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등극할까?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한계 모르는 질주로 전인미답의 ‘50-50’ 달성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100년 넘게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한 시즌 50(홈런)-50(도루) 고지를 밟으며 메이저리그(MLB) 역사를 새롭게 썼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은 오타니의 위업을 두고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한 것,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횡단한 것, 그리고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착륙한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현지 언론 극찬
이미 역대 최소인 126경기 만에 40-40을 달성했던 오타니는 전인미답의 50-50 고지까지 밟으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메이저리그에서 40-40은 호세 칸세코와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폰소 소리아노,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등 5명만이 달성했으나 50-50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6타수 6안타(3홈런) 4득점 10타점 2도루의 맹타를 휘둘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시즌 48홈런-49도루를 기록 중이던 오타니는 무려 3홈런과 2도루를 추가하며 50-50의 대업을 완성했다.
오타니는 첫 타석 2루타로 나간 뒤 시즌 50호 도루를 성공시켰고, 이어 2회 초 도루 숫자를 51개까지 늘렸다. 48-51. 50-50까지 홈런 2개만 남은 상황에서 그는 6회 2점 홈런으로 49-51 고지에 도달했고, 7회 2점 홈런을 다시 더해 50-51을 완성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9회 3점 홈런을 날리며 한 경기 3연타석 홈런이란 진기록과 함께 51-51로 하루를 마감했다. 이날 경기에서만 6타석 6안타 3홈런 10타점 4득점 2도루라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였다.
오타니 이전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50홈런 이상이 나온 건 49번이다. 이 중 시즌 도루 개수는 평균 7.4개에 불과하다. 50홈런 이상 친 선수 중 도루가 가장 많았던 건 24개가 최고였다. 홈런 타자는 발이 느리고 발이 빠른 타자는 홈런을 많이 때리지 못한다는 통념처럼 거포가 베이스를 많이 훔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현실에서 나올 수 없는 선수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냈다”면서 ‘다른 세계’, ‘초인적’, ‘믿을 수 없는’ ‘유일무이’ 등 갖가지 수식어로 찬사를 보냈다. 오타니는 이날 경기 후 소감을 묻자 “팀이 이겨서 가장 좋았다”면서 “기쁨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고 기록을 만들어온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오타니가 친 50-50 홈런 공은 한 관중이 잡았다. 현지 스포츠계에선 이 공이 경매에 나올 경우 1998년 마크 맥과이어 시즌 70호 홈런 공 300만 5,000달러나 2022년 애런 저지 62호 홈런 공 15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타니의 조국 일본에서는 이날 오전 ‘호외’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배포하기도 했다.
야구 실력은 물론 인간성과 운에도 신경 써
오타니의 아버지 오타니 도루는 미쓰비시 사회인야구팀에서 뛰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뒤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8살 때부터 유소년 야구를 접했는데, 오타니의 부모는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저녁 무렵 귀가해서 밥을 먹을 기운도 없을 때가 많았다. 잠을 정말 많이 잤다”며 “(아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있으니 게임하고 싶거나 놀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정말로 야구에만 집중하더라”고 말했다.
‘완벽한 야구 선수’를 원했던 오타니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해왔다. 하나마키히가시 고교 재학 중 만든 ‘만다라트 계획표’는 오타니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오타니가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8개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목표로 만든 것인데, 한 가지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8가지 세부 목표가 적혀 있다. 또 8가지 세부 목표에 따라 실천해야 할 과제 8가지씩, 총 64가지의 실천 과제를 적어놓았다.
여기에는 야구 실력을 키우기 위한 것은 물론 인간성과 운에도 신경을 썼다. 인간성 항목에는 “예의와 배려를 갖춰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람”, “감성과 감사를 아는 사람” 등이 적혔고, 운 항목에는 “심판을 대하는 태도”, “쓰레기를 줍고 물건을 소중히 쓴다”는 계획이 담겼다. 실제 메이저리그 입성 후에도 쓰레기를 줍는 등 계획표를 따르는 모습을 보이며 모범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일화만 보더라도 자신이 어린 시절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치고 던지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야구”라고 강조하는 오타니는 프로 입성 후 한 번도 ‘투타 겸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5시즌 동안 투수로 85경기 42승과 평균자책점 2.52, 타자로 403경기 타율 0.286 518홈런 166타점의 성적을 냈다. 미국 무대 진출을 도모할 때도 투타 겸업 도전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LA 에인절스의 손을 잡았다.
데뷔 첫 해인 2018년 투수로 10경기 4승과 평균자책점 3.31, 타자로 104경기 타율 0.285 22홈런 61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품에 안은 그는 2021년부터 만개하기 시작했다. 투수와 야수 모두 올스타에 선정되더니, 이듬해에는 투수로 규정이닝, 타자로 규정타석을 동시에 충족하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기록을 썼다. 자연스레 생애 첫 최우수선수(MVP)도 수상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도 타자로 44홈런과 투수로 10승을 달성하며 다시 한 번 MVP에 등극했다. 두 번 모두 만장일치의 결과였는데, 이 역시 MLB 최초의 일이다.
7억 달러 계약으로 LA 다저스 입성
오타니는 2023년 국가 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투타 겸업으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끌며 야구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오타니의 정신력이 특히 빛을 보인 대회였다.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결승전을 앞두고 그는 경기 전 동료를 불러 모아 연설을 했다. 오타니는 “하나만 말하겠다. 미국을 동경하지 말자. 1루에 골드슈미트가 있고 외야에는 트라웃과 베츠가 있다. 야구를 하다 보면 누구나 들어본 이름이다. 오늘 하루만은 동경하는 마음을 버리자”고 했다. 이어 “동경해버리면 넘어설 수가 없다. 오늘 우리는 그들을 넘어서 1위가 되기 위해 왔다.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고 연설을 끝냈다. 일본팀 선수들이 오타니의 말에 소리를 지르며 호응하는 영상이 SNS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고, 오타니는 이 경기 마무리 투수로 나와 세계 최고의 타자로 불리는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 처리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 대회 MVP가 됐다.
오타니는 2024 시즌을 앞두고 10년 7억 달러라는 MLB 역사상 최고 계약으로 LA 다저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영향으로 올 시즌은 투수 휴업을 선언하며 그의 상징과도 같은 투타 겸업을 잠시 쉬고 있다. 여기에 시즌 개막 전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가 계좌에서 수백억 원을 빼돌린 사실까지 밝혀져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이기도 했다. 시즌 첫 홈런이 개막 후 9경기 만에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은 그는 투수로서 뛰지 않아 아껴둔 힘을 타격과 주루에 전력투구하면서 50-50 고지 등정에 성공했다.
그가 ‘상식 밖’의 일을 거침없이 해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베이브 루스의 이름이 소환되고 있다. 1910~1930년대에 활약했던 루스는 오타니의 투타겸업 선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홈런을 야구의 꽃으로 만든 인물이다. 성적만큼이나 메이저리그 초창기 야구의 매력을 알린 인물이라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얻고 있다. 그가 은퇴하고 수많은 불세출의 선수들이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밤비노’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이 흐르고 루스 못지않은 투타겸업의 정수를 오타니가 선보이며 어느새 각종 매체에서는 그를 야구계 ‘GOAT(Greatest Of All Time)’로까지 부르고 있다. 시대의 지배자 오타니가 세계 야구 역사의 어느 정도 위치에까지 오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