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CCTV, 범죄의 예방과 안전을 위해 거리, 상점, 차량 등에 설치하는 CCTV가 사건사고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또 다른 눈이 되고 있다. 24시간 항상 감시와 안전을 위해서 설치되고 있지만 사생활 감시 등으로 악용되는 CCTV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한 민간 CCTV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홍보와 계도 작업도 미흡하게 운영된다. 정작 필요한 현장에서 제대로 녹화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리어 CCTV가 거리의 흉물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전국 300여만 대의 폐쇄회로 카메라 (CCTV)
어느 날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수사는 오리무중으로 접어들고 목격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범용으로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 (CCTV : Closed-Circuit TV)가 유일한 목격자로 지목되고 수사는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 레퍼토리인 시나리오가 현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CCTV는 초기에 공장이나 백화점 등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치∙운영되었으나 최근에는 범죄 예방 등을 목적으로 주택가, 전철,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 확대 설치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설치 대수는 1만 9,308대 이며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CCTV는 300여만 대이며, 이 가운데 250여만 대가 민간에 의해 설치∙운영되고 있다. 또한 공공장소나 거리에 설치되는 CCTV이외에도 차량에 설치하는 블랙박스 역시 교통사고 분쟁의 원인을 가리기 위해 호응을 얻으면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3년까지 버스나 택시 등 모든 상업용 차량에 대해서만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되어있으며 국내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 규모는 올해까지 5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경북의 한 경찰 관계자는 “범죄수사에 CCTV가 많은 도움이 된다”며 “수사의뢰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녹화영상을 확인하고 범행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 입니다”라며 범죄형장에서 CCTV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창원에 거주하는 손영상(28)씨는 “범죄의 방지와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CCTV 설치를 지지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CCTV는 2009년에 제정된 ‘공공장소 CCTV 관리 가이드라인’으로 규제되고 있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으로 기존의 가이드라인은 폐지되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 및 민간분야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침을 제공한다. 이 지침에서는 CCTV의 목적과 관리에 대해서 지켜야할 사항들과 위반 시의 처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 종합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0m 안에 40개 이상의 카메라
곽경택 감독의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영화의 대사 중에서 “일반시민이 출근해서 집에 올 때 까지 CCTV에 잡히는 횟수는 출퇴근거리 30km 기준으로 했을 때 70번,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일상이 기록되는 살벌한 세상”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늘어나는 수요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감시되고 사생활 침해와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집에서 나서서 직장에 출근하기 까지 나도 모르게 다양한 모습과 형태의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취재를 위해 기자가 직접 거리를 돌아다니며 CCTV의 개수를 세어본 결과 불과 100m정도의 거리를 걷는데도 40대 이상의 CCTV를 볼 수 있었다. CCTV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박 모씨는 “요즘 워낙 사회가 흉흉하다보니 CCTV 설치에 대해서 문의전화가 많이 온다”며 “일반인들까지 자신의 집 앞에 CCTV설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설치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실제로 설치되어 잘 관리되는 CCTV는 손에 꼽힐 정도이다. 주택가나 빌딩 곳곳에 설치된 CCTV 안내판 상당수는 위탁받은 보안업체 회사명만 크게 써져있고 도난 방지 등 간단한 사유만 적고 있어 표지판인지 광고판인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CCTV를 설치한 사업주 역시 촬영시간과 열람기록, 삭제기록 등을 모두 대장을 만들어 관리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관리를 위한 교육도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임 모씨는 “안내판 공지에 대해서는 본사에서 들었지만 CCTV 대장관리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CCTV촬영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권성훈(27)씨는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도 몰랐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며 아무런 경고표지판도 없이 촬영당하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민간에서 설치해 운영하는 CCTV가 늘어나면서 CCTV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된 진정이 5년 만에 4배 이상 늘었다. 기본권침해 진정은 2005년 80건에서 2010년 기준 326건으로 상담건수도 119건에서 520건으로 증가했다. 2010년 기준 CCTV에 대한 진정, 상담, 민원 안내를 모두 합한 수는 1,132건이 접수되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인권위에 따르면 한 구두 제조업체의 경우 사업장에 설치한 CCTV로 직원간의 사소한 대화까지 감시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이에 인권위의 주요 상담 내용으로 직장 내에서 CCTV를 통하여 직원들의 근무를 감시하는 용도가 가장 많았으며 감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직장을 그만두는 등 다양한 형태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 인권위원회는 2001년부터 2011년 까지 접수된 진정 및 상담 사례 5,000여 건에 대한 통계 및 사례를 분석해 그 분석결과를 발표하고 입법권고안을 제출하기위해 준비 중이다.
