 
우리나라 통치권자들도 예외없이 권력욕에 헌정파괴를 일삼았다. 자유당이 1954년 정족수 미달의 헌법개정안을 ‘사사오입 개헌(四捨五入改憲)’으로 불법 통과시켰다. 1969년 민주공화당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3선개헌(三選改憲)’안을 통과시키며 1972년 이후 유신체제와 함께 장기집권의 길을 마련했다.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도 비록 개헌까지는 아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알고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이같은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변화된 모습이다. 새정부 첫 인사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했다. 대탕평·통합형·화합형 인사 약속의 실천이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해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 행위를 철저히 근절시킬 임무를 부여했다.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변화시키고 있다. 검찰출신이 독식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 검찰 출신으로 임명해 대대적인 검찰개혁을 예고했다. 대국민 소통 창구인 국민소통수석에 정치부 기자 출신인 윤영찬 수석을, 대통령 최측근이 맡아온 것이 전례였던 총무비서관도 흙수저 출신인 이정도 예산정책 전문 행정공무원에게 맡겨 철저히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른바 측근들보다 실무형 인사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으로 기로에 선 개헌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 조직이 완료되는대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꿀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모순된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개헌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정권의 전임자들처럼 개헌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경우 임기내 권력구조 개편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한두 번 거론된 것이 아니고, 그 때마다 ‘분권형’ 개헌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개헌을 약속했다. 내년 초까지 개헌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바 있다. 이렇듯 이제 개헌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사명이 됐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현재도 언론의 중요 담론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987년 민주화 선언 이후 정권은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를 거듭했으나 헌법은 당시의 헌법 그대로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있다는 평을 많이 듣고 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그야말로 통합과 협치의 표본이 돼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 앞에 서 있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악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거센 개헌요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개헌은 피할 수 없는 국민적 요구에 따른 대통령의 숙명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개헌특별위원회가 올해 초부터 가동되면서 개헌 논의를 진행시켜 왔다. 문 대통령도 2022년 대선부터 대통령 4년 중임제로 전환할 것과 이를 위해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 개헌 의견청취를 위한 개헌특위 회의에 나와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며 "차기 대선을 2022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게 해서, 이때부터 4년 중임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약속대로 내년 6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경우 앞으로 1년 안에 개헌안이 완성돼야 한다. 

 
다만 개헌이 정치권의 다른 의제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어 문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국정 드라이브를 거는 집권 1년 차에 개헌론이 불붙기 시작하면 새 정부의 개혁동력은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블랙홀 논란’을 극복하고 개헌 논의를 풀어갈 수 있을 지가 임기 초반 최대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이슈들을 뒤로하고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권이 과거 대통령 잔혹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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