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 연준 금리인하 정면 비판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부를 후폭풍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9월 18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린 ‘빅컷’을 전격 단행했다. 이번 조치로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게 된 가운데, 국내 증시도 당분간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에 이은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시작되면서 국내에 미칠 영향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제롬 파월 의장 “미 경제를 위해 옳은 일”
이번 ‘빅컷’은 지난 2020년 3월 이후 4년6개월 만에 금리 인하 조치다. 당초 0.25%포인트 인하의 ‘베이비컷’을 할 것이란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연준은 미국이 경기침체에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노동 시장과 투자 시장 침체를 막고자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FOMC는 기준금리를 기존 5.25~5.50%에서 4.75~5.00%로 0.5%포인트 내린다고 발표했다. 빅컷 결정에 대해 투표에 참여한 12명 중 미셸 보우먼 연준 이사를 제외한 11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물가가 치솟자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갔고, 이후 1년2개월간 상단 기준 5.50%의 높은 기준금리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로 목표치인 2%에 근접하면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 금리 인하를 시사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빅컷을 단행한 배경에 관한 질문에 “지난 회의 이후 많은 지표가 추가됐다”고 전했다. 파월 의장은 “(7월 회의 이후) 7월 및 8월 고용 보고서가 나왔고, 2건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보고서가 나왔다”며 “또한 고용지표가 인위적으로 높게 나타났고 향후 하향 조정될 것임을 시사하는 보고서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이들 지표를 모두 취합해 (FOMC를 앞둔) 묵언 기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고, 이번 (빅컷) 결정이 우리가 봉사하는 국민과 미 경제를 위해 옳은 일이라고 결론지었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번 ‘빅컷’에 대해 ‘정치 행위’라고 비판했다. 연준 결정 이후 미국 보수 매체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부분의 사람은 인하 폭이 절반(0.25%포인트)일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 대선 전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금리 인하가 여당인 민주당의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선 0.25%포인트 금리 인하에 대해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준이 통상적인 금리 인하 폭인 0.25%포인트가 아닌 0.50%포인트 인하라는 이례적인 선택을 한 것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취지다.
연준은 함께 발표한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중간값)는 종전의 5.1%에서 4.4%로 낮췄다. 이는 연내 0.5%포인트 추가 인하를 시사한 것으로, 미 연준은 올해 11월과 12월 두 차례 더 FOMC를 열고 금리를 결정한다. 실제 연준 이사들은 향후 추가 ‘빅컷’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이어 나갔다. 대부분의 이사는 0.25%포인트 인하를 선호했지만 향후 나오는 지표에 따라 얼마든지 빅컷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연준 내 ‘비둘기(통화완화 선호)파’로 분류되는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한 질의응답 행사에서 “향후 12개월 동안 금리를 중립 수준으로 낮추려면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굴스비 총재는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가 경제 성장을 자극하거나 제약하지 않는 수준인 중립 금리보다 ‘수백bp(1bp=0.01%포인트)’ 높은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고용 상황과 인플레이션이 모두 양호한 수준이지만 연준이 앞으로 몇 달 내로 금리를 크게 낮추지 않는 한 이 상태가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너무 오랫동안 제약적 금리를 가져가면 (물가상승 억제와 경기 부양이라는) 두 가지 연준 의무 달성을 위한 좋은 지점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통화정책 ‘각자도생’, 한국은?
금리 인하 과정에서 미국이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시장에서는 그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시기에 침체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던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을 높게 봤으나, 최근 들어 경제지표가 여전히 견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연착륙 기대가 커지고 있다. 1989년 이후 6번의 미국 금리 인하 사이클 가운데 즉각적인 경기 둔화를 겪지 않았던 적은 1995년과 1998년 2차례이며, 1995년 당시 연준은 6개월여 간 기준금리를 6%에서 5.25%로 낮췄지만 침체는 없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빅컷’ 이후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중국과 일본, 영국은 금리를 동결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시장 예상을 깬 동결이어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간 통화정책 동조화가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은 연준의 빅컷 이후 만 이틀도 안 된 9월 20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시장 예상과 같이 기준금리를 0.25%로 동결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 3월 단기 정책금리를 17년 만에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데 이어 7월 회의에서도 금리를 0∼0.1%에서 0.25% 정도로 인상한 바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역시 19일 기준금리를 연 5%로 동결했다. 금융시장에선 연준 빅컷 영향으로 BOE가 예상보다 이르게 이달에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BOE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2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맞서서 공격적으로 함께 금리를 올렸던 때에 비해 이번 인하 사이클에선 동조화가 덜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미 연준의 빅컷 단행으로 기존 2.00%포인트 차로 역대 최대였던 한국(3.50%)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1.50%포인트로 줄어들었다. 한국은 10월과 11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예정돼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이 전환되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도 고조되고 있다. 다만 한은은 가계부채 진정세 등을 확인한 후 금리를 움직이겠다고 전한 만큼 당장 예고된 회의에서 금리를 조정할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한은의 금리 셈법은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통화정책 전환 전제 조건인 물가가 최근 2%대로 떨어지며 여건은 조성되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8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집값과 가계부채 급등으로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이 총재는 “한은의 통화정책은 금융 안정을 위한 것인데 금융 안정의 중요 요인이 부동산가격과 가계부채”라며 “한은이 이자율을 급하게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 경제 전체로 볼 때 부동산 가격이 소득과 비교해 너무 오르면 버블(거품)이 꺼지는 걱정뿐 아니라 자원배분 측면에서도 부동산에 대출 등으로 돈이 몰렸다가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하는, 이런 고리를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