범죄에 악용되는 차량 블랙박스
차량에서도 CCTV는 많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최근 다른 모습으로 악용이 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25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사기 등 혐의로 정 모씨를 구속하고 정씨의 형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 형제는 13년 동안 신호위반 차량을 골라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차량에 탑재된 블랙박스 동영상을 이용해 운전자를 협박, 보험금을 갈취하는 형태의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러 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999년 8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서울 전역에서 고급 승용차를 이용해 신호위반이나 중앙선 침범 등 법규위반 차량을 상대로 교통사고를 유발, 모두 98차례에 걸쳐 16개 보험사로부터 3억 상당의 보험금을 상습적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교통사고를 낸 뒤 차량 운전석과 조수석 등에 설치된 블랙박스 동영상을 이용해 법규위반 운전자의 형사처벌 등 불안 심리를 악용해 주고 가입보험사에만 사고를 유도한 뒤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질러 왔다. 정씨 형제는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미루거나 거절할 경우 블랙박스 동영상을 활용해 금융감독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수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관계자는 “이들은 경찰 신고나 조사에 응하겠다는 일부 보험사 직원들에게 협박, 경찰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며 “이 사건은 범죄수법이 조직화, 지능화되는 실상을 보여준 사례”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작 중요한 상황에서 블랙박스가 먹통이 된 사례도 존재한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 은평구에 사는 윤 모씨는 지인이 운영하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다음날 영업하지 않는다는 세차장 한 쪽 구석에 차량을 주차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세차장에서 영업을 해야 하니 차를 빼달라고 연락이 왔고 윤씨는 50여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그 사이 세차장 주인이 영업방해로 이미 윤 씨를 신고했다. 윤 씨가 차를 빼기 위해 탑승하자 세차장 주인은 직원을 시켜 출발하지 못하도록 앞을 막아섰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에게 세차장 주인은 윤 씨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7m가량 운전했다며 음주운전 누명까지 씌웠다. 윤 씨는 상황설명을 위해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지만 구입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블랙박스에 당일 녹화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제조사 측에 문의했지만 단순히 제품불량이며 교환해주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윤 씨는 “유일한 증거자료마저 쓸모없어지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고스란히 덮어쓰게 생겼다”라며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국 소비자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1월 말 기준으로 차량용 블랙박스의 소비자 불만과 관련하여 소비자상담센터의 상담 접수건수는 355건으로 전년도 217건에 비해 63% 증가했고, 한국 소비자원 피해 구제 건수도 2010년 20건에서 2011년에 46건으로 1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령의 교육과 계도, 업계의 노력이 절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25조에 따르면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운영할 경우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CCTV는 안내판 자체가 없거나 설치 위치와 동떨어진 곳에 붙어 있어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안내판에 설치 목적 및 장소, 촬영범위, 시간 등을 기재해야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관계당국의 소극적인 홍보 및 계도 노력 때문인 것을 분석됐다. CCTV를 설치 운영하는 매장의 주인 대부분이 법의 존재자체도 몰랐고 관공서나 운영업체 등 어디서도 그런 내용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법령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처벌하는 것이 쉽지않다”라며 “그래서 현재 계도 활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인터넷 진흥원 등 관련 인력 60여명으로 전국에 설치된 300만 대 CCTV에 대한 홍보 및 계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장광수 행안부 정보화전략실장은 “일본의 경우 2002년 법 시행에 앞서 2년의 유예기간을 가지고 교육을 실시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6개월의 계도 기간밖에 가지지 않아 아직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짧은 유예기간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공식적인 법 계도기간은 끝났지만 처벌보다는 계도와 지원활동을 계속 이어가겠다”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이 연착륙하려면 정부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업계의 솔선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범죄의 현장에서 정의의 감시자가 되어 각광을 받았던 CCTV가 이제는 사생활 침해, 노동현장 감시의 불법의 눈으로 타락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과 계도가 이뤄지지 않는 한 또 다른 형태의 숨어있는 감시자가 된다. 업계와 관공서의 노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권과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CCTV에 대한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