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갑찬/손보승 기자]
1세대 프로파일러가 말하는 ‘안전한 사회’
22대 총선 낙선 후 경기대 복직
‘광교’는 수원의 신도시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10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은 도시화의 거센 물결 속에 새롭게 자리 잡으며 인구 유입이 많았다. 비록 새로 만들어진 뉴타운이라고는 하더라도 이 지역의 대표적 진산인 광교산에서 비롯되어 수원 색채가 유난히 짙기도 하다. 그리고 신도시 조성과 함께 탄생한 광교호수공원은 사계절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곳에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경기대학교가 있다. ‘진리를 탐구하고 성실하게 책무를 수행하며 사회와 국가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대학 건설’이라는 비전 아래 오늘도 글로벌 역량을 갖춘 융·복합 인재가 성장하고 있다. 경기대에서 1999년부터 재직하며 ‘터줏대감’이 된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범죄심리학 분야 대표 주자이자 ‘1세대 프로파일러’로 불린다. 지난해 12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후 영입인재 1호로 영입되어 22대 총선에 경기 수원정 지역구에 출마하기도 했다. 아쉽게 낙선한 뒤 학교로 돌아온 이수정 교수를 수원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총선 이후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지난해 국민의힘에 영입된 후 휴직 상태에서 총선에 출마를 했고, 학교에는 다시 돌아온 상태다. 이전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고 있는 셈이고, 당에서는 지금 원외 조직위원장을 맡아 조직을 꾸린 상태다”
처음 범죄심리학과의 인연은 어떤 계기였나?
“경기대 교양학부 교수로 임용되어 처음에는 심리학을 가르쳤다. 학교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정학과가 있어 임용 후 재소자를 등급별로 분류하는 심사 절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걸 계기로 범죄심리학과 연을 맺었다. 개인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원리는 동일하나 대상만 범죄자로 바뀐 셈이다. 그 뒤 대학원에 범죄심리학 과정이 신설되었고, 미국 샘휴스턴주립대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방송 출연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커졌는데, 롤모델로 삼는 제자도 있을 듯하다
“물론 저라는 사람과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궁금증으로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도 있다. 다만 단순히 호기심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전공이다(웃음). 사명감을 가지고 전공자로서 열심히 공부해 지금은 경찰청의 프로파일러나 교도소의 심리치료 전문가, 법원의 형사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다”
그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권을 러브콜을 받게 되었는데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대단히 특수한 영역이고, 쉽게 포기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이전에도 정치권의 제안을 받았으나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저의 라이프 사이클 상 입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재작년부터 영아 문제가 불거져 불법 거래되거나 학대 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기승하게 되자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마침 제 목소리를 독자적으로 내면서 입법 발의에 있어 좀 더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구 제안을 받아 국민의힘에 입당하게 된 것이다”
지난 선거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제가 계속 근무했던 곳이 수원이고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다 판단해 출마하게 되었는데, 막상 보니 보수 세력에게는 굉장한 ‘험지’였다. 선거 과정 동안 실수를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썩 높아지는 선거는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보통 35%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던 지역에서 49%의 지지율이 나왔다는 점에서 나태하게 임한 건 아니라고 본다”
‘출마’라는 그간의 일과는 전혀 다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26년을 여기서 살다시피 했어도 범죄자나 형사사법기관의 실무자를 만나는 일이 대부분이지 막상 주민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결국 ‘뉴페이스’였던 거다. 그래서 지역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핸디캡이 선거에서 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향후 다시 출마할지 다른 인물을 지원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깨다는 과정을 통해 지역의 특수성을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선 몇 달로는 부족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깊게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찾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선거 과정에서 수원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도 궁금하다
“수원은 서울과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출퇴근을 위해 1시간 반씩 걸리는 먼 지역이기도 하다. 저 역시 같은 오랜 기간 같은 경험을 해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기에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봤고, 이를 위한 노력은 출마 초기부터 지속해왔다. 그렇게 되면 수원은 굉장히 살기 쾌적한 지역이라 생각한다. 면적도 넓어 개발 가능성도 크고 문화도 살아있는 매력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권과 생명권 위해 꾸준히 목소리 높여와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라면 이수정 교수의 얼굴을 몇 번은 봤을 터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20년 넘게 출연해왔고, 범죄 관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건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다양한 분석을 통해 용의자를 추정하거나 범행동기를 찾아내는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꿰뚫는 듯 날카로운 눈빛은 ‘범죄심리학자’란 직업에 썩 잘 어울린다. BBC가 뽑은 ‘2019년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린 뒤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만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단순히 범죄에 대해 말하고 범죄자의 심리 분석에만 그치지 않았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도입 기준을 마련해 해당 법안 도입에 일조했고, 인권과 생명권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었다.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수원으로 이사하며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제가 보수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신상 공개나 전자발찌 처분 등을 입법하는데 여러 가지 조력을 기울였던 사람이다 보니 저는 상습성이 매우 높은 성범죄자들에 대해 주거지 제한을 일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법안 중 ‘한국형 제시카법’,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제도가 폐기되었는데 이들의 재범을 막고 지역사회를 위해서라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엄벌주의’를 강조하는데, 사형 집행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사형 집행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흉악범들에게 얼마나 위축을 주는지 저는 잘 알고 있다. 연쇄 살인범들을 면담하면 ‘우리나라가 사형 집행을 할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만큼 제도가 이들의 심적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굳이 폐지해서 여기서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다. 또 그것이 과연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인지 물으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다만 가석방 없는 종신제에 대한 토론은 해봄직하다고 본다”
‘사이코패스’는 타고 나는 것인지?
“서구 사회에서는 타고난다고 이야기를 한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바라보는 관점이 각기 달라 서구 연구자들을 유전론에 의존을 많이 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계통의 학자들은 환경론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갑자기 흉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유전적 요소가 일부 있는 인물이 어린 시절 결핍된 환경에서 성장하면 청소년 시절부터 탈선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올해 초 ‘스토킹 - 신인류의 범죄’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신인류라는 것이 옛날에는 사회적 연결망이 촘촘하고 확대 가족이다 보니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오늘날은 아무도 참지 않는 세상이 되고 법은 관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러한 틈을 이용하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종류의 범죄에서 스토킹 행위는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 된다. 최근 교제 살인이 많이 발생했지 않나. 돌발적 구성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이러한 사건들을 미리 제재하기 위한 예방적 노력을 위한 차원으로 책을 쓰게 됐다”
여성혐오 범죄가 여전히 끊이지 않는데, 어떤 대책들이 필요할까?
“언제나 해온 이야기지만 두리뭉실한 문제의식으로는 답을 찾기가 어렵다. 단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혐오 범죄라고 지칭해서는 안 된다. 공통적 명칭이 필요한 게 아니고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인지도 중요치 않다. 범죄자들이 하는 행위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스토킹 행위라면 이를 제재하면 되는 것이고, 성폭력이라면 성범죄와 연관된 것을 사전에 막으면 된다. 또는 범죄자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면 이를 관리하면 된다. 이처럼 저는 각개전투로 가야된다는 생각이고, 예측해서 제재해야 된다는 게 제 철학이다”
범죄심리학자로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그동안 동료 연구자, 제자들과 함께 제가 하고 싶었던 연구에 대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성과를 내는 것과 이를 현장에서 활용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활용도를 더 높이고 싶고, 이것에 제가 선거에 출마하게 된 이유였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서 입법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제가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구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는 게 꿈이 되지 않을까”