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절차 특화된 서비스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 중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각광받는 폐업 도우미 시장
최근 미국에서 스타트업의 폐업이 급증하고 있다. 초기 기업이 문을 닫는 일이야 일반적인 일이라지만 상당한 자금의 벤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거나 자산 처분을 위한 염가 M&A에 나서는 사례가 부쩍 증가하고 있는 것인데, 아이러니한 점은 폐업해야하는 스타트업조차 스타트업의 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설립보다 폐업 절차 더 까다로운 미 스타트업
2017년 설립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고스트 오토노미’는 오픈AI를 비롯해 글로벌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마이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서터힐벤처스 등으로부터 2억 2,00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4월 폐업을 선언하고 모든 직원을 해고했다. 수차례 개발 기술을 변경했다가 결국 한계에 봉착해 사업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와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AI, 트럭운송 스타트업 콘보이, 주택건설 스타트업 비브 등이 파산하거나 폐업했다.
이러한 미국의 스타트업 폐업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자산 관리 서비스 기업 카르타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폐업한 스타트업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폐업 스타트업 중 시드 및 시리즈 A 이상 단계까지 자금조달을 한 스타트업의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올해 1분기(1~3월) 역시 폐업한 스타트업이 136개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3개) 대비 83% 증가한 수치다.
이와 같이 폐업해야하는 스타트업이 증가하며 주목받는 서비스가 생겼다. 바로 폐업 절차를 전담해 주는 서비스다. 미국에서는 이런 스타트업을 ‘셧다운 헬퍼(Shutdown Helper)’라 부른다. 우리말로 ‘스타트업 장의사’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의 폐업 절차가 설립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여러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뿐 아니라 VC들이 민간 출자사(LP)에 눈치를 보며 폐업을 막는 경우도 있다. 특히 창업자는 추후 소송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셧다운 헬퍼들은 투자금을 다 못쓰고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남은 돈을 반환하거나 자산을 경매, 처분하는 일을 돕고, 회사 폐쇄과정을 더 빠르고 간단하게 처리해준다.
투자 ‘혹한기’ 속 아이러니하게 성장 지속 전망
심플클로저는 스타트업 폐업 절차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폐업 설계와 법적 해산, 실제 폐업 완료 등 세 가지의 폐업 단계를 자동화했다. 작년 9월 설립된 후 반년 만에 매출의 14배를 상승시킬 정도로 성장 중이다. 심플클로저 도리 요나 창업자는 “수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선셋은 기업 청산과 관련한 법률·회계·운영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통합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초 문을 연 선셋은 특히 소수 인원으로 만들어진 마이크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인수합병(M&A)를 돕는데 특화돼 있다. 브랜든 마호니 선셋 창업자 역시도 폐업 경험이 있는데, 그는 “정부에 제출한 문서, 신고해야 할 세금 양식, 변호사에게 보내야 할 문서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어두운 느낌을 주는 건 적극적으로 피하고자 한다. 마호니는 “모든 것이 우울한 건 아니다”며 “정말 행복한 결말을 맺는 회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셋은 엔젤투자자 중심으로 145만 달러의 시드 투자금을 조달했다. 심플클로저 역시 150만 달러 규모의 프리시드 투자를 받은 지 6개월도 안 돼 4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 이 비즈니스가 떠오르는 이유는 지금이 투자 ‘혹한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금조달이 크게 위축되어 지난해 민간 VC 지원을 받은 미국 기업 약 3,200개가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폐업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문 속에서도 해당 기업들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들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반박한다. 셧다운 헬퍼 스타트업에 투자 중인 VC 관계자는 “올해도 수많은 스타트업이 문을 닫을 것이라 가정해도 무방하고 이 투자도 유망하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스타트업 설립과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등장하여 법인 설립 및 사업 개시와 관련한 진입 장벽을 낮추며 성장했던 것처럼 폐업 서비스도 자동화되고 간편화된다면 오히려 폐업에 대한 장벽을 낮춰 추가 수요가 창출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