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유럽행 원전 실크로드 개척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유럽행 원전 실크로드 개척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4.08.05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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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원전 수주 잭팟 터트린 ‘팀코리아’
탈원전 정책 폐기 선언에 대한 결실의 시작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유럽행 원전 실크로드 개척
 

최근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발전소 수주전에서 한국 기업들로 구성된 ‘팀코리아’가 24조 원 규모의 원자력 사업을 수주했다. 이 과정에서 수주 활동의 선봉장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의 황주호 사장이 소임을 다하며 이번 수주의 주역으로 지목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의 쾌거이자 역대 최대 규모 원전 수출 성과로서 최근 원전 건설이 늘고 있는 유럽 국가로의 추가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 원전 산업의 미래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한국수력원자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한국수력원자력

 

50조 원 이상의 경제 효과 기대
지난 정부에서 탈(脫)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했던 대한민국이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값진 성과를 거뒀다. 2022년 3월, 기존 가동 원전의 수명 경과와 전력사용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최대 4기까지 신규 원전 건설을 결정한 체코 정부가 두코바니 원전 입찰을 공고했다. 해당 공고에 대한민국 역시 입찰에 참여했고, 당시만 해도 ‘팀코리아’의 수주를 점치는 이는 국내도, 해외도 많지 않았다. 유럽 원전 시장을 주도하는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등이 주축을 이룰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입찰을 위한 2년 4개월간의 장기 레이스에서 주먹을 불끈 쥔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의 팀코리아였다. 지난달 17일 두코바니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으로 한수원을 선정했다는 체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것이다. 해외 원전 수주가 단순히 원자로 기술과 건설 능력을 파는 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원과 협상이 뒤따라온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체코 원전 2기를 수주한 데 따른 경제 유발효과가 최소 50조 원 이상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산업부와 한수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60년인 원전 운영·관리 사업에서만 건설비에 맞먹는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고사 직전에 몰렸던 원전산업을 회복시키면 우리 산업 전체가 큰 혜택을 볼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원전산업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됐다”라고 이번 원전 수주 성공에 대한 기쁨을 내비쳤다. 

  원전 산업 분야의 전문가들은 체코 원전 수주를 통해 대한민국 원전 산업이 ‘탈원전 정책’으로 위기에 몰렸다가 회복세를 타며 국내 원전 생태계가 완전히 살아나 제2의 도약기를 맞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쏘나타 174만 대, 30만t급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28척 이상을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원전 사업을 수주하면 원전 건설뿐 아니라 발전소 운영과 시설 유지·보수, 원전 연료 판매 사업 등 운영 및 관리 사업도 맡을 수 있기에 이러한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7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공식화한 후 국내 원전산업은 급격히 위축됐었지만, 2022년 취임한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하며 원전 생태계는 회복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는 이에 대한 결실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체코 정부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17일, 한국수력원자력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체코 정부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17일, 한국수력원자력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과학기술 정책 최고 전문가의 헌신
한국 기업들로 구성된 팀코리아가 이번 수주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황주호 한국수력원자원(이하 한수원) 사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팀코리아는 한수원을 비롯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한전기술 등 관련 공기업, 원전 주기기 공급이나 구조물 건설을 맡을 민간기업 등이 연합한 형태였고, 한수원은 국내 원전을 운영하는 공기업으로서 원전 수출 성공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황 사장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온몸을 던져 팀코리아의 수주 성공을 위해 몸으로 뛰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황 사장은 체코 현지에서 활발히 수주 활동을 펼쳤다. 체코전력공사(CEZ) 및 체코 산업부를 찾았고, 밀로쉬 비스트르칠(Milo Vystril) 체코 상원의장과의 면담도 진행했다. 체코전력공사 원자력본부장, 폴란드 전략적에너지인프라 전권대표, 폴란드 기후환경부 차관 등도 찾았다. 이외에도 기업, 대학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만나 적극적인 구애와 설득의 묘를 살려왔고, 원전 건설 예정지 지역사회와도 밀접하게 소통하는 기민한 행보를 보였다. 그동안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황 사장은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뒤 임명된 첫 학계 출신의 사장으로서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 전문위원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수출자문위원장 등을 거치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과 한국에너지공학회장, 한국원자력학회장, 그리고 경희대학교 부총장과 공대 학장을 역임할 정도로 산·관·학에 깊이 관여해 온 전문가다. 그렇기에 이번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누구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신바람 나게 활동해올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황주호 사장은 “지금부터 90일 이내에 아주 상세한 기술 서류들을 제출해 약 3개월 동안 아주 상세한 협의 조정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후 내년 3월경 계약을 하게 되고, 이후에는 인허가 절차를 시작합니다. 건설허가를 2029년까지 받고 그해 착공, 36년 준공입니다”라며 “이제까지의 과정이 안갯속에서 문제지만 보고 답안지를 쓰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답안지를 놓고 문제를 낸 사람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잘 푸는가’에 대해서 협의하는 과정입니다. 이제까지의 과정보다는 훨씬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황주호 사장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의 수주를 위해 온몸으로 뛰며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에 오래 관여해 온 최고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수력원자력
황주호 사장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의 수주를 위해 온몸으로 뛰며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에 오래 관여해 온 최고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수력원자력

