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 박지훈 기자
  • 승인 2017.05.0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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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지훈 기자]

 



문화를 두고 벌이는 진보와 보수의 격돌

PC 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 돼야


 

2015년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박살내는 것이 캠프의 제1과제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언론과 시민사회가 트럼프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비판했으나 2016년 1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 언론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가 끝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PC 운동의 국내외적 영향

1960년대 말 이른바 6.8운동이 일어난 이후 진보주의 운동은 경제에서 문화로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된 미국에서 경제재건이 성공적으로 달성되고 부의 재분배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결과다. 가부장적인 사회문화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문화적 진보세력이 중심이 된 신좌파에게 개혁대상이었다. 특히 1980년대 페미니즘(Feminism),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이념으로 한 진보세력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편견이 담긴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 사회적 운동을 일으켰고, 이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Political correctness movement, 이하 PC 운동)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면, 미혼 여성은 ‘Miss’, 기혼 여성은 ‘Mrs’로 호칭하던 것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Ms’로 부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의 흑인과 원주민은 블랙(Black people), 인디언(Indian)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성별에 따라 직업명이 다른 관행도 변화했다. 가정주부(House wife)는 성별이 불분명한 살림꾼(Homemaker)으로 제안되었고, 동일 직종이지만 성별 호칭이 다른 용어는 대체로 ‘-person’을 어미로 붙여 사용됐다. PC 운동세력은 주류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구적 관점까지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들은 서양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저서(the Great books)’는 서양의 고전만 포함하고 있으므로 소수민족의 저술도 다루어야 한다고 지적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다문화 교육을 강조했다.

PC 운동은 일반대중에게 자신이 무심코 사용한 용어나 표현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켰다. PC 운동의 영향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제3세계 국가의 일부 진보운동가들이 문화적 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부르는 미국 드라마,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문화콘텐츠를 통해 PC 운동의 결과가 반영된 사고가 퍼져나갔다. 미국에 유학하며 PC 운동을 경험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자국으로 돌아가 대학에 PC 운동을 퍼트렸다.




한국 PC 운동의 성과

미국의 PC 운동은 한국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PC 운동이 대학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면, 한국의 PC 운동은 시민단체가 주축이었다. 2004년에 복수의 시민단체는 ‘주민등록번호 첫째 자리 철폐를 위한 만인 집단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며 한국 역사상 최초로 PC 운동의 시작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는 2005년 부계혈통을 바탕으로 한 호주제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단을 이끌었다. 

이후 실생활에서 이루어진 변화는 많다. 초등학교 출석부에 남학생들이 앞번호, 여학생들이 뒷번호로 기재되는 관행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를 받고 없어졌고,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은 한부모 가정으로, 탈북자라는 호칭은 새터민으로 대체됐다. 그밖에 특정 직업에 대한 표현도 좀 더 호의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청소부는 환경미화원, 때밀이는 세신사라는 호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민사회에서 출발한 PC 운동은 사회에 뿌리박힌 부적절한 관행과 표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에도 ‘도덕적 감수성’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성 소수자 개인이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이끈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밝힌 방송인 홍석천 씨는 TV출연 초기 대중 특히, 많은 남성에게 비난받았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연예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리수라는 예명으로 널리 알려진 이경은 씨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연예인이다. 이 씨는 활기차고 넉살이 좋은 성격을 대중들에게 보여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계기로 ‘LGBT’라고 지칭되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크게 개선됐고 이들을 향한 표현도 호모에서 성 소수자라는 객관적인 호칭으로 바뀌었다. 물론 한국에서 PC 운동은 미국처럼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PC 운동이라는 말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PC 측과 갈등을 겪으며 알려졌다.

 

 

도전받는 PC 운동

2016년 세계 정치가 가장 주목했던 뉴스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수많은 기행과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중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PC 운동에 대한 반감이다. 일부 서구 언론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함께 PC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공개적으로 “나는 PC를 거부한다”고 말한 바 있기도 하다. 여성과 사회소수자들을 향한 거침없는 발언을 하며 PC 세력에 대해 공개적인 거부 의사를 밝힌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PC 운동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PC 운동은 1980년대 본격화되어 가장 차별받는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을 시정하면서 점차 그 활동영역을 넓혔다. 소수자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다 보니 정치적 반대자들이 보기에는 더 이상 그들은 소수가 아니었다. PC 운동의 취지와 용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일부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에 지나치게 경도돼 공감되지 않는 표현을 제안하거나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PC 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점차 PC 운동의 반대자들이 증가해 인터넷에서는 PC 운동가들은 ‘SJW(I am a social justice warrior)’ 혹은 ‘PC 경찰(PC police)’라는 조롱이 담긴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사회가 PC 운동의 영향을 받아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표현을 개선했지만, 그에 대한 반발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PC 운동의 교조주의화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PC 운동은 어떤 부정적 표현에 대해 중립적, 호의적인 사용을 이끌었으나, 최근 PC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몰상식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PC 운동에 대한 비판은 90년대에 처음 나오기 시작했고 진보진영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한다.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미국의 PC 운동에 대해 불관용의 한 형태로 강자의 자기 옹호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성, 인종,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올바름을 주장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미온적인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하는 PC 운동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에 미국인 특히 남성들이 상당 부분 역차별의 감정을 느끼고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일부 미국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영국의 문화평론가 아르와 마흐다위(Arwa Mahdawi)는 영국의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죽고 불탄 잿더미에서 새로운 PC 문화인 ‘포퓰리즘적 올바름(Populist correctness)’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의미는 특정한 주장에 민중의 의지에 반하고 애국적이지 않다는 딱지를 붙여 침묵시키는 것을 말한다. 마흐다위는 새로운 PC 운동세력이 기존의 진보주의자들처럼 단어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대해 이념적 분노를 쏟아낸다고 분석했다. 그는 진보주의자들이 새로운 PC 세력이 만든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진보세력의 PC 운동도 비슷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특히 한국 페미니즘 세력의 일부는 여성혐오에 맞서 ‘미러링(Mirroring)’이라는 방법으로 남성혐오적 표현을 사용해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는 여성에 대한 부적절하고 불평등한 용어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계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사회의 소수자, 피억압자는 아니다. 남성 중에 장애인이나 성 소수자가 있는데 현재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미러링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까지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판여론은 들끓고 있다. 지난해 5월, 조현병을 가진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화장실에서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도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대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일부 여성계는 범인이 피살자를 살해한 동기를 성별에서 찾았고,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관리되지 못한 조현병이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여성계가 비판의 여론을 맞는 상황에서 한국의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도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동안 여러 구설에 오른 그들이 급진적 페미니즘의 미러링을 비판하고 남성들이 여성계를 비난하도록 자극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등장할 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지칭해 비하하는 유행어로 ‘프로불편러’가 등장했다. 남들이 무심코 잘못한 말과 행동에 관용 없이 불편한 기색을 프로 선수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프로불편러라는 유행어가 등장하기 전에는 ‘선비’라는 말도 있었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도 사사건건 지적하는 선비와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보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PC 운동이 각국에서 반발을 받고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사회인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진보운동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온 것으로 보인다. 진보운동의 배터성, 공격성에 맞서 세력을 키우는 반이성적인 논리가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관용이라는 기본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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