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고인이 남긴 데이터, 추모의 수단이자 사료로
[이슈메이커] 고인이 남긴 데이터, 추모의 수단이자 사료로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4.09.19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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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후반 이후 고인 계정 가파르게 늘 것으로 전망
인간 존엄 훼손, 상업적 활용 우려도 제기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고인이 남긴 데이터, 추모의 수단이자 사료로
 

과거 유명 문학가의 작품이나 학자들의 연구물 등이 의미 있는 기록물이었다면,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되어 누구나 자신의 계정 하나쯤은 있는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공간에 남은 데이터 활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시간이 흘러 계정 주인이 망자(亡者)가 되면 게시물이 하나의 사료(史料)이자 추모의 매개로 쓰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Pixabay
ⓒPixabay

 

다양한 측면에서 활용될 고인 데이터
대표적인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2006년 9월부터 가입이 가능해졌는데, 인간의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21세기 후반이 되면 고인 계정이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온라인 속 거대한 ‘디지털 납골당’이 생겨날 것이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22세기 초에 이르면 사망자 계정이 살아있는 사람 계정보다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 같은 현상은 X(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다른 서비스에서도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페이스북의 경우 고인의 유가족 등 대리인이 위임장과 유언장, 부고장 등을 제출하면 계정을 삭제할 수 있다. 다른 SNS 역시 직계 가족 등이 별도로 계정 삭제 요청을 하면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망자의 계정이 차곡차곡 쌓일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유가족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디지털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계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굳이 삭제 요청을 하지 않아 계정이 사실상 방치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소셜미디어에 쓰여진 글과 사진이 훗날 사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간토가쿠인대 오리타 아키코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겨 놓은 정보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이나 행동 양식, 트렌드를 담은 기록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했다.

  더욱이 소셜미디어에는 과거 ‘아랍의 봄’을 비롯해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기록한 게시물도 다수 존재한다. 일종의 공공 데이터로 여겨질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의료기관에 기부된 생물학적 시신이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처럼, 고인의 소셜미디어 데이터 역시 연구자들에게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접근 권한이 부여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죽은 사람을 AI로 복원하는 서비스가 일상화된 사회를 그린 영화 ‘원더랜드’.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죽은 사람을 AI로 복원하는 서비스가 일상화된 사회를 그린 영화 ‘원더랜드’.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 속 세계가 현실로?
한편 고인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을 활용해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연인과 대화를 시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죽은 사람의 데이터로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킨 후 실제로 고인과 문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죽은 사람을 AI로 복원하는 서비스가 일상화된 사회를 그린 영화 ‘원더랜드’와 유사하다. 실제 2020년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조슈아 바보라는 한 남성은 챗GPT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 프로그램에서 세상을 떠난 여자 친구 제시카 페레이라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 남성은 프로그램이 여자 친구의 말투를 잘 흉내 낼 수 있도록 페레이라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활용했다.

  다만 고인의 동의 없이 이러한 시도에 대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는 2016년 세상을 떠난 중국 가수 차오런량의 AI 제작 페이크 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유가족의 항의로 해당 영상은 삭제됐지만, 더우인에는 “588위안(약 11만원)만 내면 AI 부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식의 글이 떠돌기도 했다. 이처럼 사망한 이의 정보가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이에 사망자 디지털 정보를 관리하는 제도 필요성이 제기된다. 디지털 유산 범위와 상속 방법은 물론, 사생활 보호와 충돌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따른 혼란이 야기되고 있어서다. 아직까지 대중적 인식이 낮은 것이 사실인데, 네이버와 카카오, 싸이월드 등 국내 기업들이 이에 대한 이용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실제 세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정확한 복제본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도 발전 중이다. 이미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이를 넘어 인간 의식의 디지털화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이다. 개인의 기억이나 지식 등을 디지털화해 컴퓨터에 저장하면 그 사람이 죽더라도 의식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디지털 쌍둥이는 새로운 차원의 지식 공유와 인간 경험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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