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국 간 데이터 주권 갈등도 이어져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높아지는 글로벌 플랫폼 국경
인공지능(AI)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각국에서 자국 데이터 산업을 적극 육성함과 동시에 보호를 위한 ‘데이터 주권’ 강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AI 학습의 핵심 재료인 데이터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소유와 권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립되는 모양새다.
대선 앞두고 초당적 지지로 금지 법안
‘데이터 주권’은 국가와 개인이 생성한 데이터 역시 주권이 있기에 데이터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국가나 개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개인정보에 대한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데, 쉽게 말해 자국민의 정보가 타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AI 시대 ‘제2의 유전’으로 불리는 데이터는 크게 보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고 작게 보면 개인정보의 보안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과거 기업 대 기업 간의 경쟁으로 여겨졌던 ‘플랫폼 비즈니스’가 최근 국가 개입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는 글로벌 현상의 연장선이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는 미국의 ‘틱톡 금지법’이다. 지난 4월 중국 틱톡의 유통 및 배포 금지 법안이 미 상원과 연방의회를 통과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틱톡의 미국 사업을 강제 매각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현재 틱톡은 미국 내 이용자가 1억 7천만 명에 달할 정도로 시장을 크게 장악하고 있다. 경제 효과도 상당해 ‘틱톡커’들은 틱톡을 지켜야 한다는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는 법적 이의를 제기하면서 법적인 공방까지 예상된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틱톡이 미국 시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데이터를 중국으로 넘기고 있다면서 자국의 ‘데이터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입장이다. 틱톡 강제 매각법은 민주·공화당이 공동 발의해 하원을 352대 62로, 상원을 79대 18로 통과했다. 근래 찾아보기 힘든 초당적 지지다.
한편 유럽연합은 디지털 시장법을 만들어 미국의 플랫폼 기업인 구글과 메타 등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EU는 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앞으로 데이터 주권을 놓고 무역 보복과 맞먹는 국가 간 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락 된 ‘라인야후 사태’,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러한 글로벌 추세 속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일본 총무성이 지난 3월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2차례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지도를 내려서다. 한국의 네이버가 개발해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경영하고 있는 라인은 일본 국민 1억 2천만 명 중 1억 명 가까이가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다. 일본 정부가 ‘정부를 위한 라인’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많은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라인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연관돼 있다.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했다. 사실상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 내 반발이 거세지자, 한일 관계 개선을 치적으로 삼는 일본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입장을 바꿔 한국 네이버에 했던 요구를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런 글로벌 추세와 사례 속에서 ‘주권’만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국민의 개인정보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야 하지만 자칫 ‘국가주의’로 인한 쇄국은 데이터 확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국가들은 자국 데이터 보호와 함께 산업 육성을 위한 활성화 정책도 함께 펼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EU(유럽연합)와 EU회원국들과 미국 간의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이전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EU-미국 데이터 프라이버시 프레임워크(DPF)’에 대한 적정성 결정을 채택했다. 중국에 대해 틱톡 금지법 등 ‘데이터 주권’을 강화한 것과는 대조되는 움직임이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21년 말 개소한 상하이 데이터 거래소를 시작으로 데이터 거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이와 함께 공업정보화부, 국가사이버공간관리국 등 16개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데이터 보안 산업 발전 촉진에 관한 지침 의견’을 발표하고 데이터 보안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데이터 주권’ 강화와 같은 각국의 정책 방향은 결국 ‘데이터 확보’로 귀결된다.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AI 시장 선도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에 격화되는 ‘데이터 주권’ 전쟁 속에서도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해 양질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 역시 고유의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