 

원전 분야 외길, 입증된 역량
황주호 사장이 취임한 2022년 8월, 당시 그는 ‘원전 수출 10기’를 목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모회사인 한국전력공사의 막대한 적자 부담을 한수원을 비롯한 발전자회사들이 떠안게 되며 ‘실적 개선’이라는 과제도 떠안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그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위한 협력에 앞장섰고, 국내 협력기업과의 소통 강화에도 힘썼다. 전 세계적 에너지 전환 흐름에서 CF100(무탄소 에너지 100%) 달성을 위한 원전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당시 중요한 해결 과제 중 하나였던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측 건설사업 계약도 마무리 지었다. 한수원 사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학계 전문가로서 한수원에 활발한 자문 활동을 펼쳐왔었기에 취임 후 누구보다 빠르게 현안을 해결해 갈 수 있었고, 실적 개선을 넘어 실적 반등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조직을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원전 분야 외길을 걸어온 그의 역량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셈이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한수원에 대해 미국 등 경쟁국의 견제가 심해지리라 예상되지만, 황 사장이 가진 전문성과 한국형 원전에 대한 강점은 이미 세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라며 “해외 수주는 물론 국내 원전산업 전반에 활력이 예상된다”라고 평가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을 운영하는 공기업으로서 원전 수출 성공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을 운영하는 공기업으로서 원전 수출 성공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계약까지 남은 시간 존재, 긴장의 끈 놓지 말아야
한편 이번 체코 원전 사업 수주 계약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과하게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덤핑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 사업비가 당초 예상했던 30조 원보다 적은 24조 원으로 추산되자 고물가에 저조한 수익성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체코 현지 언론에 따르면 페트르 피알라(Petr Fiala) 체코 총리는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수원의 입찰은 모든 평가 기준에서 프랑스의 EDF보다 우월했다”라며 “제시한 가격도 체코 정부가 원래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유리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사업을 진행하며 60%는 체코 현지 기업을 포함한다는 조건을 한수원이 내건 만큼, 대한민국 기업들에게 주어질 기회가 적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원전 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는 풀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이) EDF보다 가격을 적게 제시했다고 외신 등에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확히 EDF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지 못한다. 한수원은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을 뿐이다”라고 기술경쟁력으로 선정된 점을 강조하며 선을 그었다. 이어 “원전 사업은 수십 년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사업이라 물가상승률도 모두 고려해 협의한다”라며 “아직 계약 체결 전이다. 비용이 급증할 수 있는 그런 요인도 반영해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고물가 우려에 대한 여론을 겨냥해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수원의 APR-1400 수출 제한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인 미국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와의 문제가 가장 큰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원자로 APR-1400 설계에 웨스팅하우스의 지적재산권이 포함되어 있기에 만약 지식재산권으로 인해 수출에 제한이 생길 경우, 폴란드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 수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체코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에 한국전력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 인수전에서 중국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최종 계약까지는 매듭짓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체코 수주전에 참여했지만, 체코가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바 있다. 

 

황주호 사장이 취임한 2022년 8월, 당시 그는 ‘실적 개선’이라는 중책을 떠안은 채 ‘원전 수출 10기’를 목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2년이 흐른 현재 실적 개선을 넘어 실적 반등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조직을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수력원자력
황주호 사장이 취임한 2022년 8월, 당시 그는 ‘실적 개선’이라는 중책을 떠안은 채 ‘원전 수출 10기’를 목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2년이 흐른 현재 실적 개선을 넘어 실적 반등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조직을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에 대해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소송에서 풀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현재 마지막 조율 단계”라며 “정부에서 직접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 한수원이 해결하기에 지켜보고 있다. 다만 정부는 미국 정부와 원자력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번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의 수주로 대한민국이 방위산업에 이어 원전산업에서도 세계적인 돌풍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가 전력 부족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K-원전의 도약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때문에 보다 장기적이고 넓은 안목으로 K-원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균형을 훌륭히 맞춰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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